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가장 중요한 대중교통 수단인 철도가 열악한 전기사정으로 운행 도중 장시간 멈춰서는 일이 많다는 사실은 이미 보도를 통해 알려진 얘깁니다.
그런데 열차가 운행하다 정전으로 서게 되면 이를 알아채고 크게 반기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요. 무슨 사연인지 중국에서 김준호 특파원이 전해드립니다.
북한의 철도는 낙후된 시설과 전기부족으로 인한 잦은 정전으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느린 열차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운행 도중 심할 경우 24시간 이상 허허벌판의 철로 중간에 서있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함경남도 주민 민 모씨는 최근 열차로 함흥에서 혜산까지 오는데 꼬박 3박 4일이나 걸렸다고 증언했습니다. 혜산을 경유해서 중국에 나왔다는 민씨는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달리는 시간보다 서 있는 시간이 훨씬 많은 열차여행 하느라 겪은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면서 “그 와중에도 열차가 중간에 서면 신바람 나게 몰려드는 사람들이 있다”고 자유아시아 방송(RFA)에 그 실태를 전했습니다.
열차가 일단 서면 몇 날 며칠이 걸릴지 모르기 때문에 철도 여행객들은 미리 여분의 식사를 준비해가지만 요즘 같은 여름철에는 많아야 한두 끼를 해결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철로 주변 주민들은 달리던 열차가 서기만 하면 마치 준비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 열차 승객들에게 먹을거리를 팔기 위해 구름같이 몰려드는 웃지 못 할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열차승객에 파는 것은 주로 먹을거리가 대부분이지만 요즘엔 세숫물 장사꾼까지 등장했다고 민 씨는 전했습니다. 민씨는 “속도전가루 떡 한 조각이 국돈(북한 돈)으로 4백 원 정도인데 한사람이 적어도 5개는 먹어야 겨우 허기를 면할 수 있다”면서 “열차에서 몇 날밤을 새워야 하기 때문에 세숫물 장사까지 등장했다”고 밝혔습니다.
“고양이 세수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세숫대야에 담긴 물 값은 국돈(북한 돈) 3백 원인데 양치질까지 하려면 물 값을 5백 원은 내야 한다”고 민 씨는 덧붙였습니다.
이와 관련 또 다른 함경북도 주민 장 모 씨는 “장마당의 일반 물가에 비하면 턱없이 비싸지만 그래도 이들 덕분에 열차여행하다 배를 곯는 일은 면하게 됐다”면서 “철도 인근에 사는 주민들과 꽃제비들은 열차가 오래 서면 설수록 즐거운 사람들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장씨는 “열차 중에는 식당차가 딸려있는 것도 있지만 값만 비싸고 음식도 형편없어 철도 주변 주민들의 음식장사는 날로 번창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증언했습니다.
북한의 열차는 각 지방 철도국 간에 열차 앞대가리라고 불리는 동력차를 철도국 관내를 벗어날 때마다 바꿔달고 가야 하는 운영체계로 되어있습니다. 동력차가 절대 부족한 북한에서는 중간 역에서 교환할 동력차가 올 때까지 장시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