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북한 해외 노동자] ⑪ “폴란드선 이목 피해 지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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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북한이 외화벌이를 위해 전 세계 곳곳으로 주민들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북한의 해외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노예노동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이 마련한 ‘2016 연중 기획보도’ 북한 해외노동자 시리즈오늘은 그 열 한 번째 순서로 인권 유린 논란이 된 폴란드 즉 뽈스까의 수도 바르샤바 시내 건설현장과 북단 발트해 연안 조선소에서 사라진 북한 노동자 편을 보내 드립니다.

양희정 기자가 현장을 직접 다녀 왔습니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크리스트 조선소.RFA PHOTO/ 양희정
아침 해가 떠오르는 크리스트 조선소.RFA PHOTO/ 양희정

폴란드 북단 발트해의 항구 도시 그단스크(Gdansk). 지난 9월 16일 새벽 4시가 채 안 된 시각. 전날 밤 11시가 넘어 그단스크에 도착한 기자는 그단스크에서 북서쪽으로 30여 분 떨어진 인근 도시 그디니아(Gdynia)로 향했습니다. 지난 8월 1일 북한 노동자들이 모두 떠났다는 그디니아 크리스트 조선소의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크리스트 조선소 측은 현장 취재에 나서기 전인 지난 9월 초 북한 노동자 관련 공식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의 전자우편에 답 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잠복 취재를 하기로 했습니다.

(효과음… GPS 독일어 안내/ 고속도로 자동차 소리)

육교에서 내려다 본 그단스크 나우타 조선소. RFA PHOTO/ 양희정
육교에서 내려다 본 그단스크 나우타 조선소. RFA PHOTO/ 양희정

클레벤(Kleven)과 울스타인(Ulstein) 등 노르웨이 선박회사들은 지난 여름 대량살상무기개발과 해외 파견 노동자의 강제노역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는 북한이 파견한 노동자를 고용한다면 크리스트 조선소에 선박을 수주하지 않겠다고 항의했습니다. 이에 크리스트 조선소는 현재 건설 중인 13척 중 10척을 수주한 주요 고객 노르웨이 선박회사들을 포기하는 대신 북한 노동자 고용 중단을 택했습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아 깜깜한 새벽 하늘을 뒤로 하고 영롱하게 반짝이는 크리스트 조선소 불빛이 점점 크게 다가옵니다. 2014년 북한 용접공 전경수 씨가 방화복도 제대로 입지 않은 채 작업을 하다 신체의 95퍼센트 이상에 심한 화상을 입어 마침내 사망했던 조선소입니다.

(In German…주차장 찾는 소리… Park like this!)

나우타 조선소에서 노동자들이 하나 둘 씩 퇴근하고 있다. RFA PHOTO/ 양희정
나우타 조선소에서 노동자들이 하나 둘 씩 퇴근하고 있다. RFA PHOTO/ 양희정

기자는 새벽 5시가 채 안 된 시각, 인적이 거의 없는 크리스트 조선소 입구에 도착해 출근하는 노동자들을 한 눈에 관찰할 수 있는 위치에 차를 주차합니다.

(If we park at the circle, it’s very obvious. Yeah.)

퇴근하기 위해 나우타 조선소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노동자들 중 아시아인은 보이지 않는다. RFA PHOTO/ 양희정
퇴근하기 위해 나우타 조선소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노동자들 중 아시아인은 보이지 않는다. RFA PHOTO/ 양희정

날이 밝으면서 하나, 둘씩 늘어나는 노동자 무리 속에 북한 노동자가 있는지 유심히 바라봅니다.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홀로 걸어가는 사람, 삼삼오오 무리 지어 가는 사람들 속에 손에 도시락처럼 보이는 뭔가를 들고 걸어가는 사람,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도 종종 눈에 띕니다. 멀리 정류장에서는 수 십 명의 노동자가 버스에서 내립니다.

(No Koreans… no, no, no)

망원경으로 지나가는 다인승 자동차까지 주의 깊게 들여다 보지만 동이 훤하게 트고 점점 인적이 드물어가는 조선소 입구에 북한 노동자는 물론 아시아계 노동자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 간주…

북한 노동자를 고용해 건설된 바르샤바 시내 빌라노프 아파트. RFA PHOTO/ 양희정
북한 노동자를 고용해 건설된 바르샤바 시내 빌라노프 아파트. RFA PHOTO/ 양희정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국제 위험관리 및 선급, 인증회사 DNV GL은 크리스트 조선소 등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에게 2011년부터 2016년 상반기까지 140개의 자격증을 발급했습니다.

노르웨이 기술산업 관련 주간지 ‘테크니스크 우께블라드(Teknisk Ukeblad)’의 라스 타랄슨(Lars Taraldsen) 기자는 자유아시아방송에 많은 노르웨이 사람들은 이 회사가 북한 노동자에게 자격증을 발급한 데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타랄슨 기자 : 국제적 연구 보고서나 유엔 등에 따르면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들은 노예와 같이 일합니다. 정치인 등 많은 노르웨이 사람들은 DNV GL가 자격증을 발급 하는 대상에 북한 노동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곧 이 사실을 밝혀야만 했다고 지적합니다.

그단스크 북한 노동자들이 살았던 주택. RFA PHOTO/ 양희정
그단스크 북한 노동자들이 살았던 주택. RFA PHOTO/ 양희정

타랄슨 기자가 폴란드 노동감독청에서 입수한 자격증 관련 서류에는 분명 북한 노동자들의 국적이 북한이라고 적혀 있었고 따라서 DNV GL이 북한 노동자들의 노예 노동에 일조했다는 비난을 모면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2년 전 극심한 화상으로 크리스트 조선소에서 사망한 전용수 씨는 노르웨이 선박(Polar Express) 용접 중 사고를 당했고, 고용한 폴란드 인력알선업체 아르멕스에서 아무도 사고 당일 아침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DNV GL측은 자유아시아방송에 보낸 전자우편에서 선박의 안전과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강력한 용접 기술을 가진 노동자에게 자격증을 발급했을 따름이라고 말했습니다.

(자동차 소리 효과음)

기자는 아침 햇살을 가르며 다시 그단스크로 향합니다.

‘아르멕스’가 그디니아 크리스트 조선소는 물론 그단스크의 나우타 조선소에도 수 년 간 인력을 제공해 온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단스크는 1980년 이 도시의 레닌 조선소에서 일하던 조선공 레흐 바웬사가 공장 노동자를 단체로 해고한 폴란드 정부에 대항해 그디니아와 소포트 등 인근 세 지역의 노동자 총 파업을 주도한 것으로 유명한 도시입니다. 노동자 바웬사는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허용되지 않던 자율적인 노동조합 ‘솔리다르노시치’ 즉 ‘연대노조’를 결성했습니다. 바웬사는 1989년 동유럽혁명을 통한 폴란드 사회주의 정권의 몰락에 기여했고, 이듬해 제2대 폴란드 대통령으로 선출됩니다.

기자는 그단스크 나우타 조선소와 인근 기차역을 연결하는 육교 위로 올라가 퇴근하는 노동자들을 몇 시간이나 지켜보았습니다. 북한 노동자들이 숙소로 사용했다는 정보에 따라 찾아간 인근 주택가의 가옥 주변도 한참을 맴돌았지만, 북한 노동자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 기차소리…

기자는 그단스크 역에서 400여 킬로미터 남쪽 바르샤바로 가기 위해 기차에 올랐습니다.

바르샤바에 도착하자 저녁 해가 이미 저물었지만, 주민들만 들어갈 수 있도록 담으로 둘러 쌓인 어느 주택단지를 찾았습니다. 이 단지 안에 지난 봄 바르샤바의 고급 아파트 건설현장 빌라노프(Wilanow)에서 일하던 북한 노동자가 거주했다는 주택(Bruzdowa 127 A)이 있다고 현지 안내원은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밤이 깊어 가도록 그 집에 불은 켜지지 않았고, 인기척도 없습니다.

안내를 해준 현지 관계자는 바르샤바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목격되던 북한 노동자들도 지난 여름부터 보이지 않고 있다며 인권 유린 등의 지적이 일자 대도시가 아닌 지방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현지 안내인 : 소비에니에(Sobienie)라는 골프장 인근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지난 7월~8월에 확인할 때는 북한 사람들이 없다. 타 지역으로 이동했다고 보시면 돼요.

북한은 1990년대 초 폴란드가 개방되면서 폴란드에 유학 중이던 학생 수 백 명을 전세기로 귀국시켰습니다. 그러나 1990년 대 중반 다시 폴란드 크라쿠프 등에 왕족이나 귀족이 소유했던 고궁 등의 복원사업에 북한의 공인된 건축가나 미술가를 파견했습니다.

이 안내인은 1990년대에도 폴란드 방송은 북한 근로자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지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지 안내인 : 크라쿠프의 건축 복원을 하는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면서 복원을 하는 현장의 열악한 환경을 현지 언론이 밥 먹고 자는 곳을 급습을 해서 르포형식으로 너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고 이슈화한 적이 있어요.

수 년 전에도 바르샤바에서 열린 세계여자유도선수권대회에 당시 폴란드 주재 북한 대사이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복 남동생 김평일이 직접 응원을 했는데, 포즈난 근교 소도시에서 버스 두 대에 타고 와 3일 간 응원을 했던 북한 여성 80여 명은 봉제공장 노동자로 알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폴란드 유력 일간지 비보르차(Wyborcza)에 지난 4월 빌라노프 아파트를 짓고 있는 북한 노동자 50여 명이 북한 정권의 외화벌이를 위해 노예와 같이 착취당하고 있다고 기고한 라팔 토만스키(Rafal Tomanski) 기자와 바르샤바 한 음식점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지난 여름부터 빌라노프 건설현장에서 사라진 북한 노동자 중 노동 허가가 만기된 경우 불법 체류자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폴란드 국경경비대는 이달 초 자유아시아방송에 지난 1월 1일부터 9월말까지 폴란드에 입국한 북한인의 수는 84명이라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268명, 2014년 341명에 비해 확연히 줄어든 수치입니다. 국경경비대는 그러나 불법입국 북한 노동자는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토만스키 기자는 북한 노동자를 고용하는 폴란드 하청업체 등이 국경경비대에 협력하려는 의지가 없는데다 통역 등 절차상의 문제로 폴란드 내 불법적인 북한 노동자 문제가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토만스키 기자 : 북한 대사관 측에서 폴란드 국경경비대가 북한 노동자를 검문할 때 개별적으로 하지 못하게 합니다. 15명이면 15명의 통역이 필요하게끔 한꺼번에 동시에 해야만 한다고 하는 거죠.

폴란드 외무부는 자유아시아방송에 지난 1월 북한의 핵실험 이후 11월 현재까지 단 한 건의 입국사증도 발급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와 북단 그단스크까지 곳곳에서 오래된 건물을 다시 건축하거나 신축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인권 유린을 이유로 북한 노동자 고용을 포기한 유럽연합의 체코, 불가리아, 루마니아와 같이 폴란드가 과연 북한 노동자를 모두 되돌려 보내고 고용을 중단할 지 여부는 미지수입니다.

북한 노동자의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국제사회와 언론의 관심이 지속적으로 높아지지 않는 한 북한 노동자를 고용하는 폴란드 회사들의 수수방관적 태도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