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회령 전거리 교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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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궁금증을 풀어 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에서는 죄인을 가두는 곳을 교도소라고 합니다. 그리고 북한에서 이와 같은 곳이 교화소입니다. 하지만 북한의 교화소는 남한과 달리 열악한 환경과 심한 노동으로 인권침해가 벌어지는 온상으로도 알려졌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은 교화소 중에서도 특히 함경북도 회령시 전거리 교화소의 노동강도가 높다고 말합니다. 이 시간에는 지난해 말 전거리 교화소에서 생활했던 탈북여성의 체험담을 전해 드립니다.

탈북여성 김영옥(가명 21)에 따르면 전거리 교화소는 커다란 산골짜기를 이용해 십수 동의 단층건물을 골짜기를 따라 지었으며 그곳은 남녀 수감동과 작업동 등으로 나눕니다. 골짜기 입구의 마을은 교화소 간수들의 사택과 경비 군인들의 병영이 있으며 농사일은 교화소 입구 디귿자 건물 뒤편으로 해서 밭으로 나갈 수 있게 구조가 돼 있습니다.

김 씨는 전거리 교화소에 가기 전 청진 도 집결소를 거칩니다. 수많은 탈북자가 임시로 거쳐 가는 청진 도 집결소의 일과부터 들어봅니다.

김영옥: 아침은 기상 6시에 해서 30분 밥 먹고 7시30분부터 나가서 일합니다. 오전 오후로 작업하는데 7시 30분부터 11시30분까지 도로 닦기도 하고 농사도 짓고 화목도 하고 그럽니다. 힘 있는 사람은 산에 가서 나무도 하고 …

오후 일과는 1시부터 5시까지. 그리고 오후 6시부터는 죄인 학습이라고 해서 다시는 중국에 가지 말라는 내용으로 보안원들 앞에서 교육을 받습니다. 그리고 10시부터는 취침입니다. 이때도 자유의사가 아니라 무조건 자야 합니다. 감옥에서의 식량은 수감자들이 농사 짓은 식량으로 해결합니다.

김영옥: 한 끼에 100g밖에 안 됩니다. 어른이나 아이나 같은 죄인이니까 똑같이 줍니다. 소금국에 강냉이 밥을 줍니다 그런데 옥수수 쌀이 별로 없고 강냉이 껍질과 함께 섞어 주는데 양이 적습니다. 남자는 여름이면 산에 올라가서 뱀도 잡아 먹고, 쥐도 잡아먹고 한다던데 제가 있던 석 달 동안은 풀도 뜯어 먹고 그랬습니다.

청진 도 집결소는 건물이 하나인데 방은 여섯 칸입니다. 남자 3칸 여자 3칸인데 남자는 잡혀 나가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남자는 2칸만 쓰고 여자는 4칸을 씁니다. 도 집결소에서는 그래도 누울 수는 있었는데 교화소는 아닙니다. 사람 위에 사람이 올라갈 정도로 꽉 차있습니다.

김영옥: 한방에 150명 정도 있습니다. 15평입니다. 가운데 나무 판자를 둬서 그 위해 사람이 올라가 잡니다. 딱 세워서 자야 합니다. 그것도 한 달에 20명 정도가 계속 들어오고 사람이 누울 자리가 없으니까 어떤 사람은 화장실에 들어가 잡니다.

이처럼 회령 전거리 교화소는 잡혀 온 탈북자들로 넘쳐 났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받은 형량에 따라 노동을 하는데 제일 긴 15년 형을 받은 사람은 좀 수월한 식당일이나 외화벌이 노동에 투입됩니다. 전거리 교화소의 노동에 대해 직접 들어봅니다.

김영옥: 형기가 많은 사람은 가만히 앉아서 가발도 만들고 눈썹도 만들지만 형기가 작은 사람은 밭에 나가 일합니다. 힘이 센 여자는 산에 가서 화목하고 남자는 대개 산에가서 나무를 하는데 거기서 통나무 치여 죽는 사람도 많습니다. 겨울에는 너무 추워 밭에 나가 일을 못하니까 퇴비를 합니다. 퇴비를 등에 지고 나와서 밭에 뿌리고 다시 가고 합니다. 그런데 오전에 두 번 오후 두 번 하는데 평길이지만 걸어서 2시간 정도 걸어야 합니다. 150명이 대오를 지어 걸어야 하는데 그중에 잘 걷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늙은이는 천천히 걸어야 하니까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강도 높은 노동도 문제지만 항상 허기진 것은 수감자들의 제일 큰 고통입니다. 매일 힘들게 일하고 잘 먹지 못하니 대부분의 수감자는 영양실조에 걸려 있고 심지어 교화소에서 죽어나가기도 합니다.

김영옥: 청진 도 집결소에 있을 때는 그냥 옥수수 껍질을 넣어 줬는데 무산 구류장에서부터는 두부콩 밥을 같이 옥수수와 섞어 먹었습니다. 거기서는 350g을 준다고 하는데 보면 200g 정도 줍니다. 소금국인데 도 집결소에 있을 때보다 시래기를 넣어 주고 허약이 오지 말라고 된장국도 주고 했습니다. 그래도 허약이 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먹는 것과 잠자리가 이러하니 전거리 교화소 내의 위생은 보지 않아도 한심할 것이라는 상상을 할 수 있습니다. 교화소 내에 병원이 있지만 큰 사고가 나도 간단한 소독만 해줄 뿐 주사약은 가족이 면회를 오면서 사와야 놔준다고 김 씨는 말했습니다. 교화소 내의 구타 문제는 생각보다 심하지 않은듯 했습니다. 김 씨에 따르면 자기가 맡은 죄인이 많이 죽으면 보안원도 책임이 있기 때문에 자기 처리만 잘하면 막무가내로 때리진 않는다고 했습니다. 개인위생 관리에 대해 들어봅니다.

김영옥: 일주일에 한 번씩 대중탕에서 목욕하라고 하는데 죄인들이 너무 허기지고 해서 씻지도 않습니다. 몸을 움직이기 싫으니까요. 죄인들이 자기 몸도 씻지 않으니 이를 닦지 않습니다. 면회를 누가 오는 사람은 잘 먹으니까 이도 닦고 좀 씻습니다. 옷을 잘 빨아 입어야 하는 데 비누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보안원이 생각한 것이 나무 태운 재를 물에 불렸다가 그물을 조금 넣고 빨래를 하면 깨끗해집니다.

전거리 교화소에서의 식량을 포함한 모든 물자는 죄수들이 스스로 해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예전에는 교화소에서 이불을 줬다고 들었지만 김 씨가 수감 생활을 할 당시는 자기가 입던 옷을 기워서 이불을 만들어 썼습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갈 때와 여자에게 지급돼야 하는 물품도 일체 스스로 해결합니다.

김영옥: 강냉이 오사리, 껍질 그 수염을 말려서 화장지를 대용합니다. 생리는 너무 못 먹어서 거의 여자들이 생리를 하지 않습니다. 면회 오는 사람이 있으면 좀 잘 먹어서 생리를 하는데 대부분 생리를 안 합니다.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전거리 교화소에서의 생활은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마저 잊게 만들었습니다. 김영옥 씨는 지금 가족과 함께 남한에서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중국에서의 강제북송과 전거리 교화소에서의 기억은 악몽이 돼 김 씨의 새벽잠을 설치게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궁금증을 풀어 드립니다.’ 오늘은 회령 전거리 교화소의 생활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