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 지난겨울, 독일에서 열렸던 북한 인권 영화제가 이번엔 라틴 아메리카를 찾았습니다.
영화를 통해 북한 주민들의 삶을 보여주고 탈북자와 납북 피해자 가족의 증언을 통해 북한 인권 문제의 현주소를 전했는데요.
북한 반인도 범죄 철폐 국제 연대 ICNK와 칠레, 아르헨티나, 멕시코 세 국가의 시민단체, 인권 연구소가 함께 만든 자리였습니다.
8일 간의 중남미 일정, ICNK 권은경 국장이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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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코모도르 아르투로 메리노 베니테스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우리의 목적지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시내에서 20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이제 차를 타고 목적지인 호텔까지 30분 정도 달려가야 합니다.
중남미 지역으로 북한 인권문제를 알리러 와야겠다고 결정한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2013년 3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 이사회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조사하기 위한 유엔 차원의 공식 기구가 만들어집니다. 북한 인권 조사 위원회라고 불리는데요. 그리고 일 년 뒤 그 동안의 조사 작업을 바탕으로 보고서가 나옵니다. 이런 과정에서 이제 북한 인권은 한반도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공동 인식이 형성됐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주로 북미대륙과 서유럽 중심의 분위기입니다. 정치 지도자들이 국제 형사 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으며 경제 상황도 좋지 않은 아프리카는 자국의 문제가 더 시급합니다.
그러나 중남미는 과거 70년대 군부독재의 인권유린을 대중의 힘으로 극복해 80년대 중반 이후 민주화를 이루어 낸 국가들 있습니다. 그들에게 인권 문제는 자신들이 겪어 온 역사이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북한 인권 문제 역시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중남미!
그 중에서 칠레, 아르헨티나 그리고 북한과 외교 관계가 있는 멕시코입니다.
칠레 학생: 북한 인권 문제는 칠레 사람에게도 흥미로운 문제입니다. 칠레 사람들 역시 이해하고 반대할 겁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인권 유린도 인간에 대한 폭력도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강연장에서 만난 한 칠레 학생의 말이었습니다. 칠레에서의 행사는 8월 19일, 산티아고 대학교 한국학 센터에서 시작됐습니다. 교수와 학생 몇 명이 참석한 조촐한 면담이었는데 생각보다 작은 규모의 행사여서 함께 동행한 탈북자 김동남 씨와 KAL기 납치 사건 피해자 가족 황인철 씨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칠레는 북쪽에 있는 청취자들에게는 정치 지도자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국가일 겁니다. 아옌데와 피노체트.
피노체트는 1973년 아옌데 대통령의 급진적 사회주의 정책에 반대해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습니다. 쿠데타와 함께 아옌테 대통령은 피살됐으며 피노체트는 1989년 12월, 19년 만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반군정파가 압승할 때까지 17년의 장기 군사독재를 이어갑니다.
피노체트는 쿠데타 후 일주일 동안 3만 여명을 학살했고 집권 기간 중 민주 인사들을 탄압해 사망자 3천여 명, 실종자 1천여 명, 고문으로 불구가 된 사람도 10만 여명이 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피노체트는 독재자, 학살자라는 오명을 얻고 퇴임 이후 가택 연금 상태에서 재판을 받다 사망했습니다.
피노체트 집권 시기의 인권 유린은 칠레 인권 박물관에 기록돼 있으며 민주화된 칠레엔 국가 인권 위원회와 외교부에도 인권과가 설립돼 있습니다.
칠레 청년: 젊은 세대도 인권 폭력 문제를 잘 알고 있고 나도 내가 어릴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습니다.
남한 인터넷에서 유명해진 칠레의 단체들이 있습니다. '말보다 행동'. 바첼레트 현 칠레 대통령이 선거 때 약속한 공약을 얼마나 잘 지키는 지 감시하고 그 결과를 표와 숫자로 보기 쉽게 만들어 인터넷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선거 신호등. 선거에서 후보들이 정당하게 선거 운동을 하고 있는지 국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단체입니다. 반부패 관측소, 행동하는 이웃, 시민 연구소, 공직자들의 후원 목록, 출장 내역 등을 공개하도록 하는 로비법 추진 단체 등...
청취자들도 이 단체들을 통해 칠레 민주화의 속도를 체감하실 수 있을 겁니다.
(비행기)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온 걸 환영합니다.
칠레의 경험은 이후 중남미 일정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었고 그 덕에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열린 영화제와 강연은 선물과 같았습니다.
독일에서의 인권 영화제를 막 끝내고 귀국했던 지난 12월, 아르헨티나의 시민단체 까달CADAL이 이메일로 다음해 여름에 열리는 블랙 리본 데이 행사에 북한 인권 행사를 제안해왔습니다.
블랙 리본 데이는 스탈린과 나찌 독재의 희생자를 기리는 행사인데 독재 정치 아래 행해지는 세계 여러 국가의 인권 문제도 다루고 있습니다. 그 몇 줄의 이메일이 중남미 북한 인권 주간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까달의 프로그램 디렉터 에르난 알베로의 설명입니다.
알베로: 우리가 이런 행사를 개최하는 목적은 북한과 같은 국가들에서 행해지는 인권 유린 상황을 알고 그 사실을 널리 알리는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르헨티나의 정치인, 사업가, 학생, 시민들과 다른 국가들도 이 사실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아르헨티나도 정치의 소용돌이가 민중의 삶을 괴롭혔던 국가입니다.
세 번의 독재 정치를 겪었고 각각 국민들에게 엄청난 고통의 세월을 감내하게 했습니다. 특히 Dirty War 추악한 전쟁이라는 불리는 1976년부터 1983년의 군사 독재는 수많은 피해자를 낳았습니다. 1976년 이사벨 페론 정권을 축출한 호르헤 비델라는 1979년까지 학생, 정치인, 외국인을 무차별 납치하고 고문하고 살해하는데 이렇게 실종된 사람이 아르헨티나 정부의 공식 발표로만 1만 2천 명에 달합니다. 이런 많은 희생 속에 이제 민주화된 아르헨티나는 그 세월을 치유하는 과정에 있는데요. 피해자들을 단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점을 두는 사업은 납치당해 희생당한 사람들을 찾고 그들을 가족들에게 돌려주고 그리고 그들의 희생을 위로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저와 함께 동행한 김동남 씨, 황인철 씨도 모두 납치 피해자 가족입니다.
행사 현장음 : 한분은 아들, 한분은 아버지를 북한 당국에 의해 납치된 피해자...
황인철 씨의 아버지 황원 씨는 1969년 강릉에서 서울행 KAL에 탑승했다가 북한 간첩에 의해 공중 납치돼 북한으로 끌려간 뒤 현재까지 북한에 억류돼 있습니다.
황인철 씨: 여러분 혹시 출장기기 위해 비행기나 여행을 가기 위해 비행기 탑증하신 적이 있나요? 비행기가 납치당해서 억류돼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 한다면 어떠시겠습니까? 사진 속 작은 남자 아이가 저고 뒤에 서 있는 사람이 아버지입니다. 당시 나이는 32세, 직업은 MBC PD 였습니다.
김동남 씨의 아들 김경재 씨는 2008년 먼저 탈북한 아버지의 도움으로 남한 행을 시도하던 중 북한 당국에 체포됐고 심문 중에 종교인 접촉이 밝혀져 16호 화성 수용소에 끌려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김동남 씨: 한국에 먼저 나와 있던 나는 북한의 아들과 국제 통화하며 아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아들에게 탈북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2008년 우리의 마지막 통화였습니다. 그게 끝일 줄은 몰랐습니다. 회령시 보위부에서 아들을 데려간 뒤 만날 수 없었고 아들이 정치범 수용소로 갔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나는 내 아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납치 피해자이자 독재의 피해자이기도 한 이 두 사람의 증언은 비슷한 역사가 있는 아르헨티나의 청중들에게 깊은 공감을 이끌어 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블랙 리본 데이 행사에 이어 3개 대학에서의 영화 상영과 강연이 이어졌습니다.
영화 상영과 김동남, 황인철 씨의 강연에 앞서 제가 참석자들에게 북한 상황을 전혀 모른다는 가정 아래 북한 상황과 인권 문제를 간단히 요약해 설명하는데요. 무대 앞에 좌석을 가득 매운 학생들의 집중도가 너무 높아 북한 인권 조사 위원회의 활동과 국제법과 유엔을 통해 북한 인권 상황을 해결하려는 방안까지 열강을 해버렸습니다.
권은경: COI는 유엔에 있는 기구입니다. 국제 인도주의법 국제 인권 법 위반 상황에 유엔이 취할 수 있는 조치이며 책임을 규명하고 인권 유린의 묻는 방식으로 대응하려는 기구입니다. 반인도 범죄 해결, 책임자 규명, ICC를 통한 법적인 접근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희생자들을 살려내는 대중 활동으로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여기 대중들, 앞으로 이곳을 이끌어갈 세대들에게 아르헨티나의 여론에 북한 인권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왔습니다.
특히 김동남 씨는 이 학생들 앞에 서는 마음이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김동남: 여러분들 보기에 내 아들이 생각나서 가슴이 절절합니다. 아버지로서 한낱 희망을 갖고 아들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권 문제와 가족의 납치, 실종을 얘기하는 강당의 분위기는 무거웠지만 강연이 끝나자마자 기대치도 못했던 재밌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생전에 이렇게 인기가 있었던 적이 있었던 가 싶을 정도로 사진을 찍자는 요청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뿐 아니라 황인철 씨, 김동남 씨도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사진 찍히기에 바쁩니다.
나중에 알았는데요. '한류' 때문이었습니다. 남한의 대중가요, 드라마가 남미에서 인기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 열기를 이렇게 확인하게 됐습니다.
남한의 드라마, 영화, 음악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한국 사람이라니 무조건 사진 한 장 같이 찍자... 한 것입니다.
북한 문제에 대한 관심도 남미에서 만큼은 한류와 무관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남한의 대중문화를 좋아하고 찾아보다가 남북 분단 상황을 알고 되고 자연스럽게 북한이라는 국가와 북한의 핵 문제, 인권 문제를 알게 되는 순서였습니다.
한류와 북한 문제가 연결되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지만 그렇다고 마냥 가벼운 관심은 아니었습니다.
진지한 질문이 이어지는 가운데 마지막 학생의 질문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뭘 해야하나?
김동남 씨와 황인철 씨 모두 자신들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버지를 만나기 직전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진 자신의 아들과 세 살 아이를 서울에 두고 비행기 납치로 가족에게 돌아오지 못한 자신의 아버지를 기억해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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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북한 인권 주간 특집은 내일 이 시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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