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이처럼 강경으로 치닫던 대남 정책을 바꾸고 제한을 해제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이에 관한 자세한 소식을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앵커:
허형석 기자, 북한이 이번에 육로 통행과 체류에 관해 내놓은 해제 조치는 무엇입니까?
허형석:
북한은 20일 남한 당국에 ‘작년 12월 1일부터 남측 인원들의 군사분계선 육로 통행과 관련해 취한 중대 조치(12.1 조치)를 21일부터 해제한다’고 통보했습니다. 또 12.1 조치의 일환으로 중단한 경의선 철도 운행을 재개하는 한편 개성 남북경협협의사무소도 재가동한다고 개성공단관리위원회로 알려왔습니다. 통행 제한의 해제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한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간의 면담이 있고 나서 북한 측이 발표한 5개 사항 중의 하나였습니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남측과 협의할 필요가 없는 사안이어서 시행은 시간 문제였습니다.
앵커:
이런 조치가 나온 거시적인 배경은 어디에 있습니까?
허형석:
북한은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에 대해 핵 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강경 국면으로 대처해 왔습니다. 그러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를 맞으면서 경제 상황이 어려워져 미국 달러를 구하는 데 힘이 들자 방향을 바꿔 유화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은 이런 국면에서 나왔다고 보입니다. 더구나 북한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미국과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양자 회담을 강력히 원하면서 더욱 유화적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과 대결 국면을 유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번 조치는 북한이 이처럼 어려운 정치 경제적 상황을 맞아 유화 국면으로 돌아선 배경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미시적인 배경은 무엇이라고 볼 수 있나요?
허형석:
북한은 김대중 전 남한 대통령의 서거에 맞춰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를 비롯한 실세 조문단을 21일 파견했습니다. 이는 대남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도로 파악됩니다. 그동안 남한에서는 북한의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 남한 사람에 대한 육로 통행과 체류의 제한 등으로 북한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조문단의 방문에 맞춰 이런 여론을 좋게 만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작업을 받쳐줄 사항으로 육로 통행과 체류에 관한 제한을 해제하는 조치를 취했던 것입니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는 대남 관계를 개선하려는 북한에 아주 좋은 재료로 작용했습니다.
앵커:
작년 12월 1일 북한이 취한 육로 통행과 체류에 관한 제한은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허형석:
작년 12월 1일 이전까지는 경의선 도로를 통한 남북 간 왕래 횟수가 매일 출경(방북) 12회, 입경(귀환) 7회였습니다. 북한 당국은 이를 각각 3회로 축소했습니다. 또 하루 두 차례씩 출입경을 허용하던 동해선 출입을 각각 한 주에 1회만 허용했습니다. 통행 시간대별 통과 인원과 차량 대수도 500명, 200대에서 250명, 150대로 줄였습니다. 그런가하면 개성공단에 상시 체류할 수 있는 사람의 수를 880명으로 제한했습니다. 이밖에도 북한 당국은 개성 남북경협협의사무소를 폐쇄하고 경의선 철도의 운행과 개성관광을 중단했습니다.
앵커:
북한 측이 이렇게 육로 통행과 체류를 제한함으로써 실제로 타격이 상당했지요?
허형석:
3천 명 안팎으로 추정되던 개성공단의 상시체류증 소지자가 880 명으로 제한됐습니다. 기업 관계자들은 큰 불편을 겪었습니다. 육로 통행이 제한되면서 원자재와 생산품이 적절한 때에 이동하지 못했습니다. 일부 기업은 주문자에게 때에 맞춰 물건을 보낼 수 없었습니다. 동해선 육로는 화요일에만 한 차례 이용할 수 있어 금강산 지구에서 하는 각종 교류와 협력 사업은 사실상 중단됐습니다. 경의선 열차의 운행 중단에 이어 금강산 관광과 개성 관광도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한 조치는 이처럼 남북 교류에 상당한 타격을 주었습니다.
앵커:
이런 제한을 풀어 버린 북한 측의 이번 조치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습니까?
허형석:
북한 측이 작년 12월 1일 육로 통행과 체류에 관한 제한을 발표하자 남한 측은 유감을 나타내면서 이 같은 조치의 철회를 강력히 요구한 바 있습니다. 북한은 이런 요구에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대결 국면을 견지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한국 정부의 특별한 요청이 없었는데도 제한 조치를 해제했습니다. 대다수 대북 전문가는 이런 맥락에서 이를 남북 관계의 전면적인 화해로 보기는 어렵지만 일단 긍정적인 변화로 본다는 데 에 견해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 북한의 조문단 파견, 남한의 남북적십자 회담 제안과 거의 동시에 나온 이 같은 제한 해제는 남북 관계가 화해로 가고 있다는 징표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앵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어떤 입장입니까?
허형석:
한국 정부는 비정상적인 조치가 정상 상태로 돌아왔다는 입장입니다. 정부 관계자는 기술적인 문제로 실제 제한이 다 풀리기까지는 일주일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앞서 말씀을 드린 바와 같이 이 조치는 북한이 일방적으로 취할 수 있는 사항이었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그 시행 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한국 정부는 북한이 조문단 파견에 맞춰 이런 조치를 내놓은 점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런 조치가 한국 정부에 대한 선수 조치이자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대남 전략전술의 일환으로도 보고 있습니다.
앵커:
네, 북한이 작년 12월1일부터 올해 8월 20일까지 시행해 온 육로 통행과 체류 제한에 관한 조치의 내용과 이 때문에 남측 기업이 입은 타격, 이런 제한을 해제한 배경, 제한 해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 등을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