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증을 풀어 드립니다] 올해 4만2천km, 선배 전우의 유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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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궁금증을 풀어 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 국방부 유해 발굴 감식단이 11월25일 발굴 사업을 끝내고 내년도 사업을 준비합니다. 올해 발굴된 6.25전사자 유해는 총 1천300구가 넘습니다.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매년 3월 시작돼 땅이어는 동절기인 11월 말 당해연도 사업을 끝냅니다. 오늘은 최근까지 남한 전 지역의 산야를 유해발굴병사들과 종횡무진한 주경배 발굴과장을 전화로 연결해 발굴현장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기자: 2011년 유해발굴사업 종료 됐는데 실적을 말씀해 주십시오.

주경배 중령: 올해는 지난해와 달리 연초에 구제역과 기상악화로 전년대비 약 20여일 발굴 일정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선배 전우님을 한분이라도 더 모시겠다는 굳은 신념을 발휘한 그런 해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 결과 1,300여구 정도 전사자를 발굴했습니다. 국군 전사자는 약 1,309구 이중에 유엔군이 2구정도 적군이 79구정도 추정하고 있습니다. 최종 수는 정밀 감식을 해야 하지만 이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기자: 유해 발굴 목적이 6.25전사자 국군유해 찾는 것인데 적군의 유해가 나오면 어떻게 됩니까?

주경배 중령: (적군과 아군 유해의 판정은) 정밀감식 후에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저희는 일단 전사자 유해를 발굴하면 동일한 조건으로 약식 제례와 임시봉안 행사를 통해 정성을 다해 예를 갖추게 됩니다. 최종적으로 정밀 감식 이후 발굴된 유해가 적군으로 판명 되면 파주에 있는 적군묘지에 매장합니다.

기자: 약식 제례에 대해 보충설명 부탁합니다.

주경배 중령: 약식 제례는 개인이 제사를 모시는 것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일단 혼령이 60년간 떠돌아 다녔기 때문에 집에서 하는 것처럼 상을 준비하고 술을 한잔 따라서 호국 영령을 달래고 그렇게 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기자: 전국적으로 유해발굴이 매년 진행 되는데 발굴 팀은 전부 몇 명이고 어떻게 운영 되는지요

주경배 중령: 유해 발굴 팀은 총 8개 팀으로 구성돼 전국을 지원하는데 1개 팀이 상사 급 부 사관을 팀장으로 해서 발굴분야 전문 지식을 함양한 발굴 병 요원 7명으로 총 8명으로 구성됩니다. 8개 팀 중에 한 개 팀이 사단 단위 발굴하는 100명을 통제해 발굴하고 있습니다. 매일 발굴 부대 병력 800-1,000명의 인원이 투입돼 발굴에 임하고 있습니다.

기자: 매일 남한 전역에서 1천여 명의 병사가 유해 발굴 작업에 동원된다고 보면 됩니까?

주경배 중령: 저희는 작업이 아니라 문화재를 발굴하듯 모든 정성과 예를 갖춰 하기 때문에 작업이란 용어를 쓰지 않습니다.

기자: 용어를 바로 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반적으로 군인이라고 하면 전투병을 떠올립니다. 유해발굴단감식단에서 복무하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합니까?

주경배 중령: 전문 발굴 병들은 일단 4년제 대학에서 2년 이상 고고학, 인류학, 고고미술 사학 등 발굴분야 관련 전공학과 이수자 중에서 1차 서류심사를 거치고 2차 면접 평가를 통해 선발된 인원에 한해 복무가 가능합니다.

기자: 장교는 어떤가요?

주경배 중령: 현재까지 장교 및 부 사관은 자격 기준이 없습니다. 군 교류 대상자 중 복무를 희망하는 자원 중에서 별도 자체 심사를 거쳐서 유해 발굴 사업에 동참할 수 있는데 향후에는 장교 및 부 사관도 전문 발굴 병처럼 고고학 등 관련 전공학과 이수자나 또는 위탁교육 후에 보직될 전망입니다.

기자: 2011년 가장 기억에 남는 유해발굴은 어떤 곳인가요.

주경배 중령: 금년에도 발굴하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매일 산을 오르내리면서 점심은 본인들이 가지고 올라간 주먹밥이나 전투식량으로 해결합니다. 또 매일 동가식서가숙의 불규칙한 생활을 하면서도 우리 요원들은 항상 웃는 얼굴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발굴과장으로서 뿌듯한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발굴 장소는 강원도 철원 마현리의 735고지와 설악산 저항령 1400고지입니다. 그 이유가, 제대로 형체를 갖춘 유해는 없고 수없이 발굴되는 팔뼈, 다리뼈, 골반뼈 등의 한 조각을 통해 당시 치열했던 전투 상황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하나뿐인 목숨을 초개와 같이 바친 선배 전우님들의 모습이 떠올라 기억에 남습니다.

735고지에서는 유해 108구를 발굴 했습니다. 특이할만한 것은 개인화기 탄약 류가 7만 5천 여발, 박격포 탄이 500여발, 수류탄이 700여발이 발굴된 것을 볼 때 정말 치열한 전투지역임을 반증한다고 봅니다. 전투당시 수많은 포탄이 터져서 고지가 1미터가 낮아져서 실제는 734고지가 됐던 지역입니다.

두 번째는 설악산 저항령 입니다. 이곳은 백두대간을 관통하는 돌산입니다. 백담사에서 4시간을 걸어 올라가는 곳인데 이곳에서도 유해 53구를 바위와 돌 틈에서 발굴했습니다. 매일 06시 기상해서 식사를 마치고 06시30분 부대를 출발해 차량으로 30분 이동 후 백담사 입구에 07:00 도착합니다. 그리고 11:00 정상에 올라가 점심을 먹고는 오후 14시에서 15시까지 발굴하는 생활을 4주간 했습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전체가 돌산으로 돼있는데 돌 사이사이 공간에서 유해가 발견됐습니다. 물고기가 돌 사이에 숨어 있듯 유해가 그런 돌 사이에 박혀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뼛조각 일부를 찾고 심지어는 낮이지만 어두워서 후레쉬, 손전등을 켜서 돌 틈에 있는 유해를 발굴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기자: 60여년이 지났는데도 뼈가 부식이 안됐나요?

주경배 중령: 많이 부식이 되고 훼손이 됐는데 그래도 사람 손이 많이 안간 지역이라 그 유해 조각 일부는 남아 있었습니다. 또 장병들이 지친 모습 없이 진지한 모습으로 단 한 구의 선배 전우님을 찾아서 조국의 품으로 모신다는 일념 하나로 발굴한 곳이라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발굴과장은 올해 유해발굴을 위한 주행 거리는 4만 2천km로 산을 오른 높이를 보면 9만 미터, 하루 평균 600m를 오른 셈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는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에베레스트 산을 거의 10번을 등반한 셈이 됩니다.

‘궁금증을 풀어 드립니다.’ 오늘은 남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주경배 발굴과장에게 올해 6.25 전사자 유해발굴 상황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