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탕엔 곰고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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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눌 때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의사소통이 안됩니다. 그런데 같은 말을 쓰는 듯하지만 서로 다른 의미로 해석이 된다면 어떨까요? 탈북민이 남한에 가서 당황하게 되는 순간을 모아봤습니다.

화장을 안하던 노우주 씨는 세수를 하고는 얼굴 피부가 당겨 화장품을 사려고 상점을 방문합니다.

노우주: 시장엘 버스 타고 가서 가게에 들어가서 크림하고 살결물 달라고 하니까 무슨 소린가 하면서 중국에서 왔냐며 물어보는 거예요. 그래서 진열된 것을 보면서 달라고 하니까 점원이 웃더라고요. 그리고 그 병도 여성분 용기와 남성이 쓰는 것이 다르더라고요. 남성 것은 거의 사각형이고 좀 크고 여성 화장품 병은 동글동글하고 길죽하고 한 것이 구분이 되더라고요.

북한 신의주 화장품 공장에서 만드는 ‘봄향기 살결물’ 제품과 같은 것을 남한에서 구입해 쓰자면 화장품을 전문으로 파는 가게에 가서 화장수 또는 스킨을 달라고 하면 됩니다. 그리고 물처럼 맑은 액체가 아니고 미음처럼 하얗게 생겨 좀 걸죽한 화장품을 사려면 로션을 달라고 하면 되고요. 이처럼 같은 물건이지만 부르는 용어가 달라서 탈북민들은 남한정착 초기에 당황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좀 더 노우주 씨의 경험담을 들어보시죠.

노우주: 같이 봉사활동을 하는 분들이 밥을 사주겠다면서 뭘 먹고 싶냐고 하더니 고깃집으로 데려간 거예요. 별로 고기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사준다 해서 갔는데 삼겹살 먹을래? 갈매기살? 그래서 갈매기 고기도 먹어요? 하고 물어보니까 무슨 소리냐고…갈매기 고기는 돼지고기 부위에 치맛살처럼 생긴 부위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또 웃은적도 있고요. 그리고 대구탕집이 많은데 대구에서 온 아줌마가 차린 식당이라서 ‘대구집 식당’ 이런 간판이 많고 또 곰탕집이 많더라고요. 중국에서 살 때 곰을 사육하는 집이 종종 있었는데 남한에도 곰을 키우는 집이 많은가? 곰잡아 파는 식당이 이렇게 많냐고 해서 웃은적도 있고요.

노 씨가 오해를 했던 것처럼 곰탕은 곰고기로 끓인 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한에선 소고기와 뼈를 진하게 푹 고아서 끓인 국을 곰탕이라고 부릅니다. 소꼬리를 토막내서 진액이 빠지도록 끓은 물에 푹 삶아서 만드는 것은 꼬리곰탕이라고 하고요.

(부릿지 음악)

탈북민 대부분이 남한에서 말이 안통한다 호소하는 부분은 외래어를 섞어 쓸때입니다. 남한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텔레비전이나 신문 등 언론에서 하는 말을 표준어라고 생각하고 쓰게 됩니다. 언론에서 하는 상품광고는 같은 상품이라도 멋지게 포장하고 이름을 근사하게 붙이는 데 이때 주로 외래어를 많이들 씁니다. 탈북민 이선희 씨의 경험담 들어보시죠.

이선희: 처음에 한국에 와서 생활정보지를 보니까 치킨집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가 나온거예요. 주소를 보니까 우리집에서 아주 가까웠어요. 한번 알바라도 해보자 해서 갔어요. 거기 가서 문 두드리고 안녕하세요 사장님, 여기 치킨 식당입니까 하니까? 사장이 나를 처다보더니 닭고기 잘라봤어요?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 치킨 이라는 이름의 식당 아닙니까 하니까. 어디서 왔어요? 하는 거예요. 알고 보니까 치킨이란 것이 닭튀김집이란 말이었어요. 저는 그것을 모르고 치킨이라는 이름의 식당인 줄 알았죠.

그냥 닭 튀김집 또는 양념 닭튀김 이런 식으로 말해도 될텐데 튀긴 닭은 프라이드 치킨이라고 씁니다. 이 씨의 오해는 닭을 전문으로 튀겨서 파는 곳에서 일할 사람을 찾는 구인광고를 보고 간 것에서 발생한 일입니다.

모르는 것을 바로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금방 의문이 풀리지만 모르는 것이 있을 때마다 일일히 물어보기도 간단치 않은 일이죠. 그래서 혼자 문제를 풀려고 하다보니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이선희: 호기심이 많으니까 버스타고 가면서 밖을 열심히 내다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한창 다다가 정류장에 섰는데 ‘디지털 프라자’ 이렇게 쓰여 있는거예요. 디지털 프라자가 뭐야? 돼지털 파는 상점인가 했는데 전자제품을 파는 상점이었던 거예요. 외래어로 쓰여 있으니까 얼마나 우스워요. 전자제품을 파는 상점을 돼지털을 파는 상점으로 알았으니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이예요.

1970년대 80년대만 해도 보통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냉장고 등 전자제품을 파는 상점이 몰려있는 곳을 전자상가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남한에 올림픽이 있고 국제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우리말을 두고 외국인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외래어를 많이 쓰지 않았던가 싶은데요. 이 씨가 말하는 전자상가는 디지털 프라자로 명칭이 변한 겁니다.

이렇게 속의 내용은 같으면서 부르는 명칭만 변했거나 또는 상품을 대표할 수 있는 특징을 이끌어내는 단어가 상호가 되기도 합니다.

이선희: 여기는 개인이 운영하는 생활용품이나 식료품을 파는 개인상점이 많은데 이런 곳을 마트라고 해요. 한번은 지나가는데 ‘패밀리 마트’라고 쓰여있는 거예요. 패밀리는 가족이잖아요. 그래서

한가족이 운영하는 마트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하나원 선생님한테 패밀리 마트는 한 가족이 운영한다는 소리예요 하니까 선생님이 그런 것도 있는데 하면서 그냥 웃어버리는 거예요. 나중에 알았는데 가족이 운영하는 마트가 아니고 체인점이었던 거예요.

북한에서 일반 노동자 또는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이 남한에 갔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닙니다.

이선희: 고등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남한에 있는 외래어 간판을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예요. 왜냐하면 북한에는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요. 그 사람이 북한의 고등교육을 받았어도 남한 상품을 다 알 수 있습니까? 높은 간부로 있었고 김책공대를 다녔다 해도 남한에 오면 일반 노동자로 있다가 온 사람들처럼 남한에 대한 상식 특히나 외래어로 된 상점을 모르는 것은 같더라고요.

탈북민 누구나 한번쯤 경험하게 되는 정착 초기의 실수는 부끄럽다기 보다 남북한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지나게 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합니다.

이선희: 자꾸 그런 상점을 이용해보면 아는 거죠. 며칠 지나면 또 사람들이 뭔가 사가지고 나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거죠. 사람들 보고 물어도 봐요. 그러면 알려주더라고요. 그러면 아는 거죠. 그런데 처음에는 무식한 것 탈로 날까 부끄러워 물어보지도 않아요. 하루이틀 지나고 이 사회에 적응하다 보면 물어보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더라고요. 또 스스로도 자꾸 다니면서 알게되고 스스로 채득하는 것이 제일 좋더라고요.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