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외부세계 사람들은 북한의 관리소 즉 정치범수용소가 어떤 곳인지 모릅니다. 북한주민들 조차 그 실체를 모르기는 마찬가지일 텐데요. 오늘은 제 15호 요덕 관리소에서 출소해 남한으로 간 탈북자 이영국 씨를 통해 요덕에서의 생활에 대해 알아봅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경호원으로 10년간 복무한 이영국 씨는 제대 후 고향인 함경북도 무산 시 당위원회 군사부부장으로 일합니다. 그리고는 탈북했다가 중국에서 북송돼 정치범수용소에 가게 됩니다. 그는 요덕이란 마을은 알고 있었지만 그곳이 생지옥인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영국: 요덕이라고 해요. 그런데 밖에선 수용소인줄 몰랐습니다. 함경남도 요덕 군이 농사짓는 곳인 줄 알았죠.
기자: 그곳의 규모가 큰가요?
이영국: 우리고 보면 한 개 면보다 커요. 가보니까 양쪽으로 산이 있고 갯벌이 있는 곳에 부식토를 깔아 밭을 만들었고. 산세가 심하고 돌이 많아요. 원시림처럼 돼있어서 뚫고 나가기 힘들어요. 가보니까 여자나 남자나 다 기름 때 흐르는 헌 옷을 입고, 눈이 들어가고, 배가 나온 백골 같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더라고요. 나도 거기 갈 때 58kg이었어요. 한 5개월 심문을 받았는데 94kg에서 체중이 준거죠. 나는 건장한 편이었어요. 노동시간은 여름에는 6시에 나가고 밤에는 8시에 들어오고요.
요덕 관리소는 요덕군 용평리, 평전리, 구읍리 일부,대석리, 대숙리 등 5개 리를 합쳐 만들어진 통제구역입니다. 다시 말해 머리를 빡빡 깍은 사람들이 일정하게 지어진 막사에서 집단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살고 있던 마을과 산천을 사회와 격리시켜 그 속에 정치범들만 수감하는 자연 감옥인 셈입니다.
이영국: 벼농사 짓고 일반 사회처럼 사는 데 통제돼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죠. 일반 사람으로서 가치 권리가 떨어진 곳입니다. 거기선 국어와 수학만 가르칩니다. 김정일 시대에는 정치범이 늘어나니까 가족이 아니고 독신으로 데려갔어요. 요덕관리소 안에 용평, 입석 등 6개 구역 정도로 나뉩니다. 입석은 제일 안쪽에 있는데 전부 독신입니다. 북한 고난의 행군 때는 보통 안에서 옥수수 농사의 20%를 밖으로 내가던 것을 우리 갔을 때는 60%를 내갔습니다.
먹는 것은 옥수수 끓인 죽인데 물 컵보다 좀 더 큰데 그것 한 컵하고 배춧잎을 소금에 넣어 끓은 국하고 단백질은 전혀 못 먹고 마늘, 고추 이런 것은 보지도 못한 채 하루 14시간 노동을 하니까 원시시대보다 더 힘들죠. 자기 노동을 못하면 밥을 안줘요. 사람들 배가 볼록하고 뼈만 남았는데 때리고, 가다가 선생과 눈이 마주치면 돌멩이로 쳐 죽입니다. 그 안에서는 사람취급을 안하고 짐승처럼 보면서 그 안에서는 짐승처럼 이름도 없고 정치범은 다 죽여도 된다는 겁니다.
이영국 씨는 10년 형을 받고 1995년 4월25일 요덕 관리소에 들어가 형량의 절반인 4년 반을 생활하게 됩니다. 이영국 씨는 죽어서나 가볼 수 있는 지옥을 요덕에서 경험했다고 합니다.
이영국: 제일 생각나는 것이 사람을 목메 죽이고 총 쏴 죽이는 겁니다. 죽이는 사람은 그 안에도 등급이 있어요. 남한에 친척이 있거나, 기독교인, 이북에 대해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을 먼저 죽여요. 그 사람들은 죄가 없는데도 무슨 구실을 붙여요. 일을 잘하는 데도 못한다고 때린다든가 호주머니를 뒤져요. 누구나 말린 쥐 고기나 말린 뱀 고기를 차고 있어요. 겨울준비를 하는 거죠. 봄에 죽는 사람이 많거든요. 우리도 돌에다 줄칼 같은 것을 가지고 다니다가 차돌에다 비비면 불이 튀거든요. 누구나 이런 것을 다 가지고 다니는데 그런 사람을 나오라고 해서 도주 행동을 했다고 용평에 보냅니다.
용평에 감옥이 있는데 거기 한 두 달 있다 올라오면 한 달도 못돼 죽어요. 우린 그렇게 비실비실 하는 사람을 보고 꽃동산 간다고 하죠. 보면 딱 알 수 있어요. 교수형 할 때 본인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발버둥을 쳐요. 교수형을 한 후 다시 머리에도 총을 쏴요. 사형하는 장면을 10m 정도 앞에 앉혀놓고 보여줘요. AK 소총을 12발을 3명이 3발씩 쏴요. 머리부터 발까지 다 쏘고 나면 엎어지는데 지휘관이 그 머리에다 총 3발을 또 쏴요. 그러면 그 피가 우리에게까지 다 튀어요. 처음에는 가슴이 울렁거리고 무섭고 하지만 한 달에 한 두 번은 꼭 있어요. 일도 안하고 다 모이라고 해요.
이런 공개처형이 있는 날에는 요덕에 있는 수 천 명이나 되는 사람이 전부모여 그 모습을 봐야합니다. 관리소에서의 주검은 또 있습니다.
이영국: 두 번째는 사람을 먹이지 못해 영양실조가 온 사람을 일하는 현장까지 데리고 나가요. 다 죽어 가는 사람이 밭에 앉아서 봐야 해요. 그러면 그 사람 몫까지 우리가 일해야 해요. 선생 한마디에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해요. 죽으면 비닐박막에 싸서 나무도 안 나는 산에 묻는데 우린 사람 묘가 많아서 꽃동산이라고 불러요. 거기다 우리는 그저 일렬종대로 다 묻어야 해요. 묻고 나서도 이름표도 없고 그냥 무명이죠. 사람이 죽으면 몸속에서 물이 나와요. 산에 올라가자면 메고 올라가는데 시신 콧구멍을 안막았으니 물이 흐르는데 그게 등줄에 뚝뚝 떨어져요. 처음 10구까지는 등골이 오싹하는데 나중에는 감각이 없어요.
아무리 처참한 모습도 자꾸 보면 감각이 무뎌진다고 이런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인성을 잃고 야생짐승처럼 변해간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영국 씨는 관리소 경비원들의 모습도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영국: 세 번째는 선생들 문제인데 그 사람도 인간이고 같은 민족인데 힘을 남용을 한단 말이죠. 죄인한테 그냥 먹고 살아라 하면 되는데 죽이니까 독재자고 또 그 아래 보위원도 집에 갔다 와서 기분 나쁘면 사람 죽이는 것은 한순간이거든요 때려죽이던가. 심지어 보위지도원이 그러니까 경비대도 순찰하다가 자기 처다 본다고 총 탁으로 쳐서 죽이고 아무 제재도 안 받고 선생이 묻으라고 하면 끝이고 그것을 봤을 때 지독했어요. 독재자가 용인하니까 그 밑에 사람들도 따라하고 또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습관화 돼서 사람 죽이는 것이 개 한 마리 잡는 것보다 쉽고 파리 잡는 것 같아요. 그렇게 그 안에 구조가 됐으니까 안타까운 거죠.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요덕수용소에서 죽어 나가는 사람들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