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한 국가의 지도자가 해외순방 길에 오를 때면 그 수행원 규모가 대단합니다. 보통 나라를 대표한 기업인과 정치인이 으로 구성이 되는데요. 북한의 경우는 국내 현지지도에서 조차 지도자를 경호하는 인력만 500명 이상 움직인다고 합니다. 오늘은 김정일 위원장의 경호원 출신 이영국 씨를 통해 지도자의 현지시찰 시 경호방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기자: 김 위원장이 출동할 때마다 무장장비를 전부 싣고 경호원 전부 가는 겁니까?
이영국: 출동한다면 도로가 나쁘고 해서 차를 기차까지 실어야 해요. 기차에 무장장비 심지어 우리가 먹을 식량, 간식, 물차까지 기차에 실어요. 기차에 안 싣는 경우는 원산, 황산 쪽은 고속도로가 잘 돼서 차로 가요. 차도 벤츠예요. 처음에는 러시아제 가스차라든가를 이용했는데 김정일이 전부 바꾸라고 해서 봉고차, 버스, 승용차 전부 벤츠로 바꿔서 먼 곳 갈 때는 기차에 싣고 원산, 황산 갈 때는 전부 차로 갔죠.
기자: 무장장비는 북한제인가요? 소련제인가요?
이영국: 전부 북한제예요. 권총은 체코 것인데 15발짜리예요. 북한은 7발로 7.62 미리고요. 우리는 체코 것을 다 차고 있었습니다.
기자: 한 번 김 위원장이 이동을 할 때는 그 규모가 대단했겠어요.
이영국: 그러니까 한 개 편대가 선발, 본대, 후발 이렇게 기차가 두 시간 간격으로 3번 움직입니다. 빵통이 12개 정도 많이 달면 15개를 달았어요. 그때는 모든 철도의 전기를 끊고 우리는 내연기관차 1만 5천 마력짜리 앞뒤로 달고 움직여요. 다른 전기차는 24시간 운행을 못합니다. 우리만 다니는 거예요.
기자: 병력은 어느 정도인가요?
이영국: 500명 정도가 움직였어요. 또 현지에 가면 6처 소속에 55과가 있고 5과가 또 있어요. 지방 별장이 다 5과이고 55는 21지구라고 해서 영성리라고 김정은이 말 타고 김경희, 김여정이 백마 타고 나온 사진이 있는데 거기가 21지구라고 55과 됐고 6처 편대가 5과는 지방 별정을 맡고 본 청사 있고 21지구 있고 또 21지구 안에 열차 호위부가 따로 있고 기마대, 전시작전 최고사령부 지하벙커가 다 21지구에 있거든요. 이렇게 4개로 갈라져있었어요. 현지지도 나가면 별장을 지키는 사람이 한 300-400명 돼요. 이 사람들을 합치면 행사에 동원되는 사람이 한 1천명 되죠.
기자: 친위대로 대우도 틀렸을 텐데요?
이영국: 우리는 대우가 하루에 돼지고기 200g, 물고기가 300g 그리고 계란, 채소는 먹지 않아서 온 것을 그냥 내보내고 했어요. 무력부에서 여단장 하던 사람이 우리에게 오면 상좌 계습 받고 중대장을 하는데 우리 급식을 보고 놀라서 훈련 나가면 그냥 고기를 물에 씻어서 먹으라고 강압적으로 했는데 그것이 김정일에게 보고가 돼서 왜 오물을 먹이는가 하면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여기식대로 하라고 나의 경호원들이 잘 못 먹어서 앓으면 안 된다고 하는 식으로 경호원에게 관심을 많이 줬죠.
이북에는 남방과일이 없었는데 1978년에 남방과일인 바나나, 파인애플은 물론 귤은 잠겨놓고 먹고 음료수 콜라, 사이다 마셨어요. 화장실도 78년도에 비대를 썼어요. 그런데
한국에 오니까 없더라고요. 고급스럽게 먹고 쓰고 했어요. 그리고 모든 훈련기재는 태권도하고 낙법하고 격술 할 때 모두 일본제를 썼어요. 매트리스, 탁구대, 권투장갑은 모두 일본제를 썼어요.
기자: 그렇게 대우를 했다는 얘기는 훈련강도 역시 일반 부대와는 달리 셌을 것 같은데요.
이영국: 훈련이란 것이 근무를 4교대를 했는데 2시간씩 해서 8시간마다 한 번 가는데 그러면 헤이해진다고 해서 3교대로 6시간마다 나갔어요. 6시간에 2시간씩 근무를 서고 들어오고 했는데 잠이 부족해서 힘들었어요. 5시간 이상 못자요. 많이 자면 사람 긴장이 풀린다고 김정일이 말해서 해서 그렇게 했는데 저녁에는 훈련이 세고 근무가 피곤하고 하니까 자면서 오줌을 싸요. 그만큼 훈련 강도가 높았어요. 침구는 개인침구를 썼는데 침대 밑에는 먹는 것도 많았고, 먹는 것은 걱정을 안했어요. 생활도 고급스럽게 하고요.
기자: 근무를 6시간마다 2시간씩 선다면 하는 것은 뭡니까?
이영국: 고정근무를 선다면 행사 나갔을 때는 3교대 근무를 서는데 예를 들어 산보도로가 3km 이상 있는 곳이 있다면 산에서부터 쭉 연결이 돼있는데 거기에 계단도 한 300개 있고요. 거기서 운동을 하면 근무를 서는데 교대로 못 쉬게 해요. 끝날 때까지 쭉 서는 거예요. 어떤 날은 2시간 설 것을 4시간 6시간 서는 거예요. 또 백사장 근무를 서면 배타고 낚시도 하고 수영을 하면 해안근무를 서는데 6시간 근무를 서고 들어와서 쓰러지는 경우가 많아요.
기자: 긴장이 심하니까 견디기 힘들다는 말이군요.
이영국: 전부 뽑아서 갔잖아요. 체력, 정신상태, 도덕성 보고 뽑아서 갔으니까 건강한데 힘들죠. 내가 19살에 노동당에 입당을 했는데 경호부대에선 23살까지는 다 입당해요. 그 안에서도 경쟁이 아주 심해요. 근무 나가서 졸리면 근무지에 대공전화가 다 있으니까 전화를 해요. 순찰을 보내달라고요. 그리고는 사람이 오면 거기서 30분정도 자요. 잠깐 자고 나서는 또 근무를 서요. 그리고 졸리면 호주머니에 박하연고가 있는데 그것을 눈두덩이에 발라놓으면 시원하고 잠이 안와요. 그렇게 견뎌요.
기자: 78년부터 언제까지 근무를 서셨죠?
이영국: 78년부터 88년 6월 정도에 제대를 했어요. 햇수로 11년이고 만으로 10년이 되요. 나는 하루 두 번 정도는 항상 김정일을 봤어요.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북한 지도자의 경호에 대해 10년간 김정일 위원장의 경호원이었던 이영국 씨와 얘기 나눴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