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북한에서 오직 한 사람 빼고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권리를 보장받은 사람이 없을 겁니다.
“나는 김정일 경호원이었다”는 제목의 책을 쓴 탈북자 이영국 씨가 북한의 그런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는데요. 오늘은 북한에서 어떤 사람이 정치범수용소라 알려진 관리소에 가는 지 알아봅니다.
탈북자 이영국 씨는 함경북도 무산에서 태어나 노동당 조직지도부 5과 대상으로 선발돼 입대 후 당중앙위원회 호위부 6처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경호원으로 만 10년 근무합니다. 그리고 제대 후 무산군 당위원회 지도원으로 일하다 탈북합니다.
이영국: 사람들은 잘 이해 못 하죠 제가 경호원 10년하고 사회교육을 많이 받고 나왔어요.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는데 일본 사람이 짓은 집이 그냥 그대로고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경호원들은 마을 사람들이 사는 그런 곳에서 사는 것은 아니거든요. 좋은 곳만 가보다 보니까 잘 몰랐어요. 그때 극동방송, KBS 사회교육방송 라디오를 듣게 됐어요. 나는 당일군이라 주파수 고정을 하지 않은 라디오를 가지고 있었는데 파장을 맞추다가 이상한 남한 말이 나와서 계속 듣다보니까 제가 경호할 때 알게 된 것과 비슷한 말을 하더라고요. 이불 밑에 들어가서 집사람도 모르게 들었어요. 그때 또 무산에 중국 텔레비전 방송이 잡혔는데 중국에서 하는 샴푸 선전을 봤어요. 여자가 머리를 감는데 상의를 반쯤 벗고 나오는 데 신기하더라고요. 놀랐죠. 그리고 중국에는 고기가 넘쳐나서 안 먹고 길에서 손들면 택시가 멈춰 선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당시 난 택시를 몰랐죠. 그런 말을 들으면서 중국에 한 번 가보겠다고 생각했는데 한 번은 조선족 친구 분이 집에 나왔다가 단속이 됐어요. 제가 힘이 있으니까 도와줬거든요. 그것이 1994년이죠.
김 위원장의 경호원으로 사회와 완전 격리된 생활을 하다가 고향마을로 돌아간 이 씨에 눈에 보이는 모습은 충격이었습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남한 방송과 중국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점점 이 씨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는데요. 그러던 차에 알게 된 조선족은 이 씨에게 귀가 솔깃한 제안을 합니다.
이영국: 그 양반이 내가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날 계속 찾아왔어요. 하루는 나를 찾아와서 중국을 보지 않겠는가? 연길에 초청을 한데요. 그런데 하나 조건이 있었어요. 두만강 연선 2km를 비워달라는 거예요. 그렇게 하기로 하고 94년 10월 1일 중국 국경절인데 저녁 9-10시 사이에 내가 국경경비대 대대장에게 전화를 했어요. 무산의 수원지에 물 소독을 하니 다 나가달라 하고 다음날에 경비를 세워라 그렇게 했죠. 그리고 중국을 갔죠. 연길에 가니 눈이 번쩍하더라고요. 멋있다고 할까? 술도 먹고 했는데 날이 밝아 보니까 군대와 적위대가 많이 나와 있었어요. 물어보니까 나를 보내고 조선족이 밀수를 한 거예요. 나는 몰랐어요. 뒤통수를 맞은 거죠. 무섭기도 하고 그때 당부부장을 했는데 체면도 구기고 해서 못 넘어갔어요. 그리고 중국에서 이북 격술이랑 총 쏘기, 단도 던지기를 화룡 쪽 깊은 산에 들어가 한족하고 조선족에게 5개월 정도 배워줘서 중국 돈 8천원을 받아 연길로 나왔죠.
기자: 당시 직책이 뭐였나요?
이영국: 적위대 부부장이죠. 군사부 부부장이죠. 무산시 당위원회 군사부부장이죠.
북한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처지가 되었던 차에 이영국 씨는 그의 운명을 바꾸게 하는 또 한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이 씨는 남한으로 망명을 하면 잘살 수 있다고 권유를 받았고 맘을 굳히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시키는 대로 눈을 가린 채 벤츠 차를 타게 됩니다.
이영국: 차를 내려서 2층 정도 올라갔는데 문을 열고 안대를 벗으니까 김일성하고 김정일 사진이 있는 거예요. 싸움을 하다가 묶였어요. 다음 날 국가보위부 1부부장인가 왔는데 한 이틀 대사관에 있다가 몸에다 깁스를 하고 모르핀 주사를 맞고 수면제를 술에 풀어서 큰 컵으로 해서 먹이더라고요. 눈이 감기면서 정신을 못 차렸어요. 고려항공 제일 앞자리에 태워서 북한으로 왔어요. 연못동에 있는 국가보위부에 들어갔어요. 거기서 한 10시간 깨질 못했어요. 죄수복을 입고 혼자 있는데 약기운에 정신을 못 차렸는데 며칠 있다가 총살한다고 하더라고요.
이영국 씨가 간 곳은 남한대사관이 아닌 중국주재 북한 대사관이었습니다. 이 씨는 베이징에서 고려항공 편으로 평양에 호송돼 국가보위부 예심국에서 조사를 받습니다.
이영국: 앞이 캄캄하고 맥을 놓고 있었는데 한주일 지났는데 간부 담화를 한다는 거예요. 그때 중국에 나를 데리러 왔던 그 국가안전보위부장인데 군복을 입고 거기 있더라고요. 왕별을 세 개 달고 있었는데 하는 말이 “ 야, 네가 뭐가 부족해서 남조선에 가냐? 김정일 동지의 배려를 받고 경호원하고 대학도 나오고 직업도 당부부장이고 한데 뭣 때문에 남조선가냐?”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이 너를 잡아오느라고 남조선 녀석에게 25만 달러를 줬어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알았죠.
얼핏 보면 조선족에게 속아 국경을 넘었고 중국에서는 또 다른 사람에게 속아서 북송이 된 처지가 됐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북한의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 아닐까? 이 씨가 10년간 김 위원장 곁에 있던 생활을 천국에 비유한다면 수용소의 생활은 지옥이었다고 이 씨는 고백합니다.
이영국: 북한에서 정치범이란 말은 있어요. 그런데 수용소란 말은 나도 못 들었어요. 그런데 정치범이란 말은 있어요. 자고 깨어나면 어느 집에서 밤에 차가 와서 다 데려갔다더라. 부모들이 다 교육을 해요. 말조심해야 한다고요. 그 사회자체가 공포심에서 살면서 정체를 모르는 거죠. 내가 경호를 하다가 김정일을 위해 햇수로 11년을 충성했는데 사회가 가보니까 모든 것이 거짓인 것을 알았죠. 그러니 북한이 지옥이죠.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북한 15호 정치범수용소와 관련해 탈북자 이영국 씨가 김 위원장의 경호원에서 요덕관리소에 가게 된 배경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