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기다리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은 현실적 여건을 고려할 때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닌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김일성 평전'을 비롯해 북한에 관해 여러 저명한 서적을 펴낸 미국 학계의 북한 전문가인 서대숙 하와이대 석좌교수는 12일 자유아시아방송과 한 회견에서 이 같은 견해를 밝혔습니다.
회견에 장명화 기자입니다.
장명화:
최근 미국에서는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까운 예로, 미국 국방부 산하의 합동군사령부 (USJFCOM)는 지난달 공개된 보고서에서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명기했습니다. 최근 발간된 국가정보위원회 (NIC)의 보고서도 북한을 ‘핵무기 국가'로 기술했습니다.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도 최신 기고문에서 "북한이 여러 개의 핵폭탄을 제조했다"고 밝혀서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이런 흐름을 보면, 미국이 사실상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듭니다.
서대숙
: 저도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라도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고, 협상도 그런 입장에서 해야 합니다.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북한은 핵을 이미 갖고 있습니다. 설령 포기한다고 해도 다 공개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과 국교를 수립하느냐 마느냐는 북한의 생존과 북한 체제를 유지해 나가는 데 큰 문제가 아닙니다.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향후 전쟁을 일으켜 특정 국가에 핵무기를 쓰려는 게 아니라, 외부의 공세로부터 북한 체제를 보호하기 위해섭니다.
장:
그럼 오바마 정부가 기존의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서:
부시 대통령이 대통령에 취임한 후, 지금까지 8년 동안 6자회담을 지속해왔습니다. 6자 회담이 성공했습니까? 전혀 아닙니다. 부시 대통령은 아직도 6자회담을 성공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오바마 정부는 대북 정책을 바꿔야 합니다. 한번 북한이 원하는 대로 미국과 북한이 양자회담을 해도 나쁘지 않습니다.
미국이 북한과 양자회담을 해서 손해를 볼 일이 뭡니까? 그럼 6자회담으로는 왜 안 되느냐? 미국과 북한을 제외하고 각 나라의 의제가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일본은 납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6자회담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이런 식으로 다른 참가국이 하나둘 조건을 걸면, 미국이 다 들어줘야 합니다. 한마디로 6자회담은 끝났습니다.
장:
남북 관계가 계속 경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신년사에서 “언제라도 북한과 대화하고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는 원론적인 언급을 하면서, “의연하면서도 유연하게 남북관계를 풀어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이에 대해 맹렬히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어떻게 대북 정책을 운용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서:
저는 북한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왜냐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너무 일방적으로 북한을 두둔했습니다. 또 본인들이 북한에 한 번 갔다 오면 통일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퍼주기 외교’를 해왔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줄 때는 주고 받을 때는 받고, 서로 대화를 하고 문제를 해결하면서, 남북 관계를 하겠다, 시간이 걸려도 그게 낫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를 두고 ‘극우’니 ‘냉전시대로 돌아갔다’느니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봅니다. 내가 이명박 정부를 지지해서가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는 어느 정도 식견을 갖고 북한 문제를 대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은 노벨상을 타려고 기다리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북한과 어떻게 하면 같이 잘 살 수 있나, 또 그런 방향으로 통일을 하자고 하는데, 북한에서 벌써 난리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민족의 역도’라는 둥 나쁜 소리를 마구 합니다. 북한에서 그만큼 속으로 찔리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장:
북한이 올해 발표한 신년사를 보면, 내부적으로는 경제 회생에 온 힘을 다할 것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 개성시 인민위원장에 41세의 박용팔을 임명한 데 이어 3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통해 ‘혁명 3세대’로 불리는 신진 관료를 대거 기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은데요, 박사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서:
북한에서 앞으로 경제 문제를 여유있게 해결해 나갈 겁니다. 문제는 구세대의 지도자들을 대신해 젊은 지도자들이 앞장서야 하는데, 어떤 사람들이 나오느냐가 관건입니다. 이번에 제12차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3월에 선거를 통해 뽑고, 9월에 개회할 모양인데, 대의원이 많이 바뀔 겁니다. 지금 687명인데, 상당히 많이 바뀔 겁니다.
정치적 이유뿐만 아니라 대의원 대다수가 나이가 많아서 이미 사망했고, 지난 10년 동안 새로 뽑지 않았으니까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지도자들도 많이 바뀔 것으로 보입니다. 어느 정도로 바뀌느냐를 봐야 어느 선에서 선군정치가 후퇴하고, 국가 정책이 당을 위주로 다시 회복될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금년이 중요한 해입니다. 하지만 외부에서는 대의원 선거 결과만 봐서, 경제 관료들이 대거 진출했는지 여부를 알 수 없습니다. 일단 대의원 수가 너무 많아요.
장:
마지막으로 향후 북한의 권력 구조가 어떻게 변할 것으로 보십니까?
서:
저는 김일성, 김정일이 이끄는 지도 체제는 끝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북한의 권력 승계는 북한 체제를 유지해 나갈 사람을 뽑자는 것이지, 김정일 위원장이 자신의 아들들이나 딸에게 권력을 승계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김정일 위원장이 벌써 기반 사업을 시작했어야 합니다. 고 김일성 주석은 아들 김정일을 후계자로 내세운 뒤 20년 동안 후계자 학습을 시켰습니다. 당에서 경험도 쌓고, 노동도 직접 해보는 등 여러 훈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김정일 위원장은 그런 훈련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습니다. 맏아들도 김일성 때와는 다릅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김정숙의 맏아들로 적어도 정통성이 있습니다. 김정일의 경우, 성혜림이라는 유부녀 사이에 낳은 아들이 김정남인데, 이 사람이 현재 맏아들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김일성이 살아있을 때는 불가능했습니다. 그 후에 일본에서 데려온 고영희 씨와 사이에 두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24살, 26살로 너무 어립니다. 후계자로 지목했으려면 벌써 시작했어야 합니다. 설령 지금부터 20년을 훈련한다쳐도, 김정일이 80, 90세가 되는데, 그렇게 장기전이 되리라고 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