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남한고기잡이 어선이 북한에 나포돼 억류된 것은 60여 차례입니다. 1955년 5월 대성호부터 1987년 동진호에 이르기 까지 수 십 년에 걸쳐 피랍사건은 발생했고 지금까지 송환이 되지 않고 있는 어부만도 500여명이 됩니다. 오늘은 조업 중 북한에 끌려갔다 31년 만에 탈출해 남쪽 가족의 품으로 간 최욱일 씨를 통해 납북어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최욱일: 북한에서 헤어지는 눈물 한국에 와서는 재회의 기쁜 눈물을 흘렸는데 제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북한에 놔두고 온 가족 생각으로 ... 뒷일이 크잖습니까?
납북된 남한어선 ‘천왕호’의 선주면서 사무장이었던 최욱일 씨는 2007년 1월 탈북해 남한에 갑니다. 그리고 북한의 가족과는 생이별이 된 겁니다. 이런 아픔은 귀환납북어부들에게 듣는 공통된 이야깁니다. 34년 만에 북한을 탈출해 남한으로 가서 지병으로 사망한 진정팔 씨는 ‘조국에 와서 부모형제를 만나 죽어도 여한이 없지만 북에 있는 부인과 자식들을 생각하면 죽어도 눈을 못 감겠다. 북에 있는 가족을 부탁한다는 유언을 하면서 납북돼 북한에서 가정을 꾸리다 탈북해 남한에 간 귀환어부를 중심으로 남한에 ’귀환납북자가족협의회‘란 이름의 단체를 발족하게 합니다.
납북된 최욱일 천왕호는 100마력 기관의 39톤급으로 최 씨가 결혼하고 14년 만에 장만한 꿈의 배였습니다.
최욱일: 1975년 8월 주문진항에서 출항을 해서 울릉도를 거쳐 북상해 공해로 갔습니다. 거기엔 중국배, 일본배 들이 조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조업을 마치고 입항할 시기에 북한 경비정이 우리가 남한 배라는 것을 알고 와서 잡아간 거죠.
배가 고장이 나서 표류를 한다거나 기름이 떨어져 정지 상태에 있던 것이 아닙니다. 조업을 끝내고 라디오 방송에서 태풍경계 주의보 발령을 듣고 서둘러 어구를 거둬 남측 주문진항으로 뱃머리를 돌렸던 상황입니다.
최욱일: 출항입항하는 것은 걱정이 없었습니다. 오징어 조업 중이었습니다. 그때 2,300급 실었습니다. 아주 만선은 아니지만 중간정도 됐습니다. 만선하면 5,000급 정도 되죠. 조그만 경비정이 돌고 먼 바다에서 큰 배가 움직였단 말입니다. 개인 배는 무기가 없잖습니까? 우리배가 움직이지 못하게 뱅뱅 돌았습니다. 그러면서 위협사격을 계속 했습니다.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고 너무 놀란 최 씨는 남측 해군에 구조요청을 할 정신도 없을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상합니다.
최욱일: 북한 경비정 군인 둘이 우리 배에 올랐습니다. 한명은 33명을 꼼짝 못하게 총으로 위협을 하고 한 명은 배의 키를 잡고요. 우리 배를 경비정에 연결해 끌고는 8시간을 갔습니다. 그러니 공해죠. 우리배 속도로 항구에서 직선거리로 6시간만 나가면 공해가 되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8시간을 갔으니.
잠시 조사를 하고 혐의가 풀리면 돌려보내준다고 한 것이 10개월. 원산항에 도착해 초대소에서 있으면서 사상교육을 받았고 결국 남한으로의 송환이 아닌 사회배치라는 통보를 받습니다.
최욱일: 우리가 시위를 했어요. 금방 보내 주다고 하더니 왜 10개월이 돼도 안 보내 주는가? 김일성의 지시가 떨어져야 하는데 사회배치라는 지시가 떨어진 겁니다. 함경북도 김책시의 풍년리 시골 농장에 배치가 됐어요. 그리고 시키는 일만 한거죠.
기자: 당시 나이가 몇 살이었습니까?
최욱일: 35살. 1975년 8월에 가서 76년에 배치됐으니 36살 이었습니다.
어부에서 갑자기 농부가 돼서 북한에 살게 된 겁니다. 이때부터는 엄청난 감시 속에서 말조심하면서 살아야 했다고 하는데요. 이런 북한에서의 아픔을 한국에 돌아서 정부 당국자들에게도 따졌지만 속 시원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최욱일: 당시 처음에 갈 때는 박정희 정권이었고 몇 년 있으니 박정희 암살되고 전두환 정권, 그다음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제가 탈출해 나올 때는 노무현 정권이 아닙니까? 남한 정부에서는 천왕호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와서 정부에 말도 많이 했습니다. 청와대도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천왕호 선원들이 북한에 억류돼 있다 송환을 시켜라 이전에는 몰라서 송환을 못시켰다고 하지만 이젠 알았는데 왜 송환을 못 시키는가 이렇게 따졌습니다.
33명 천왕호 선원 중 북한을 탈출해 남한으로 간 사람은 4명입니다. 최욱일를 포함해 고명섭, 윤종수, 이한섭인데요 나머지는 아직도 북한에 억류된 상태입니다.
최욱일: 제가 나올 적에 7명이 살아있었습니다. 바로 제 친구들입니다. 제가 스위스 제네바 유엔기구 가서 그 사람들 생사확인하고 송환해달라는 의견을 유엔기구에 가서 전한 일이 있습니다. 저도 여기 온지 8년이 됐는데 그 사람들이 아직 살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십자사를 통해 천왕호 배 선원 생존자들을 정부에서 빨리 송환해오라는 겁니다.
납북된 33명중 22명은 북한에서 아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2013년 3월 15일 제99차 유엔 강제적·비자발적 실종에 관한 실무그룹 만남에서 최욱일 씨가 증언해 기록됐습니다.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납북귀환어부 최욱일 씨의 증언을 통해 납북어부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