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이 외화벌이를 위해 전 세계 곳곳으로 주민들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북한의 해외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노예노동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이 마련한 ‘2016 연중 기획보도’ 북한 해외노동자 시리즈오늘은 그 마지막 순서로 북한 정권의 외화벌이를 위해 유럽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한 유럽 내 각계 각층의 노력을 조명해 봅니다.
양희정 기자가 지난 가을 네덜란드의 라이덴 대학을 방문했습니다.
(효과음)

기자는 지난 9월 어느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아침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의 스키폴국제공항에 내렸습니다. 유럽 내 북한 강제노역 실태의 현장 조사를 바탕으로 심층연구 보고서를 펴낸 라이덴 대학 아시아센터를 방문하기 위해서입니다. 길 가는 이들에게 물어 암스테르담에서 남서쪽으로 약 40여 킬로미터 떨어진 도시 라이덴으로 가는 기차 승강장을 찾았습니다.
기차를 타자 30여 분도 채 안 걸려 라이덴 대학이 있는 라이덴 중앙역에 도착했습니다. 라이덴 대학 아시아센터의 한국인 오규욱 연구원이 기자를 반갑게 맞이 합니다. 오 연구원은 라이덴 대학 아시아센터로 함께 걸어가며 이 대학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고 전 네덜란드 여왕과 현재 왕까지 모두 라이덴 대학을 졸업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라이덴 대학 아시아센터는 지난해 말부터 6개월 여 렘코 브뢰커 박사를 사령탑으로 임꺼 판 할딩엔 노동법 전문 변호사와 오 연구원 등이 참가해 해외 노동자를 통한 북한 정권의 외화벌이 실태를 조사했습니다.

지난 5월에는 ‘유럽연합 내 북한 강제 노역, 폴란드 즉 뽈스까 사례’라는 보고서를 통해 연구 중간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외화벌이를 위해 파견한 북한 노동자들이 유럽연합 국가인 폴란드에서 마저 현지 노동법규의 보호를 받지 못하며 사실상 강제노동에 시달린다고 지적한 보고서입니다. 보고서는 특히 폴란드 정부의 감사 결과 북한 노동자들을 노동 허가증에 명시된 업체와 다른 곳에서 일을 시키거나, 임금 체불, 법정근로시간 혹은 산업안전법규 준수 위반 등 북한 노동자들에 대한 불법 행위가 적발됐다고 강조했습니다.
브뢰커 박사는 사무실을 찾은 기자에게 이 같은 북한 노동자의 인권 침해가 알려졌는데도 유럽연합 차원의 대응이 미진하다며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브뢰커 박사 : 유럽연합은 기존의 법을 엄격히 이행하면 됩니다. 회원국들은 유럽연합이 허용하기 때문에 북한 노동자 고용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유럽연합은 각 회원국의 노동법 이행 여부를 강제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브뢰커 박사는 유럽연합이 의지만 있다면 유럽연합 노동조합 등과 협력해 북한 당국의 외화벌이 일꾼으로 보내진 노동자 노예노역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 노동자를 고용하는 국가들이 노동 입국비자를 발급하기에 앞서 노동자 임금의 최대 90퍼센트까지 핵과 미사일 문제 등으로 국제사회의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 당극에 의해 착취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습니다.

지난 4월 폴란드 내 북한 노동자 강제 노역 실태 조사에 참여한 오규욱 연구원은 북한 노동자들이 하루 근무시간 등 노동권 침해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민감한 질문에는 답을 피했지만 다른 질문에 대한 답으로 그들의 인권 실태를 추정할 수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오 연구원 : 한 번은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이 있느냐고 물어보니 2년 전 폴란드에 온 이후로 한 번도 가족을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한 적이 없고 귀국하는 동료를 통해 한 번 가족에게 안부 편지 전달을 부탁했다고 답했어요. 답을 받았는지 여부도 확인할 수 없지만 이 사실만으로도 북한 근로자들이 폴란드에 있는 동안에 이동·거주의 자유가 박탈 당할 뿐 아니라 가족과의 서신왕래, 연락 이런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가 박탈당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거든요.
이 사례는 폴란드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처한 인권 침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오 연구원은 강조했습니다. 따라서 유럽연합이 회원국 정부에 북한 근로자 관련 통계자료를 공개하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그는 지적했습니다. 오스트리아나 이탈리아 등의 유럽연합 국가가 최근 몇 년 전까지 북한 노동자를 고용한 것으로 파악했지만 자료가 부족해 연구에 지장이 있었다는 설명입니다.
오 연구원 : 노동허가증이 총 몇 명에게 발급되었는지, 몇 명의 북한 근로자가 언제부터 언제까지 근로했는지 등에 대한 충분한 자료가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는데요. 현재 북한 근로자들이 오스트리아나 이탈리아에 있지 않더라도 자료를 공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는요. 이러한 자료들이 북한 근로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유럽에 파견됐고, 어떤 직종에, 어떤 환경에서 근무했는지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연구와 참고자료로 쓰일 수 있기 때문에 유럽연합 차원에서 회원국 정부들에게 북한 근로자들에 대한 통계라든지 실질적인 자료를 요구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오 연구원은 폴란드 국가노동감독원이 북한 노동자를 채용한 기업에 감사를 하고 있지만 그들의 권한이나 임무가 제한적인 것이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고용감독기구 즉 폴란드 국가노동감독원이 현재 시행하는 감사가 서류를 검토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예를 들어 고용기업과 근로자가 계약서를 작성했는지, 월급명세서가 있는지, 노동허가증이 있는지를 확인만 한다는 것입니다.
오 연구원 : 문제는 계약서가 과연 근로자들이 스스로, 자필로 작성을 했는지 아니면 누군가 대신 작성을 했는지, 근로자들이 월급을 직접 수령하는지 아니면 누가 대신 수령하는지 이런 부분은 서류상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거든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 고용감독기구뿐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실질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오 연구원은 폴란드 북부 일부 조선소에서 북한 노동자를 더 이상 고용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아직도 북한 노동자가 있다는 현지 소식통의 전언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오 연구원 : 아직 남아있는 것 같다고… 대신 이동수단이 바뀐 것 같다고 말했어요. 그 전에는 개별적으로 출퇴근했다면 지금은 현지 관리자가 준비한 미니버스 같은 승합차를 이용해서 출퇴근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눈에 잘 안 띄는 것 같아요. 안에서 탑승하고 나오는지 아니면 어디서 따로 모여서 한꺼번에 퇴근하는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최근에 관심이 많으니까 굉장히 조심하는 것 같아요.
(간주)
네덜란드 출신 카티 피리(Kati Piri) 의원과 아그네스 용헤리어스(Agnes Jongerius) 의원, 그리고 독일의 토마스 헨델(Thomas Handel) 의원 등이 지난해부터 수 차례에 걸쳐 몰타와 폴란드 등 유럽 국가들이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북한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며 유럽연합의 조치를 촉구하는 의정 질의서를 유럽의회에 제출했습니다. 이에 몰타 정부는 북한 노동자에 대한 고용허가 연장과 입국사증 발급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고, 폴란드 정부도 지난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북한 노동자에게 입국사증을 발급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폴란드 북부 그디니아의 크리스트 조선소와 그단스크 나우타 조선소는 최대 수주회사인 노르웨이의 선박회사들의 항의에 따라 지난 8월 초 북한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기자가 지난 9월 이들 조선소를 방문해 확인했지만 북한 노동자의 자취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폴란드한인회의 권영관 회장은 지난 11월 크리스트 조선소를 방문해 북한 노동자가 인근 그단스크의 작은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권영관 회장 : 폴란드 사람인데 북한 사람하고 일을 했다고 해요. 크리스트 조선소가 아니고 11월 중순 정도에 그단스크에 있는 조그만 조선소인데 거기에서 일하면서 (북한 사람을) 봤다고 하면서 그쪽으로 다 간 것 같다고 그러더라구요. 언제 갔나고 하니까 크리스트 조선소 안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한 달 반 전 즉 9월말에 갔다고 했어요.
아직도 폴란드 곳곳에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값싼 북한 노동자를 고용해 임금착취와 노예노동에 시달리게 하는 인권유린이 자행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관계자는 유럽연합과 북한 등 외국인 근로자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되는 기본 근로 시간, 기본적인 위생 기준 등의 법령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노동법 이행과 관련해서는 각 회원국이 유럽연합 지침(directives)에 따라 제정된 각국의 법이 적용된다는 설명입니다. 국내법 제정 없이 회원국에 직접 적용되는 규칙(regulation)이 유럽연합 역내의 각국 정부나 민간의 활동을 규제하는 것과 달리 지침은 회원국의 국내법 규제를 지침에 따라 개정하라는 ‘최저한도의 요구’라는 것입니다.
유럽연합 관계자 : 노동자 권리 침해와 관련해서는 고용된 국가의 법에 호소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희가 최소 기준을 정해 주면 각 회원국이 그 틀에 따라 법을 제정합니다. 그 후에는 각국의 법에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이행 문제는 각국 법원에 호소해야지 저희가 취할 조치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피리 의원은 자유아시아방송에 계속해서 북한 노동자의 강제 노역의 심각성을 유럽연합에 알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인권기록에 자부심을 가진 유럽연합이 유럽연합 영토 내 북한 노동자의 잔혹한 인권 착취를 허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북한은 이들의 임금을 착취해 정권을 유지하며 유엔의 대북제재를 위반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이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인식하고 중단시켜야 할 시점이라는 지적입니다.
(간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유럽의회와 국제사회, 언론이 제기한 북한 노동자들의 강제 노역 심각성을 인식하고 각 회원국의 주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자제하면서도 폴란드 국가노동감독원 등 관련 당국과 다양한 방법으로 긴밀하게 연락을 취하는 등 정확한 실태파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유럽연합 관계자는 자유아시아방송에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통과시킨 유럽연합 기본권 헌장(EU Charter of Fundamental Rights)은 노예제도, 강제 노역, 인신매매 등 모든 형태의 노동 착취를 금지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라이덴 대학 아시아센터는 브뢰커 박사 등 강제노역 연구팀에게 추가 지원금을 제공했습니다.
브뢰커 박사 : 향후 1년 간 국제노동기구(ILO) 회원국 내 북한 노동자 인권 유린 문제를 연구할 예정입니다. 고용 국가가 나서지 않는다면 국제노동기구를 통해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브뢰커 박사는 강제노동연구를 하는 한국의 북한인권정보센터 등과 같은 인권단체와 협력하는 조사·연구 활동을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2014년부터 북한 해외 노동자 인권실태 연구를 시행한 북한인권정보센터의 이승주 연구원은 최근 유럽연합 차원의 북한 노동자 처우 개선 촉구가 올해 처음으로 북한 해외 노동자 문제가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북한인권결의안에 포함되는 성과로 이어졌다고 평가했습니다. 따라서 국제사회는 북한 노동자를 수용하는 각국 정부에 국제적 노동기준에 맞는 근무 환경 등 북한 노동자의 인권 개선을 강력히 촉구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방안 중 하나로 이 연구원은 북한인권정보센터 등 한국의 인권단체나 탈북자단체를 포함한 국제민간단체의 협의체를 구성할 것도 제안했습니다.
RFA자유아시아방송 양희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