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재향군인의 날’ 한국전 희생자도 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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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은 미국 재향군인의 날입니다. 1954년 이후 해마다 이날을 전후해 미국 전역에서는 다양한 행사로 한국전 참전 용사를 비롯해 세계 평화를 위해 희생한 모든 미국 퇴역 군인을 기리고 있습니다.

양희정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미국 워싱턴의 근교에 있는 알링턴 국립묘지를 비롯한 미국 전역에서는 희생과 봉사의 정신을 보여준 모든 퇴역군인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로 ‘재향군인의 날’을 기념합니다. 11일 오전 8시에 워싱턴 시내의 2차대전 기념관에서의 헌화를 비롯해, 오전 11시에는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무명용사 묘지 또는 기념비에, 헌화를 하는 등 각종 기념식과 행진도 열렸습니다. 이 날은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행사도 있었습니다.

미국 동남부 플로리다 주에 거주하는 한국전참전용사협회 프랑크 코히 전국 협회장은 자신이 사는 플로리다의 폴크지역에서는 지난 7일에 재향군인의 날 행사가 있었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습니다. 자신을 비롯한 한국전 참전 군인들이 하얀 웃옷에 파란 바지, 훈장 등을 마치 군복처럼 갖춰 입고 대규모로 행진했고 플로리다의 레이크랜드 지역에는 지금까지 한국전 참전 기념비만 있었는데, 지난 주말 베트남 참전 용사를 위한 기념비도 제막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한국전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코히씨: 많은 사람이 한국전이 ‘잊혀진 전쟁’이라고 하지만 많은 미군이 아직도 위험한 상황에서 한국에 남아 있습니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죠.

올해 여든 살인 코히씨는 1950년 8월에 자신이 속해 있던 제19정비중대 전체가 한국전에 참전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에서 제2보병부대의 탱크나 총 등이 고장 나면 고치는 일을 도왔기 때문에 최전방에서 싸우지는 않았지만, 한반도 남단의 부산에서부터 현재의 북한지역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남하하는 동안 매우 덥고 추웠던 기억이 난다고 밝혔습니다. 코히씨는 1990년대에 두 번 한국을 방문하고 한국전 당시에는 한강에 다리가 하나밖에 없었는데 열 개도 넘는 다리가 세워졌고, 고층건물이 가득 들어선 한국의 발전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코히씨는 한국인이 자신들의 희생, 봉사에 대해 아직도 매우 고마워한다고 기뻐했습니다.

또한, 코히씨는 예전에는 미국인이 한국전에 대해 모르고 있었는데 지금은 자신이 모자를 쓰고 거리에 나가면 미국과 세계평화를 위해 싸워 고맙다며 다가오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한국전참전용사협회는 현재 만 7천 300명의 회원이 있는데 해마다 열리는 전국총회의 소위원회 중에 ‘미국에 말하다’라는 프로그램이 있어 학교 등에 가서 한국전에 관해 설명합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많은 참전 용사들이 나이가 들어 작년에만 700명이, 그 전해에는 500명의 회원이 사망했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버지니아주에 거주하는 한국인 재향군인은 북한에서 태어난 자신은 항상 배가 고팠는데 미국에 와 보니 부족한 것이 없는 미국의 청년이 한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희생한 것이 놀랍고,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인 참전용사: 공산주의 침공에 대항해 군 복무를 하고 생명을 바친 한국전 참전 군인의 가족들을 만날 때마다 위로와 감사를 합니다.

이 참전용사는 1960년대 군사정전위 수색대에서 근무했는데, 개울가에서 군인들의 유골을 발견하고는 그들 부모님의 슬픔이 생각나 목이 멨다고 전했습니다. 황해도에서 태어난 그는 당시 19살이었는데 한국군이 북한 땅에 올라갔을 때 따라 내려와 한국군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팔•다리에 부상을 당하고도 전쟁을 계속해야 했던 자신의 군 동료의 피눈물나는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 지금까지도 가끔 악몽을 꾸고 땀을 흘리며 깨어난다고 이 참전용사는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