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삽시다] 새해엔 더욱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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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건강하게 삽시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힘찬 신묘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는 토끼해인데요. 우리 조상은 토끼가 초식 동물로 하얀색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 순결하고 평화로움을 상징한다고 생각했고 또 눈이 밝은 짐승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토끼는 이상향에 사는 동물로 여겨졌고 어두운 밤에 달나라에서 빨간 눈을 한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는 모습은 어린이 동화책 주인공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북한에서는 새해가 되면 새해를 축하합니다. 라고 하지만 남한에서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합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늘도 동 의사 강유 선생님과 새해 첫 방송 시작합니다.

이: 선생님 새해를 축하합니다.

강: 이 기자님 감사합니다. 이 기자님에게도 새해 축하 인사드립니다.

이: 청취자 여러분께도 새해 인사해주시죠.

강: 네. 북녘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세요. 해마다 설은 어김없이 찾아오지만 이렇게 여러분께 설 인사를 드리기는 탈북해서 두 번째입니다. 지금도 조용한 밤에 자리에 누우면 고향 풍경이 눈앞에서 영상처럼 펼쳐지고 수십 년을 함께 근무하면서 정들었던 여러 친구와 나를 사랑해 주던 환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릅니다. 신록이 짙을 때는 그때에 있었던 일이, 가을을 맞아 단풍이 질 때면 진료소 성원들과 약초 채취하려 산으로 다니던 일이 영상처럼 떠오릅니다. 그중에서도 우리 민족의 최대명절인 음력설과 추석에는 고향에 뭍인 아버님의 산소와 어디에 뭍인 줄도 모르는 어머님의 빈소에 대한 간절함으로 눈물을 억제할 수 없습니다.

새해 설날을 맞으면서 고향에 두고 온 나의 혈육들과 여러 친구들 그리고 나의 치료를 받았던 수많은 사람에게 새해 설 인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늘 건강하시어서 통일되면 웃음 속에서 만나 뵙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선생님께서 지난 시간에 오늘은 북한에서의 새해 이야기를 들려주시겠다고 했는데 어떤 내용입니까?

강: 많은 분이 그렇겠지만 나도 어렸을 때는 설이 오기를 고대 기다렸습니다. 지나온 예순일곱 해 중 내가 사람답게 산 세월이 그리 긴 세월이 아니었습니다. 의사가 되어 나의 의술이 사람들에게 인정되고 알려지면서부터 보람 있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세월이 흘러 내가 탈북한지도 어느덧 11년이 됩니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강산도 변하고 나도 얼마나 변했는지 한입으로 말 못하겠습니다.

이: 동의과장으로 계셨던 홍원 읍 종합 진료소에서의 새해 설 명절은 어땠나요?

강: 북한에서는 부업기지나 부산물 생산기지를 갖고 있는 기관기업소들에서는 자체로 명절공급을 하지만 병원을 비롯한 봉사부분이나 생산기지가 없는 기관들은 정부에서 지정해주는 공급에 의하여 명절 물품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일하던 홍원 읍 종합 진료소는 의사 간호원이 43명이 되었습니다. 그해 설 명절 공급으로는 술 한 병과 과자, 사탕 각각 한 봉투씩 그리고 읍 농장에서 우리 진료소를 배려해서 남새공급을 해준 외에는 돼지고기 공급은 받지 못하였습니다. 인민군대에 공급하게 된 돼지고기 공급미달로 주민 전체가 고기 공급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 당시 나는 동 의과 과장으로 일하면서 약초 재배와 채취, 그 가공과 제제까지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홍원 읍 종합 진료소에는 관흥 리 산간에 약초 밭이 약1천5백 평 정도 있었고 그리고 읍 농장에서 강변에 버려진 뙈기밭 3백 평을 약초밭으로 주었는데 습기가 가득한 밭이어서 약초뿐만 아니라 곡식을 심어도 자라지 않았습니다.

나는 궁리하다가 여기에 벼를 심었습니다. 밭곡식이나 약초는 안 되어도 벼는 비료와 물만 주면 되기 때문에 진료소장과 진료소 성원들을 설득시키고 벼를 심었는데 첫해에 입쌀을 1톤 남짓하게 수확했습니다.

약초 밭에 벼를 재배하였다하면 큰일 날일이지만 수확한 쌀로 한약을 제재 하는 데 이용하면 별문제가 없었습니다. 나는 입쌀로 엿을 달여 한방제제용으로 사용하는 한편 약초재배와 채취에 보조 식량으로도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남은 식량으로 돼지와 교환하여 우리 진료소의 설 명절공급을 하였습니다. 진료소 성원들이 얼마나 좋아하던지...그때 그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게 떠오릅니다.

이: 식량으로 구입한 돼지는 얼마나 컸나요?

강: 백 킬로 넘는 돼지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진료소에는 나를 제외하고는 돼지를 잡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내가 돼지를 잡고 세대주는 2킬로, 독신은 1킬로씩 돼지고기를 나누어주고 돼지 밸로는 순대를 하고 돼지 머리와 발쪽 그리고 남은 육으로는 술안주를 만들었습니다.

북한에서는 명절이면 기관기업소마다 전국이 특별경비 체제로 들어갑니다. 우리 종합병원도 예외가 아니지요. 특별 경비원들을 제외하고 모든 성원이 한자리에 모여서 송년 모임을 했습니다. 흔치 않게 먹어보는 돼지 순대와 몇 년 만에 모여서 송년회를 맞이하는 모든 참가자가 명절기분에 들떠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좋은 안주에 소주를 마시니 평소에 무겁던 입들이 거침없이 터졌습니다.

“동의과장 선생은 농사만 잘하는가 했더니 순대 만드는 솜씨 대단하네요. 이러다가 중앙당에 불려 올라가는 게 아닌가?”

깐깐하기로 이름 있는 호 과장 신 선생의 말이었습니다.

“중앙당에도 순대를 이렇게 맛있게 하는 사람은 없을걸...‘

“순대를 만드는 비법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어딜 가도 가는 거야”

일동은 하하 호호 웃으면서 중구난방으로 말했습니다.

술이 거나해지자 음악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진료소 동료들 생각이 많이 나시겠습니다.

강: 그렇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진료소에는 재간둥이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노래는 거의 모두가 명창이어서 군 노래경연에서 매번 1등을 했는데 춤과 군중무용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내과의 영회 선생은 춤과 군중무용이 너무 안 되어 묘향산에 휴가 가서 춤을 배워오기까지 하였습니다. 모든 성원이 노래 한가지씩 다하고 그제야 집으로 갔습니다.

설날이었습니다. 나는 부모님께 설 인사 올리고 가족과 함께 홍원군 회관 앞에서 가족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때 기념 촬영한 사진을 지금 보관하고 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까지 20여 년을 보건부문에서 일하면서 정들고 친분을 쌓았던 친구들과 함께 오랫동안 함께 일해 오는 상급들과 다정한 친구들 부모님들에게 설 인사 하러 갔습니다. 미리 준비하였던 평양 술과 여러 가지 선물을 갖고 새해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성과 있기를 기원하면서 진심으로 되는 설 인사를 그분들에게 올렸습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이 몰려다니면서 설 인사를 해보기는 북한에서는 처음이었고 설 인사를 받는 분들도 얼마나 기뻐하던지, 그때 그분들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친구들도 그렇게 설 인사를 다닌 적이 없었다고 모두 새로워했지요. 설 인사를 마친 후 친구들 다섯 명을 우리 집으로 곧장 데리고 와서 술상에 마주앉았습니다. 이해 설날도 밤늦게까지 술상에 마주앉아 지나왔던 한해를 돌아보고 새롭게 맞는 한해에 할 일들을 담론하였습니다.

정은 나누어야 배가되고 정은 줄수록 커지고 깊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부자처럼 살지 못하고 풍족한 생활은 아니지만 주는 것에 만족하고 욕심도 부리지 않으면서 자기 앞에 맡겨진 일에 충실하던 그때 그 모습이 지금 생각하면 가장 보기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탈북해서 이남에 살면서 설 명절이 오면 가장 많이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고향 땅에 있는 친지들과 친구들 그리고 나의 치료를 받고 새로운 삶을 산다고 그렇게 기뻐하시던 환자분들의 모습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산부인과 질환인 골반결합조직염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강: 네 감사합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MC: 건강하게 삽니다. 오늘은 2011년 신묘년 새해를 맞아 홍원읍 종합 진료소 진료과장을 했던 동의사 강유 선생님의 북한에서의 설 명절 추억을 들어봤습니다. 힘찬 한 해를 시작하는 첫 주. 청취자 여러분 각 가정에 만복을 기원하면서 오늘 순서 맞히겠습니다. 지금까지 도움 말씀에는 동의사 강유 선생님 진행에는 이 진서였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