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북한을 겨냥해 구상하는 금융 제재가 차츰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제재의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미국은 북한이 6자회담에 참여해 비핵화로 나가도록 압력을 넣는 한편 천안함 사태를 일으킨 북한을 응징하기 위해 고삐를 조이고 있습니다. 미국은 더 나아가서 북한의 정권 교체까지 염두에 뒀다고 보입니다. 이에 관한 이모저모를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봅니다.
앵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새 금융 제재를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려고 합니까?
기자: 북한에 대한 금융 제재는 3단계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미국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이 밝힌 바를 보면 미국 정부는 1)제재 대상을 지정-2)해당 금융기관에 거래 중단을 권고-3)협조하지 않으면 미국 금융 기관과 거래 중단 등 3단계로 제재를 진행합니다. 미국 정부는 이미 발표한 기관이나 개인을 포함해 추가로 제재 대상을 확정하면 이들과 거래하는 제3국의 금융기관에다 통보하고 거래 중단을 강력히 권고합니다. 제3국의 금융기관이 이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미국 금융기관과 거래 중단이라는 마지막 조치를 취합니다. 해당 은행들이 미국 금융기관과 거래를 중단을 하면 사실상 금융 업무를 포기하는 엄청난 결과를 맞습니다.
앵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제재를 취하기 위해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습니까?
기자: 한국 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미국이 행정명령으로 대북 제재에 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은 기존의 행정명령 13382호가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개인과 기관 등을 추가로 제재 대상에 올리는 새 행정명령을 작성하고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미국은 북한과 거래한 마카오 소재의 은행 방코델타아시아(BDA)를 제재할 때 애국법 301조를 적용했습니다. 새 행정명령은 대북 제재와 관련해 새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된다는 의미입니다.
앵커: 미국은 핵을 개발하고 테러를 지원하는 이란에 이란제재법으로 대응했습니다. 북한에도 이 법에 나온 방식과 비슷하게 대응한다고 볼 수 있나요?
기자: 미국의 이란제재법은 이란의 핵 개발이나 테러 지원과 관련한 기관과 거래하는 다른 나라 은행을 미국의 금융 체제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담았습니다. 미국이 구상하는 3단계 대북 금융 제재는 결국 이와 비슷한 내용이 된다고 전망됩니다. 미국 국무부의 로버트 아인혼 북한/이란 제재 조정관이 최근 유럽을 순방하며 이 같은 내용을 설명했다고 전해졌습니다. 북한과 거래를 하는 다른 나라 은행은 미국의 금융 체제에서 배제되는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면 북한의 불법 계좌를 허용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BDA 제재보다 더 큰 파장을 일으킨다고 예상됩니다.
앵커: 북한이 현재 해외 은행에 갖고 있는 계좌는 얼마나 됩니까?
기자: 북한의 은행들은 중국을 비롯한 12개국 은행 17곳에 모두 37개의 계좌를 열어 놓았다고 알려졌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의 1718위원회/대북제재위원회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은행들의 계좌는 대부분 중국과 유럽 국가에 있습니다. 이 중 절반 가까운 17개가 중국에 있습니다. 북한은 러시아, 스위스, 헝가리, 폴란드, 이탈리아, 독일, 벨라루스 등지에도 계좌가 있었습니다. 북한의 은행 가운데 '압록강조선통일발전은행'은 21개로 가장 많은 계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선광선은행'은 9개로 두 번째로 나타났습니다.
앵커: 중국과 유럽 지역의 은행에 있는 북한 은행들의 계좌는 사실상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밀 통치 자금/비자금이 들어간 곳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 돈의 규모는 얼마나 됩니까?
기자: 현재 알려진 김 위원장의 비자금 규모는 약 40억-50억 달러로 추정됩니다. 이 같은 돈은 룩셈부르크,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등지의 해외 은행에 감춰졌다고 알려졌습니다. 미국 정부가 추가적인 금융 제재를 통해 주목하는 돈은 약 10억 달러입니다. 김 위원장이 1년 동안 정권을 유지하려면 그 정도의 돈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의회조사국은 2005년 북한이 마약 밀수, 위조 지폐 등의 거래를 통해 연간 최대 10억 달러의 수입을 올린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미국이 이처럼 북한에 대해 새 금융 제재를 취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기자: 미국이 북한의 돈줄을 조이려는 데에 있습니다. 미국은 북한이 재래식 무기, 마약, 위폐, 가짜 담배로 불법 자금을 형성해 왔으며 이 자금이 북한 정권의 생명을 연장했다고 판단합니다. 따라서 이런 돈줄을 끊어야만 북한 정권에 타격을 줄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북한은 6자회담에 나와 비핵화의 길로 가지 않을 수가 없다고 전망합니다. 미국의 금융 제재는 천안함 사태를 일으킨 북한에 대한 응징이라는 측면도 아울러 갖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미국은 북한의 정권 교체를 노린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이런 분석은 미국의 북한 조이기가 천안함 사태에 대한 응징과 6자회담 복귀에 대한 압력을 넘어 정권 교체까지 포괄한다고 보입니다.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21일 서울에서 대북 금융 제재를 발표하며 "북한 지도부와 자산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말한 내용은 여운(餘韻)이 있는 대목입니다.
앵커: 미국이 이 같은 금융 제재를 취함으로써 예상하는 북한 내의 변화는 무엇입니까?
기자: 미국은 북한에 대해 추가적으로 금융 제재를 취하면 북한 지도부 내에서 분열이 생기며 이는 북한 정권의 몰락과 새 정권의 출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합니다. 현재의 김정일 정권과는 비핵화를 비롯한 여러 현안을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압력을 계속 가해 정권 교체를 유도하겠다는 복안입니다. 미국은 2005년 BDA 제재를 내렸을 때 북한 정권에 타격을 가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합니다. 북한은 일반 사람의 예상을 뛰어 넘는 독재 체제를 통해서 정권을 유지합니다. 미국은 그렇다고 해도 생명줄인 돈줄을 조인다면 지도부의 분열을 비롯해 북한 내에서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외화 수입이 줄어 돈줄이 말라버리면 김 위원장과 지도부 간의 충성 관계에 금이 갈 수도 있다고 분석입니다.
앵커: 북한이 국제 사회의 금융 제재로 고생하는 사례가 있나요?
기자: 북한은 이미 작년에 취해진 국제 사회의 대북 금융 제재로 수출 대금의 회수에 애를 먹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북한의 대표적 광물인 마그네사이트의 생산업체가 금융 제재 이후 수출 대금의 송금 중계를 맡겠다는 외국계 은행이 없어서 작년 유럽에 수출한 460만 달러의 아연괴 대금을 회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른 광물 수출업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로 전해졌습니다. 아인혼 북한/이란 제재 조정관이 8월 2일 한국 정부의 관계자들과 만난 뒤 금융 제재의 원칙과 방향을 밝힙니다. 북한의 고통은 아인혼 조정관의 방한을 계기로 더 심해진다고 전망됩니다.
앵커: 지금까지 점점 더 구체화하는 미국의 대북 금융 제재를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