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기획: 당신이 안 계신 동안] ① “한 번만이라도 엄마의 얼굴을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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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 사이 많은 일본인이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북한에 의한 납치 피해자로 알려졌습니다. 일본인 납치 피해 사건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일본 정부 납치문제대책본부는 납치 피해자들의 무사귀국을 기원하며 공동기획 프로그램 '당신이 안 계신 동안'을 마련했습니다. 앞으로 8회에 걸쳐 매주 토요일 이 시간에 방송됩니다. 오늘은 첫 번째 시간으로 한 살 때 어머니를 북한에 빼앗긴 이이즈카 코이치로 씨의 사연을 들어봅니다. 노재완 기자가 이이즈카 씨를 만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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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즈카 코이치로 씨를 만난 것은 지난 3월 26일. 취재진은 요코하마에 있는 한 조용한 곳에서 이이즈카 씨를 만났습니다.

기자: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이즈카: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이즈카 씨는 어머니를 찾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실종된 해는 1978년, 그의 나이 겨우 1살이었습니다. 당연히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없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소식은 1987년 대한항공 폭파범인 북한 공작원 김현희 씨의 증언으로 알게 됐고, 그때 이후로 이이즈카 씨는 어머니 구출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이이즈카 씨는 39년을 어머니를 그리며 살아야 했습니다. 어머니가 실종된 뒤 그는 외삼촌 집에 양자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양부모님의 헌신과 정성으로 잘 성장했고, 지금은 유망한 정보통신(IT) 회사에서 직장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이즈카: 지금 시대에는 컴퓨터를 한 사람이 한 대씩 사용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고, 또 개인들이 스마트폰으로 모든 장소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인터넷을 할 수가 있습니다. 북한과 비교하면 일본은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자신과 자기 가족을 위해서 일하고 그 일한 대가로 월급을 받아 좋은 음식을 먹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북한에서 귀국한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북한은 정말로 먹을 것이 부족하여 힘들고 정전도 당연한 일상이 돼 버렸고, 겨울에는 난방이 잘 안 돼 몸을 비비면서 한 방에서 모여 산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북한이 지상낙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저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이즈카 씨는 "어머니에 대한 추억은 없지만 사진을 보면서 어머니를 그리워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현재 어머니의 건강을 가장 염려하고 있습니다. 의료 수준이 낮은 북한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기자: 아주 어렸을 때 모친과 헤어져 모친에 대한 직접적인 기억은 없겠습니다만 모친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물건이 있습니까?

이이즈카: 어머니를 기억할 수 있는 사진이 몇 장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유일하게 가족 3명, 저와 누나, 그리고 어머니가 함께 찍은 사진이 저한테는 가장 소중한 사진입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출산 때 탯줄을 보관하는 문화가 있는데요. 어머니가 탯줄을 보관해두었습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는 저에게 있어 가장 소중합니다.

이이즈카 씨가 북한 공작원 김현희 씨를 만난 것은 지난 2009년입니다. 김현희 씨는 북한에서 공작원 교육을 받을 때 이이즈카 씨의 어머니한테서 일본어를 배웠고, 당시 그의 어머니는 '이은혜'라는 조선 이름을 썼다고 합니다. 그는 어머니의 모습에 대해 알고 싶어 김현희 씨를 만났다고 말했습니다.

이이즈카: 북한 초대소에서 어머니가 "우리 아이들이 몇 살이나 되었나 하면서 손가락으로 헤아렸다"고 김현희 씨가 어머니한테서 들은 말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지금도 그것이 머릿속에 굉장히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이즈카 씨는 어머니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척 아팠다고 말합니다.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어머니를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기 때문입니다.

이이즈카: 전혀 모르는 여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라고 질문을 받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그런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가능한 한 빨리 어머니를 귀국시켜서 만나고 싶습니다. 지금도 어머니는 60살 정도입니다만, 지금부터라도 잃어버린 39년을 회복시키고 싶은 기분이 제일 강하게 듭니다.

이이즈카 씨는 일본 납치자가족회에서 사무차장을 맡고 있습니다. 40여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납치자가족회도 젊은이가 주축이 된 2세대가 집행부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는 북일 국교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 납치 문제 해결을 주장했습니다. 납치 문제 해결 없이 국교정상화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이즈카: 저희는 귀국 이외의 해결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일본인을 납치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 15년 전, 즉 2002년도입니다. 그 전에는 이 문제가 없다고 은폐하려 했습니다. 북한은 2002년 이후에도 거짓 보고서와 거짓 유골로 대충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북한은 일본인 납치문제를 그렇게 15년 끌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일본 정부와 납치 피해자 가족은 귀국 이외의 어떤 문제 해결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밝혀두는 바입니다.

그는 북한 당국이 거짓 유골로 대응한 것에 대해 무척 분노했으며,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의 심정을 밝혔습니다.

이이즈카: 저는 한 살 때 엄마가 납치되었기 때문에 엄마를 본 기억이 없고, 만져본 기억도 없습니다. 당연히 말한 기억도 없고요. 어떻게 보면 어머니와 연결된 것이 없다는 것이 슬프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구출하지 못한 것이 너무 송구스럽습니다.

그는 2004년부터 납치 피해자 귀국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해왔습니다. 작년 5월에는 가족회 대표로 유엔 본부에서 개최된 국제심포지엄에도 참석했습니다.

이이즈카: 제가 어머니를 40년 동안 만날 수 없었다는 것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이런 활동이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 중국, 미국, 유럽에 있는 납치 피해자 가족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공개처형을 강요한다든지, 반역자에 대한 임산부의 배를 찢는다든지 하는 행위는 인권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북한이 사람을 납치해 단란했던 가족이 산산이 흩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세상에 전하고 싶었습니다. "너희들이 하고 있는 일이 너무 잔혹하다"는 사실을 온 세계에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나중에 어머니와 상봉하게 되었을 때 어머니가 북한의 강압 때문에 귀국을 거부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게 가장 두렵다고 말했습니다.

이이즈카: 어떤 시기에 북한 국내에서 만나게 된다고 하더라도 어머니의 입에서 기정사실, 예를 들어, "우리는 북한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까 귀국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너무 잔혹한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정말 귀국하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말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게 저는 너무 싫습니다.

2002년에 5명의 납치자 피해자가 귀국했을 때 그는 어떤 심정으로 바라봤을까요. 당시의 심정을 들어봤습니다.

이이즈카: 사실 그때 당시 저는 외국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시간으로 그 장면을 볼 수는 없었는데요. 저의 아버지도 그랬고, 즉 저를 키워주신 양아버지도 그랬습니다만, 마음속으로는 5명 외에도 더 많은 납치 피해자들이 왔으면 했습니다. 물론 5명이 돌아온 것만으로도 굉장히 다행한 일이지만 비행기 계단에서 내려오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이이즈카 씨는 "북한이 이제까지 했던 것처럼, 거짓 보고서와 거짓 유골 등으로 납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북한 당국이 일본인 납치 피해자들을 조건 없이 귀국시킨다면 이들의 귀국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북한 정보 유출에 대해선 비밀 엄수를 약속했습니다.

이이즈카: 일본인 납치자가 귀국할 경우에만 거기에 맞는 보상과 경제제재의 해제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저희 어머니와 요코타 메구미 씨가 무슨 비밀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귀국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정말로 귀국한 후에 관련 정보는 일절 공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겠습니다.

이이즈카 씨는 "단 한 번이라도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어머니를 포함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습니다.

이이즈카: 결코 우리는 여러분을 포기하는 일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구출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능한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북한에서 40여 년 동안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냈고, 또 일본에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돌아가지 않은 채로 북한에서 죽어간다는 그런 불안감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우리가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곧 여러분을 구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만, 조금만 더 분발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취재진이 처음 인사를 나눌 때만 해도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지만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의 표정은 점차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두운 표정은 사라졌고 얼굴엔 환한 미소가 배어났습니다. 그는 "이 방송을 통해 어머니가 자신의 말을 들을 것이란 희망이 생겼기 때문에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과 일본 납치문제대책본부의 공동기획 프로그램 '당신이 안 계신 동안', 다음 주 이 시간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