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안녕하세요. <궁금증을 풀어 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북한 당국이 탈북자 가족에 대한 감시를 강화한다는 소식은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고향을 떠나 더 나은 삶을 찾는 북한 주민에 대한 이야기 역시 줄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 21살의 탈북여성 주찬양(가명) 씨는 지난해 말 탈북해 중국을 거쳐 이미 남한에 둥지를 튼 가족과 합류했습니다. 얼마 전까지 북한에 살던 주 씨에게 고향 마을의 소식과 남한에 첫발을 내디딘 소감에 대해 들어봅니다.
기자: 북한 고향의 식량사정은 어떻습니까?
주: 북한에 있을 때 저희는 정말 한심하게 살았습니다. 엄마 아빠가 집을 떠났을 즈음 기업소에서 배급을 줬습니다. 썩은 강냉이였는데 구멍이 뻥뻥 뚫린 강냉이를 100kg 줬습니다. 그 당시 썩은 강냉이라도 먹는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이웃집에선 진짜 더 한심하게 풀만 캐서 먹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남한에서는 돈만 있으면 먹고 싶은 것을 다 먹고 하는 것을 보니까 어느 하루도 북한 생각이 안 날 때가 없습니다. 북한에서 옥수수밥 먹다가 쌀밥을 먹었으면 그런 생각을 안 하겠는데 남한에서 갑자기 잘 먹고 하니까 북한 생각이 많이 납니다.
자신이 살던 곳 역시 강냉이가 주식이었고 기업소에서 식량이 허락하는 데로 있으면 주고 모자라면 배급이 하나도 없었던 터라 상한 강냉이도 고맙게 생각하고 그것으로 근근이 끼니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했는데 좀 더 내용을 들어봅니다.
주: 100kg으로 다섯 식구가 한 달은 살 수 있었습니다.
기자: 북한에서도 하루 세끼를 먹을 수 있었나요?
주: 저희처럼 산골에 사는 사람은 풀이라도 섞어서 세끼를 먹는 집도 있고 업무사업을 하는 사람은 잘 먹는 사람은 잘먹습니다. 그리고 어떤 집에서는 두 끼 먹기도 하고요. 저는 굶어 죽는 사람도 봤습니다. 몸이 말라서 앉으면 다리가 귀까지 접히는 사람을 봤습니다. 뼈밖에 안 남아서… 여기 오니까 진짜 그런 생각이 많이 납니다.
기자: 살았던 곳이 산골이라고 했는데 그곳의 전기 사정은 어땠나요?
주: 저희 있는 곳은 그래도 전기 사정이 좋았습니다. 24시간 전기가 오진 않아도 한 70%는 전기를 받았습니다. 2012년 강성대국 대국이 온다며 전기도 많이 풀고 한다고 했습니다. 기차도 함북도에서 평양에 가자면 3일을 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올 당시엔 하루면 갔습니다. 전기 사정도 전보다는 나아졌다고 알 정도 였습니다.
기자: 산골이었다고 했는데 전기 사정도 그렇고 외부에서 아는 것보다 사정이 좋은 것 같습니다.
주: 저희는 산골이기 때문에 풀이라도 먹을 수 있고 도토리면 도토리, 잣이면 잣, 송이면 송이를 따서 산골이니까 그런 것을 팔 수도 있었습니다. 도시에 있는 사람이 잘 살 것 같지만 실제 그 사람들보다 나았습니다. 그런데 그 산골도 과연 얼마나 갈까? 머지 않아서 산골도 다 없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환경피나무라고 있는데 그런 아름드리나무 껍질을 다 벗기고 찍고 그랬습니다. 현재는 산골에서 배불리 먹고 살지만 약이 되는 나무는 뿌리까지 다 뽑아 먹으니까. 과연 그 산골은 얼마나 갈까?...여기서 겨울에 추우면 나무를 감싸주고 하는 것을 보면 북한 생각이 나곤 합니다. 북한이 솔직히 진짜 자연 그대로 보전을 한다면 너무 멋있는 곳입니다.
기자: 상상만 하다가 남한에 와보니 어떤지 청취자에게 소감을 말한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주: 북한에서 방송을 들을 때는 진짜일까 그랬습니다. 우리를 한국에 오라고 얼리는 소리겠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와보니까 생각보다 현실이 더 좋습니다. 진짜 신기한 것이 많습니다. 북한에서는 학생이 어디 가서 당당하게 꿈이 뭐다라고 말하고 살질 못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고 배낭 메고 장사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아이들이 좋은 꿈을 갖고 살게 선생님이 도와주고 노인장을 어디서나 우대해주고 또 돈 벌 시간에 봉사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느끼는 것이 많습니다. 진짜 우리가 북한에서 알고 있었던 자본주의 사회하고는 180도 다릅니다.
남한에 있던 가족이 탈북 중개인을 보냈고 중국을 거쳐 바로 남한으로 간 주 씨는 탈북배경에 대한 남한 정부의 조사를 받고 사회정착교육 시설인 하나원 3개월 과정을 마친 후 지역사회에 거주지 배정을 받았습니다. 물론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도록 따로 개인 주택을 받지 않고 보모님이 있는 임대아파트로 들어갔습니다. 현재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학력인정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주 씨는 따로 컴퓨터 교육도 받으면서 자신의 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주 씨의 장래 희망에 대해서도 들어봅니다.
주: 북한에서 맘먹었던 일을 하고 싶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라고 남한에 오니까 선생님이 말하는 데 진짜 그 말이 맞습니다. 저는 북한에 있을 때 엄마, 아빠가 속병을 앓았지만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치료를 못 했습니다. 동생들도 학교도 못 다니고요. 그런데 남한에 와서 엄마 아빠가 치료받고 일도하고 학교도 다닌다는 소릴 듣고 너무 놀랐습니다.
기자: 북한에서 남한에서 들려주는 그런 소식을 전해 들었단 말이죠
주: 네, 몰래몰래 들었습니다. 진짜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속을 뭉클뭉클했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 할아버지 앞에서 맹세했던 것이 의사가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남한에서 나도 진짜 할아버지 앞에서 했던 약속을 진짜 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북한에서 간호원 학교를 다니고 졸업장을 받았지만 집 사정상 학교도 못 가고 어른이 하는 노동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별명이 소녀노동자였습니다. 제가 돈으로 학교에 들어갔으니까 그 차제가 아닌 것이죠. 여기서 의사 공부하는 것이 쉽진 않겠지만 마음먹고 진짜 한 번 해보자고 결심하고 있습니다.
‘궁금증을 풀어 드립니다.’ 오늘은 지난해 말 북한을 탈출해 이제 남한 생활을 시작한 21살의 탈북여성 주찬양 씨가 들려주는 함경북도 고향 소식이었습니다.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