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양자회담이 결국 열리게 된다는 전망이 힘을 받아가고 있습니다. 회담 개최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은 ‘6자회담의 틀 안’이라는 단서를 붙이기는 하면서도 날이 갈수록 이를 완화하는 발언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앵커:
허형석 기자, 북미 양자회담이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열릴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 이런 전망이 나오게 된 근거가 있습니까?
허형석:
우선 미국 국무부의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도쿄에서 한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즈워스 특별대표는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의 6자회담 당사국을 순방하고 8일 “미국은 교착 상태에 빠진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북한이 원하는 북미 간 양자 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며 “몇 주 안에 나의 북한 방문과 북핵의 대응 방안을 결정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한국 정부의 핵심 당국자도 9일 “6자회담 촉진을 목표로 북미 양자대화가 열리는 데 대해 북한을 제외한 5자 간 양해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두 가지 발언은 미국이 여건이 조성되면 북한과 양자회담을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앵커:
북한이 미국과 양자회담을 해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허형석:
미국과 양자회담을 해야 하는, 북한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이전에도 말씀을 드린 바처럼 북한은 체제 보장을 이룩하고 국제사회에서 경제와 식량 지원을 끌어내려면 미국과 회담하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합니다. 북한에 가장 적대적이면서 세계 유일의 초강국인 미국과 핵 문제를 비롯한 여러 현안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체제 보장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북한은 다른 나라는 미국만큼 위협적이지 않고 미국의 결정을 따라 온다고 봅니다. 따라서 미국과 현안만 해결하면 가장 우려하는 체제 보장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양자회담을 제의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언제나 이를 기다리는 형편입니다.
앵커:
미국과 양자회담을 하고 싶어하는 북한의 의도는 어디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까?
허형석:
이런 의도는 유엔 주재 신선호 대표를 통해 9월 3일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에게 전달된 서한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북한은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철두철미 미국의 대조선 핵정책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고 말해 미국과 풀어야할 현안 중 하나인 핵 문제를 언급하며 양자회담을 하고 싶은 의도를 비쳤습니다. 이와 함께 7월 27일에는 외무성 성명에서 6자회담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현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따로 있다”고 언급해 미국과 양자회담을 하고 싶은 의지를 강력히 표명했습니다. 북한은 이외에도 수시로 양자회담을 바라는 의사를 나타낸 적이 있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미국이 북한과 양자회담을 해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허형석:
미국은 전세계적으로 핵무기가 확산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북한과 양자회담과 벌였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이 회담에서 합의한 사항을 뒤집는 바람에 다시 6자회담을 벌여왔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시간벌기 작전에 말려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북한이 안보리 의장에게 서한을 보내 ‘마무리 단계의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의 무기화’를 밝히는 바람에 이것의 진위를 떠나 시간적으로 쫓기는 입장에 있습니다. 미국은 북한이 앞으로 핵무기 개발을 더 진척시킨다면 이 상태를 방치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시간은 더는 미국 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북한과 여건이 되면 양자회담에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앵커:
이런 상황에서 미국 국무부의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6자회담 당사국을 순방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허형석:
미국은 양자회담의 위험성을 잘 알기 때문에 여러 나라가 증인으로 나선 6자회담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6자회담의 틀 안’에서 북한과 양자회담이 가능하다는 견해를 밝혀왔습니다. 그러나 마냥 이 방식만을 고집할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보즈워스 특별대표는 ‘6자회담의 촉진’을 목표로 북미 양자회담을 할 수도 있다는 양해를 얻어 내려고 한국을 비롯한 다른 6자회담 당사국을 순방한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미국과 북한은 서로 양자대화의 필요성을 충분히 느끼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지금까지 무슨 이유에서 회담을 하지 못했습니까?
허형석:
미국의 접근법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대화의 재개 여부와 관계 없이 대북 제재는 계속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북한이 협상 탁자에만 나오면 제재를 중단했던 과거와 다른 방식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가 없으면 양자회담도 하지 않고 제재는 이어진다는 게 미국의 생각입니다. 반면 북한은 비핵화와 관련해 이렇다할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북한은 유엔 안보리 의장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의 무기화와 같은 핵개발 현황을 밝히며 미국에 압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이 추구하는 북한의 비핵화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양측이 이런 분위기에서 그동안 접점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양측이 각자 필요에 따라서 명분을 만들며 접점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양자회담의 이야기가 다시 나오고 있습니다.
앵커:
미국과 북한이 이렇게 해서 양자회담을 한다고 하면 그 전망은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허형석:
겉으로는 같이 활동하면서, 속으로는 딴 생각을 한다는 뜻인 ‘동상이몽(同床異夢)’이 양측의 처지를 잘 설명하는 말로 보입니다. 미국의 목적은 북한의 비핵화입니다. 북한이나 이란과 같은 불량 국가가 추가로 핵무기를 확보하면 국제 질서가 교란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반면 북한은 미국과 양자회담을 통해 핵보유국의 지위를 받고 더 나아가 이것에 근거해 체제 보장을 추구하겠다는 목표를 잡고 있습니다. 북한은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핵보유국의 반열에 오르고 싶은 생각입니다. 물론 양측은 회담에서 이해관계를 조정해 다른 결과를 도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북한은 추구하는 목표가 현재 너무나 판이하게 다른 상황에서 양자회담을 통해 ‘장기적으로는’ 합의를 끌어 내기가 매우 어렵다고 보입니다. 두 나라가 협상 탁자에 마주 앉으면 지루한 밀고 당기기를 재현할 전망입니다.
앵커:
네, 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요즘 들어 자주 나오는 북미 양자회담의 개최 가능성에 관해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