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북도 미루벌 개간 사업-조병현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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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황해북도 미루벌 개간사업이 완료됐다고 북한당국이 크게 선전하고 있습니다. 몇 년간 공을 들인 사업이니 그럴 만도 한데요. 이 공사를 두고 너무 과대포장 되었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습니다.

오늘은 남한의 북한토지전문가인 조병현 박사를 통해 미루벌 개간사업에 대해 알아봅니다.

기자: 북한 당국이 개간사업의 발표에 대해 박사님이 실패한 정책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조병현: 우선 미루벌 개간사업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면, 황해북도에 있는 미루벌 일대에 경지정리를 완료해 5만 8천 700여개의 뙈기논이 3만 5천200여개의 규격포전으로 정리됐고, 70여 정보의 새 땅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미루벌은 황해북도 곡산군에 위치해 있는데, 미루벌은 꽤 넓고 평평한 벌판을 말합니다. 이 일대 토양이 산성이고, 소나무만 주로 자라는 고지대이다 보니 사람들이 농사짓기를 미루고 떠났다고 해서 붙게 된 명칭이라고 합니다. 이번 공사는 김일성 주석이 이곳을 여러 차례 찾아 개간사업을 지시한데 이어 김정일 위원장의 2007년도 '미루벌을 잘 정리할 데' 대한 당의 방침이 내려져 각 도에서 지원자들을 선발해 투입하고, 독려해 이번에 준공을 보게 되었습니다.

기자: 오랜 시간을 들여 한 개간사업이란 이유 말고 이렇게 주목받는 이유가 있습니까?

조병현: 그것은 북한이 강조해 온 영농의 수리화, 고지대 개발, 물의 종합적 이용, 새 땅 찾기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경지정리에 앞서 2009년도에 미루벌 물길공사를 완공했습니다. 남한식 표현으로 하면, 관개수로 공사입니다.

북한 황해북도 곡산군에서 신계군에 이르는 220km 수로를 만들어 임진강 상류의 물을 아호비령 산맥을 굴로 뚫어 리상저수지로 물을 흘러오게 한 것이죠. 미루벌 물길 공사에 이어 이번에 경지정리가 완료된 것입니다.

기자: 경지정리를 완공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정책이라고 보는 이유는 뭡니까?

조병현: 실패한 정책이란 것이 뚜렷하게 공사가 잘못 됐다거나 아니면 관개수로 공사에 큰 잘못이 있다는 그런 의미는 아니고요. 북한은 1964년 2월 黨4기8차 전원회의에서 「농촌4化운동」이 제기되면서 수리화 사업은 농촌개발의 최우선 사업으로 자리를 잡게 됐습니다. 이를 토대로 90년대 초까지 압록강 관개.평남관개.기양관개.어지돈관개.청단관개 등 12개 지역 관개망과 1천7백여 개의 저수지, 2만5천개 양수장, 그리고 총연장 4만㎞의 관개수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관개수로 및 저수지 등은 北韓 총 농경지 2백14만 정보의 65%인 1백40만 정보의 농경지에 외형상으로는 수리혜택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40% 수준인 1백만 정보의 농경지에도 제대로 수리혜택을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영농의 수리화에 실패했다는 것이고요.

물길 공사도 처음에는 김일성 주석이 양수기를 이용한 관수시스템을 구축하여 옥토로 만들고자 했으나, 90년대 들어 전력난으로 양수기 가동이 어렵게 되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5년 자연흐름식 즉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이 흐르는 물길 공사를 발기하여 3년만에 완공하게 된 것입니다.

아호비령이라는 큰 산맥을 뚫어 수로를 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겠습니까? 3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220km나 되는 긴 물길을 중장비나 기술 없이 순수하게 노동력에 의해 완공했으니 동원된 군인, 주민들의 고통이 엄청 났을 겁니다.

김일성이 양수기를 이용한 관수시스템을 포기하고, 목장갑도 끼지 않고, 맨손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관개수로와 경지정리사업에 수많은 주민을 동원한 것을 두고 정책 실패라 이야기 한 것입니다.

기자: 남한에서 국토의 지형을 변화 시키는 개간사업이 여럿 있었는데 어떤 식이었습니까? 이번 사업과 비교가 될 수 있도록 소개해 주십시오.

조병현: 남한의 유사한 개간사업은 아직도 세계의 건설업계에서 전설적인 일화로 손꼽히는 ‘서산 간척지 사업’을 들 수 있습니다. 서산 간척지 사업은 총길이 7,686m 방조제를 축조해 간척지를 조성하는 공사로 완공된 서산 간척지는101.046㎢의 기를진 옥토가 되었고, 우리나라 벼 재배 면적의 1% 해당되며, 50만 명이 1년 동안 먹는 양입니다.

그리고 ‘새만금 개발사업’이 있습니다. 만경강·동진강 하구의 갯벌을 개발하여 항만과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여 장차 새만금 국제무역항의 건설 기반을 구축하였습니다. 1991년 착수해 2010년 4월 27일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되었습니다.

공사 완공 이후 만경강과 동진강 하구의 굴곡진 100㎞ 해안선을 33㎞의 직선 방조제로 바뀌게 되어 그 방조제 안쪽으로 새로이 4만 100ha의 용지가 생김으로써 그만큼 국토가 확장되었다. 이 면적은 전주시 면적의 두 배, 여의도의 약 140배에 이릅니다.

기자: 그러면 남한의 서산 간척지사업, 새만금 개발 사업과 비교할 만한 북한의 사업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조병현: 남한의 새만금 방조제와 북한의 유사한 사업은 서해갑문 건설을 들 수 있습니다. 매우 유사합니다. 북한의 서해갑문 건설사업은 간석지 개간, 새땅찾기 운동, 서해갑문 건설 및 태천발전소 건설과 함께 4대 자연개조사업으로 추진하였습니다.

서해갑문은 남포 영남리와 황남 은율군 송관리 사이의 대동강 하구에 있는 세계적 규모의 북한 최대 갑문으로 대동강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1981년 착공하여 1986년 6월 24일 완공하였다.

북한은 당초 3년 내에 완공한다는 목표 아래 1개 군단 규모의 군병력과 각지에서 동원된 수만 명의 노동자를 투입하여 공사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공사규모가 방대한 데다 작업지역의 유속이 빠르고 수심이 깊어 작업조건이 매우 나빴으며, 북한의 토목공사 기술수준이 낮았던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되어 완공시기를 두 차례 연기를 해서 완공된 것입니다.

기자: 이번 미루벌 개간 사업을 두고 북한 당국에서는 식량증식에 기여하게 됐다고 하는데 과연 주민들에게 득이 되는 사업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요?

조병현: 표면적으로는 도움이 되는 것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 효과에 대해 노동신문은 자연흐름식 물길이기 때문에 수백대의 양수기를 가동하지 않고도 미루벌에 마음껏 물을 공급하게 되어 "수만kW 능력의 발전소"를 얻어낸 것과 같고 "(수확량) 1만t 농장 여러 개를 더 건설한 것과 다름없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루벌 물길 곳곳에 중소형발전소를 건설하여 전기도 생산하고 고지대를 지나가는 주변에 축산용수로 활용하여 고기와 젖을 생산하고, 또 공장의 공업용수, 주민들의 식수도 확보하는 등 주민생활에 많은 이득을 안겨주게 되었다고 북은 선전하고 있습니다.

기자: 북한은 이번 미루벌 개간사업처럼 더 많은 국토정리사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데 남북한이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은 없겠는지요.

조병현: 네 여러 가지 많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우선 남북을 연결하는 철도문제는 경원선, 동해선, 금강산선에 대해 복구를 준비하고 도로는 남북을 관통하는 국도31호, 43호선에 대해 남방한계선에서 개성까지(11㎞), 포천에서철원, 원산(143㎞)으로 가는 구간을 남한이 먼저 연결할 수 있도록 개선 공사를 하고 북한과 협력해서 북한을 이어가는 노력을 해야 겠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에서도 검토하고 있는 줄로 압니다만, 통일 대비 ‘한반도 국토개발 마스터플랜’을 수립하여 장기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끊어진 허리를 잇는 것이 남북통합의 지름길이라 생각합니다.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황해북도 미루벌 개간 사업과 관련해 북한토지전문가인 조병현 박사와의 대담을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