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미군 유해 59년 만에 가족 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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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이듬해 전사한 미군 병사의 유해가 59년 만에 가족의 품에 안깁니다.

박정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1월 하순. 미 제2사단 9연대 알파(A) 중대 소속 로이 스튜어트 상병이 북한 지역에서 작전 중 포로가 됩니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공산주의에 맞섰던 미시시피 주 잭슨 출신의 스튜어트 상병은 포로가 된 지 4개월 만인 1951년 3월14일 스물 일곱 살의 젊은 나이에 전사합니다.

이후 스튜어트 상병의 유해는 한국전쟁이 끝난 뒤인 1954년 가을 미국과 북한 간 유해 반환 합의에 따라 미국에 인도됩니다. 당시 북한이 미국에 인도한 미군 유해는 모두 4천167구. 미국은 1만2천 구 이상의 북한군 유해를 북 측에 넘겼습니다.

하지만 스튜어트 상병의 유해는 곧바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당시 기술 수준으로는 손상 정도가 심한 스튜어트 상병의 유해에서 그 신원을 확인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다른 415명의 신원 불명인 미군 유해와 함께 하와이 호놀룰루의 태평양 국립묘지에 임시 안장됐던 스튜어트 상병의 유해는 마침내 2008년 9월 재발굴 됐습니다. 그동안 꾸준히 발전해온 유해 감식 기술 덕택에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된 미군 당국은 치아 감별을 통해 유해의 주인이 스튜어트 상병임을 확인한 뒤 최근 이를 가족에 통보했습니다.

전사한 지 59년, 그리고 최초로 발굴된 지 56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된 스튜어트 상병의 유해는 17일 오전 미국 워싱턴 근교의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됩니다.

스튜어트 상병의 59년 만의 귀환에는 현재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 살고 있는 여동생 캐서린 매키 여사가 참석해 오빠의 마지막 길을 지킬 예정입니다.

한편 스튜어트 상병의 신원이 확인됨에 따라 한국 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중 현재까지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134구로 늘었고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실종자는 8천23명으로 줄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