앵커: 2016 자유아시아방송 10대 뉴스! 북한에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2016년 한 해의 북한관련 뉴스를 정리하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10대 뉴스', 오늘 진행을 맡은 이예진입니다. 오늘 '10대 뉴스'의 세 번째 시간은 문성휘 기자와 함께합니다. 문성휘 기자 안녕하세요.
기자: 네, 안녕하세요?
앵커: 먼저 오늘의 주제부터 좀 살펴볼까요.
기자: 네, 오늘은 북한이 해방 후 최악의 재난이라고 주장하는 두만강 유역의 큰물피해와 관련된 주제입니다. 준비한 녹음 먼저 들어보시죠.
앵커: 네, 북한은 지난 9월 함경북도에서 일어난 큰물피해를 "해방 후 처음인 대재앙이다" 이렇게 주장을 했는데요. 큰물피해가 발생한 날짜가 언제였죠?
기자: 네, 지금까지 자료들을 종합해 보면 북한 함경북도 두만강 유역에서 큰물피해가 발생한 날짜는 정확히 9월 1일입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월 14일자 보도에서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2일까지 함경북도를 휩쓴 태풍으로 인한 홍수피해는 해방 후 처음이며 대재앙"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앵커: 네, 그런데 일부에선 당시 큰물피해가 북한당국의 댐 무단방류로 인해 발생했다, 이런 말도 나왔는데 구체적인 내막이 알려진 게 있나요?
기자: 네, 두만강 유역 큰물피해 소식은 북한 당국의 보도가 나오기 이전인 9월 1일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에서 처음 보도를 했고요, 그 후 큰물피해가 두만강과 이어진 함경북도 연사군 원봉저수지와 무산군 마양저수지의 수문을 열면서 발생했다는 사실을 추가로 보도했습니다. 북한은 가뭄에 대비해 저수지에 물을 가득 채운 상태에서 큰 비가 내리자 자칫 언제가 붕괴될 위기를 막기 위해 수문을 개방했다는 것입니다. 확인된 자료들에 따르면 북한은 9월 1일 정오를 기준으로 두만강 일대에 대피령을 내렸으나 통신시설들이 파괴돼 제때에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전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앵커: 대피령이 제때에 전달되지 못해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컸다는 얘긴데 구체적인 피해규모는 어느 정도나 됐죠?
기자: 네, 북한 당국은 9월 14일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을 통해 수해복구에 총력을 기울일 데 대한 호소문을 실었는데 여기에서 최종적이고 구체적인 피해상황을 알렸습니다. 사망자와 실종자 등 인명피해는 수백 명, 수재민은 6만 8천9백여 명이고, 1만 1천6백여 동의 주택과 9백여 동의 생산기업소 및 공공기관을 포함해 총 2만 9천8백여 동의 건물이 파괴되거나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습니다.
앵커: 네, 북한이 왜 큰물피해에 이렇게 제대로 대응을 못했는지 그와 관련해서도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기자: 네, 큰물피해가 발생한 다음날인 9월 2일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대외용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함경북도에 많은 비가 내려 두만강이 범람, 15명이 실종되고 4만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북한이 대외용으로 선전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이고 북한 주민들이 시청할 수 있는 조선중앙텔레비죤과 조선중앙방송은 9월 10일까지 함경북도 큰물피해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었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그리고 반대로 그 사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수해복구와 상관없는 현장에 나타나서 인민생활을 돌보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가요?
기자: 네, 관련 녹음이 있는데요.
조선중앙TV: 용악산 샘물공장이 훌륭히 개건됨으로서 수도시민들에게 샘물을 더 풍족하게 공급해 줄 수 있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기자: 이외에도 김정은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면서 큰물피해는 나 몰라라 하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앵커: 그런 가운데 9월 9일 북한이 제5차 핵실험을 강행했죠.
기자: 네, 북한은 국경절인 9월 9일 제5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이어 11일에는 핵실험 성공을 자축하는 군중대회를 평양시에서 요란하게 조직했습니다. 군중대회 이후인 14일에야 북한은 노동당 호소문으로 두만강 유역 큰물피해 복구를 공식 선언했습니다. 노동당 호소문의 내용을 한번 들어보시죠.
조선중앙TV: 우리 당은 완공을 눈앞에 둔 여명거리 건설도 중지하고 여기에 집중하였던 일체 건설역량과 설비 자재를 북부전선에 돌리는 조치부터 취하였다.
앵커: 그러니까 핵실험을 미리 준비하고 핵실험 성과를 자축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그 분위기를 두만강 유역의 큰물피해 복구로 이어갔다는 말씀이네요.
기자: 네, 자칫 수해복구가 진행되는 와중에 핵실험을 하면 북한 주민들로부터 큰 반발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반발을 면하기 위해 일부러 큰물피해 소식을 감추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핵실험이 있은 후인 14일에 노동당 호소문을 통해 함경북도 큰물피해 상황을 뒤늦게 알리고 수해복구에 모든 인적, 물적 역량을 총동원했다는 거죠.
앵커: 네, 그러면 이 큰물피해 복구에 동원된 인원은 얼마나 됐나요?
기자: 북한이 구체적으로 알리지는 않았지만 함경북도 돌격대 10만명, 여명거리 건설돌격대, 서해간석지 건설사업소를 비롯해 수해복구 현장에 직접 동원된 인원은 20만이 훨씬 넘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 외 큰물피해 지원 자금이라며 주민들로부터 거둔 현금과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라든지 청진수산사업소 등 큰물피해를 간접적으로 지원한 공장기업소들까지 합치면 사실상 북한의 동원 가능한 모든 노력과 자원이 함경북도 큰물피해에 투입됐다고 봐야 됩니다.
앵커: 네, 북한이 제대로 보도를 하지 않았지만 그동안 국제사회의 지원이 큰물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살리는데 큰 도움이 됐다면서요?
기자: 네, 유엔과 국제적십자는 함경북도 두만강 유역에 큰물피해가 발생하자 북한 당국보다 먼저 현장에 뛰어들어 구호활동을 벌렸습니다. 북한도 10월 5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유엔인도주의사업조정사무소와 유엔아동기금이 우리나라에 대한 긴급 협조를 결정하였다"고 보도를 했습니다. 그동안 유엔 중앙긴급구호기금(CERF)은 북한의 홍수피해 긴급대응지원금 75만 달러를 비롯해 여러 차례에 걸쳐 총 485만 달러의 자금을 지원했고요. 한국의 민간단체들도 밀가루와 식량을 지원했습니다.
앵커: 그런 지원에 힘입어 두 달 만에 1만2천여 세대의 살림집을 짓고 큰물피해 복구를 마무리했다는 거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수해복구가 시작 된지 불과 50여일 만에 살림집 1만1,900여 세대가 완공됐고 주민들의 입주가 시작됐다고 11월 15일에 보도했습니다. 또 11월 19일과 20일에는 이틀간에 걸쳐 입주행사를 조직하고 이 자리에 최룡해를 비롯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9명 전원을 참석시켰습니다.
앵커: 네, 북한은 수해복구가 그렇게 끝났다고 선전했지만 외부 언론들에선 부실공사논란이 끊이질 않았는데 대체 뭐가 잘 못됐다는 건가요?
기자: 네, 이미 한국의 언론매체들이 직접 중국 변방지대에 나가 북한이 새로 지었다는 살림집들을 촬영한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는데요. 중국 쪽에서 촬영한 영상을 보면 새로 지은 주택에 유리창 대신 비닐박막을 댄 모습이라든지 여러 가지 열악한 상황이 확인됐습니다. 한마디로 말로만 복구를 끝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앵커: 네, 지금까지 수고 많으셨습니다.
기자: 네, 감사합니다.
앵커: 자유아시아방송의 2016년 10대 뉴스 제3편 '해방 후 최악의 대홍수' 편을 마칩니다. 내일 이 시간에는 '노동당 7차대회' 편을 보내드립니다. 여러분의 많은 청취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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