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어부, 생사확인이 시급하다

최성룡 대표가 최근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해 찍은 사진.
최성룡 대표가 최근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해 찍은 사진. (사진-최성룡 대표 제공)

0:00 / 0:00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정부는 납북자 문제와 관련 국가의 책무 차원에서 납북자 생사확인과 송환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오늘은 납북자가족모임 최성룡 대표와 북한에 끌려간 남측 어부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최성용 대표
최성용 대표

최성룡: 저는 납북어부 최원모 씨의 둘째 아들입니다. 아버지는 평안북도 정주 출신입니다. 연평도에서 조기잡이 하다가 끌려가셨어요.

사단법인 전후납북피해자가족연합회 이사장이며 납북자가족모임 대표인 최성룡씨 최근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했습니다. 목적은 유엔에 가서 북한에 억류된 아버지를 포함한 납북자들의 생사확인을 북한 당국에 다시 한 번 촉구하면서 국제여론을 상기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최성룡: 저는 이번에 제네바에서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민들도 3천명 이상 끌려갔는데 아직도 486명의 어부가 미송환입니다. 자기들이 필요한 젊은 사람들 그리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안 보냅니다. 저희 아버지는 캘로 출신인데 억류시켰고...

최성룡 대표의 부친 최원모 씨는 1967년 6월 5일 서해상에서 어로작업을 하던 중 북한 무장선에 의해 납북됐습니다. 당시 승선인원은 8명이었는데 전원 북한에 억류됐다가 3개월 만에 5명이 풀려났고 픙복호의 선주였던 최원모 씨는 북한에 배와 함께 억류됩니다.

최 대표가 입수한 '납북사건 관리 카드'에 따르면 선주 최원모 씨는 북한에서 KLO(첩보부대) 출신이라는 이력 때문에 '국가 반역죄'라는 혐의를 받고 인민재판에 회부된 이후 평북 정주군 정주역 앞에서 공개처형 당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납북사건 관리 카드'에는 최원모 씨의 북한 억류에 대해 "풍복호 선주 최원모 씨는 6.25 전쟁 당시 남하하면서 원적지에서 좌익분자를 살해한 것이 발각돼 억류됨"이라고 기록돼 있다고 최성룡 대표는 말했습니다. 과거 북한에 의한 남한어선의 나포사건이 많았던 이유를 들어봅니다.

최성룡: 옛날에는 장비가 좋지 않았습니다. 북한 선박이 NLL넘어와서 총격을 가하면서 끌고 갔습니다. 그렇게 끌어간 배가 많고 풍랑을 만나서 휩쓸려 가기도 하고요. 당시는 북한이 남한선박을 끌고 가는 것이 많았습니다. 충성하기 위해서 바닷가에서 학생들, 민항기, 외국 유학생, 중국에 있는 목사님, 바다에서는 어민들 ... 끌고 가면 북한에서 잘했다고 상을 주니까 특히 손쉬운 어민들을 많이 끌고 갔어요.

기자: 언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최성룡: 196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 그랬습니다.

2012년 최성룡 대표는 부친인 최원모 씨 납북 사건을 UN강제적 비자발적 실종에 관한 유엔실무그룹에 접수 했습니다. 유엔 북한 대표부는 최 씨의 아버지 사건과 관련해 생사확인을 해주고 답변을 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북한은 납북자가 한 명도 없다는 주장이죠.

최성룡: 북한의 간첩선이 남쪽에 침투해서 대낮에 김영남을 태우고 남포로 갔습니다. 그때 간첩이 자수를 했습니다. 김광현이죠. 2006년 금강산에서 김영남이 엄마를 만나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당시 김영남은 선유도에서 납치돼서 온 것이 아니라 쪽배를 타고 잠을 잤는데 눈을 떠보니 남포더라.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로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자신은 납치도 월북도 아니라고 이상하게 발표를 했어요. 이런 학생납치에 대해서도 부인을 하는 정권입니다. 과거 노무현정부나 김대중 정부 때 적십자 회담이나 남북회담 끝나면 북한에서 최성룡이 북한 사람을 납치해갔다고 한데요. 제가 납북어부나 국군포로를 많이 데려왔는데 북한에서 항의를 한다는 말을 우리 측 관계자가 들려주더라고요.

잠시 납북자 김영남 씨의 기록을 보겠습니다. 당시 남한 언론은 1978년 8월 나이 40세의 간첩 김광현은 17세의 고등학교 학생 김영남을 군산 선유도 해수욕장에서 납치해 북송합니다. 대남공작을 위한 젊은 피의 수혈이 목적이었다고 하는데요. 이후 납치된 김영남 씨는 북한에서 납북 일본인 메구미와 결혼했고 남파간첩을 육성하는 교관으로 살게 됩니다. 반면 김 씨를 납치해 북송했던 간첩 김광현은 2년 후 남한에서 체포돼 전향하면서 남쪽 고등학생의 납치 사실이 세상에 알려집니다.

납북자가족모임 최성룡 대표는 북한에 억류된 사람의 구출과 생사확인을 위해 지난 10여년을 활동했는데 현재는 상황이 많이 변했다고 전합니다.

최성룡: 저는 현장에서 구출활동을 했던 사람입니다. 탈북 납북자 귀환자가 9명이고 국군포로가 80입니다. 납북자는 8명을 모시고 왔고 국군포로는 12명에 가족을 120여명 모시고 왔습니다. 지금 제가 활동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데려올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또 김정은 체제 들어서 감시감독이 강화됐어요. 매일 가서 인민반장이 확인하고 해요. 탈출이 용이하질 않아요. 북한은 이산가족이라는 천륜의 문제를 가지고 장사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똑같이 받아 오는 겁니다. 이젠 1세대 당사자가 별로 없고 서로 모르는 사촌과 조카가 나와서 만나요. 이제 전면 생사확인을 해야 한다 그럼 이산가족상봉행사를 인정하겠어요.

최 대표는 남북한 두 정상이 진정성을 가지고 풀어야할 문제를 더 이상 미루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최성룡: 저는 마지막으로 북한 당국에 요구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1910년생입니다. 106살입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생사확인 불가라고 했어요. 그렇게 하지 말고 제삿날이라도 알려줘라 조금 있으면 음력 9월9일예요. 납북자 행방불명 된 사람들이 그날 제사를 드립니다. 이번에는 이상하게 이산가족상봉행사 첫날입니다. 이번에는 9월 9일 제사를 안올리도록 전면 생사확인 해달라.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이번에 납북자 국군포로 50명 명단을 보냈는데 이번에는 몇 명 빼고 생사확인불가 이렇게 나오면 진정성이 없는 거예요.

이것을 정확히 해야 해요.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납북자가족모임의 최성룡 대표와 북한에 납치된 남한 어부들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