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은 한국 정부가 신형 독감의 치료제인 타미플루를 비롯한 의약품을 인도적 차원에서 제공하겠다는 제의를 바로 받아들여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대외적인 체면만을 생각하다가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는 상황을 맞기보다는 일단 치료제를 받고 위기를 넘기는 편이 더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보입니다. 이에 관한 소식을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앵커 :북한은 한국 정부가 신형 독감 치료제 타미플루를 비롯해 의약품을 제공하겠다는 제의를 바로 받아들였습니다. 그간의 경과를 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기자 : 8일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북한에 최근 신형 독감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있는 만큼 사실 관계를 확인해 도와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통일부는 곧 신형 독감의 치료제인 타미플루를 비롯해 의약품을 북한에 지원하는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9일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신의주와 평양에서 돌림감기 확진 환자가 9명 나왔다"고 전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10일 판문점 연락관을 통해서 의약품을 지원할 의사가 있다고 통보했습니다. 이날 오후 북한 당국은 지원 의사를 수용한다는 뜻을 바로 전해왔습니다. 현인택 통일장관은 이날 신형 독감 치료제 50만 명 분을 제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원 규모와 시기만 남았습니다.
앵커 : 한국 정부가 이번에 지원하는 의약품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기자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처음 인도적 지원이 북한에 대해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북한에 대해 핵 문제의 투명성과 상관 없이 인도적 지원은 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습니다. 그러나 인도적 지원 이외의 쌀과 비료 지원은 하지 않고 있어 북한과는 냉랭한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이번 의약품은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받아들인 인도적 지원이라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앵커 :자, 그렇다면 북한이 이전과 달리 대외적 위신을 내세우지 않고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바로 받아들인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기자 : 신형 독감에 대처할 정도로 충분한 의약품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형 독감처럼 재빨리 퍼지는 질병을 잡을 정도의 의료 시설과 인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치료제까지 없을 경우 속수무책(束手無策)인 상황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북한이 이번엔 그 특유의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남쪽의 지원을 받아들인다고 바로 결정한 배경에는 북한의 열악한 의료 상황이 있다고 보입니다. 이와 함께 북한은 대립각을 세우면서 이 대통령의 인도적 지원 제의를 굳이 물리칠 이유가 없었다고 추정됩니다. 북한이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은 것은 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내렸던 지시에 우회적으로 화답한 측면도 있습니다.
앵커 : 북한에서 신형 독감이 어느 정도까지 발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나요?
기자 : 조선중앙통신의 보도가 있기 전에는 한국에 있는 대북 인터넷 매체의 보도가 있었습니다. 대북 인권 단체인 <좋은벗들>은 지난달 초부터 신형 독감이 유행해 수십 명이 고열에 시달리고 사망자가 상당수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데일리 NK>도 북한의 각종 학교가 한 달 일찍 방학에 들어갔다고도 전했습니다. 그렇지만 중앙위생방역소 소장을 비롯한 방역 관계자들은 환자가 단 한 명도 북한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얼마 전까지 주장했습니다. 북한은 이번에 남쪽의 지원을 수락함으로써 이런 주장을 뒤집은 셈입니다.
앵커 : 그런데 북한은 최근 발생한 신형 독감이 남쪽에서 전염됐다고 주민에게 알리고 있다는데 어떤 내용입니까?
기자 : 10일 한국의 대북 라디오 방송인 <열린북한방송>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신형 독감이 남쪽에서 전염됐다고 주민에게 선전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각급 교육기관 책임자와 보건 담당자에게 전달된 북한 당국의 지시 사항에는 급속하게 퍼져 나가는 신형 독감이 개성공단을 통해 남쪽에서 왔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이 방송은 전했습니다. 북한 당국은 한국에서 신형 독감이 유행했던 점을 감안하면 제일의 감염로로 개성공단을 추정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곳을 통해서 신형 독감이 북한으로 전해졌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앵커 : 한국 정부는 신형 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를 북한에 제공하려고 어떤 준비를 했습니까?
기자 : 한국 정부는 신형 독감 환자가 북한에서 발생했다는 조선중앙통신의 보도가 나온 뒤 이를 수락 의사로 해석했습니다. 국무회의에서 나온 이 대통령의 지시에 대한 화답으로 보고 먼저 북한에 지원 의사를 밝혔습니다. 타미플루를 지원해 달라는 북한의 요청을 굳이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전통문을 통해서 제의하는 안과 판문점 연락관을 통해서 제의하는 안을 놓고 저울질을 했습니다. 북한이 옥수수 만 톤을 지원하겠다는 남쪽 제의에 묵묵부답을 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제의는 전통문으로 해 한국의 위신이 더 서지 않았습니다.
앵커 : 한국이 북한에 신형 독감 치료제를 제공하겠다고 밝혔고, 북한은 이를 수락한 상황입니다. 이 같은 제의와 수락이 남북 관계에 호재로 작용할까요?
기자 : 장기와 단기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핵 문제와 관련해 진전된 상황이 있을 때만 남북 관계가 전반적으로 풀릴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장기적인 측면에서 북한이 제의를 수용한 사실 하나만을 놓고 이를 호재로 받아들이긴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단기적 측면에서는 호재가 될 수는 있다고 보입니다. 타미플루 제공으로 형성된 분위기가 10월 14일과 16일 열렸던 임진강 수해 방지를 위한 실무회담이나 남북 적십자의 실무 접촉을 이어나갈 수 있는 좋은 재료가 충분히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런 사례도 있었습니다. 2005년4월 탈북자 468명이 대거 베트남에서 들어 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남북 관계가 얼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조류 독감으로 한국의 지원을 받으며 관계 전환에 도움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일부에서는 북한이 일단 치료제만 챙긴 뒤 이전과 같은 태도를 다시 보일 것으로 전망합니다. 장기적인 측면에선 호재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앵커 : 남쪽이 북쪽을 지원한 사례로는 어떤 것이 있었습니까?
기자 :몇몇 대표적 사례가 있습니다. 2007년 8월의 수해, 2006년의 구제역 파동, 2005년의 조류 독감 파동, 2004년의 룡천역 폭발사고 때 남측의 대규모 지원이 있었습니다. 북한은 과거 몇 년 동안 남쪽의 제의에 응하거나 피해를 공표하는 방법으로 지원을 받아들였습니다.
앵커
:
네, 지금까지 북한이 한국의 의약품 지원을 받아들인 배경에 관해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