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과 잉어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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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서로 소통할 수 없는 말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내가 하는 말을 상대가 알아듣지 못하거나 잘못 해석한다면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고 결국 아수라장이 되고 말겁니다. 북한에서 살다가 남한에 간 탈북민들은 남한 사람들이 쓰는 말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는데요. 가장 큰 이유는 남한말을 듣고는 알뜻말뜻 때로는 이상한 외국말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랍니다. 오늘은 서로 다른 남북한 언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많은 수의 탈북민은 일정기간 때로는 오랜 시간 중국에 살다가 남한에 갑니다. 그리고 하나원이란 사회교육시설에서 3개월 동안 남한사회와 자본주의에 대한 교육을 받고 지역사회에 편입됩니다. 그런데 그들이 당장 혼자가 됐을 때 경험하는 일은 언어에 대한 문제입니다.

탈북여성: 큰 것도 아닌데 사사롭게 …사실 건물에 모르는 간판이 있으면 조용히 앞에 가서 건물 안을 들여다 보면 되잖아요. 그런 것은 어렵지는 않았는데. 커피 라든가 음식 이름은 어렵더라고요. 지금도 식당가서 제대로 못 시켜 먹는데 굉장히 여러 종류가 음식들이 많다 보니까 그렇죠. 빵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잖아요. 그런면에서 힘든 것 같아요.

이 여성이 말한 것은 어찌보면 누구나 탈북민이면 경험하는 보편적 어려움 중 하나일 겁니다. 말은 분명 알아듣겠는데 정확히 그 단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실체를 알수 없다는 거죠. 북한에서 철도방송 방송원으로 일했던 정진화 씨입니다.

정진화: 사무실이 마포에 있었는데 거기 마포 갈매기살이란 식당이 있더라고요. 저는 한번도 신경을 못쓰다가 정작 들어갔는데 얼마나 갈매기를 잡아야 이렇게 파나 했는데 알고 보니까 진짜 갈매기가 아니고 돼지고기에 어떤 부위가 있나봐요…

마포는 지역의 이름이고 갈매기도 알겠고 살은 고기란 뜻인줄 짐작하겠는데 이 단어를 모두 합해 놓으니 엉뚱한 상상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정 씨가 말한 갈매기살은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날아다니는 새의 고기가 아닌 돼지고기의 특정부위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단어가 주는 특정한 어감이나 연상되는 모습 때문에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말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강유 씨는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을 경험했고 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에 그런 처참함을 떠올리게 되는 뼈다귀란 말에는 부정적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한의 간판을 보고는 놀랐습니다.

강유: 소고기 돼지고기 이런 고기로 육수를 내는 것이 아니고 갈비나 통찜 이런 음식이더라고. 할매 뼈다귀가 소갈비찜 돼지갈비찜 이런 육고기를 하는 것인데 할매 손맛이 좋아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하더라고. 간판은 조금 자극적으로 해야 사람들 눈에 들어오고 잊지 않는다면서 이름을 지었다고 했는데 이름이 이상하고 나는 잘 이해가 안된다고 했죠.

할머니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모습은 손자손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한없이 인자한 평화스런 긍정의 모습인데 못먹어 살이 하나도 붙어있지 않은 뼈다귀란 단어와 합쳐지니 강유 씨에게는 강한 부정의 말이 돼버린 겁니다. 그것도 식당의 간판이 할매 뼈다귀집이란 말은 할머니를 폄하하는 느낌을 준다고 느낀 겁니다.

짐작하건데 식당집 주인은 할머니가 손주를 생각하며 정성껏 우려낸 육수나 고기를 요리하는 곳이란 의미로 손님을 가족처럼 생각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식당이름을 지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개인의 경험과 자신이 속해 있던 사회적 배경이 한 단어의 뜻이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어의 속성이 중 하나가 역사성이 있죠. 즉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단어가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합니다. 이런 말은 같이 생활하고 사람들과 소통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습득이 되는 것이죠. 한 예를 들어볼까요?

정진화: 손님을 몇분 모신적이있었어요. 그러면 그분들이 빈손으로 안오잖아요. 손님중 한 분이 겨울이니까 거리에 붕어빵 파는 게 많은데 그걸 사오신 거예요. 저는 다른 붕어빵이 있다는 생각을 못하고 뿡어빵이네 했더니 드시는 분들이 아뇨 잉어빵이예요 이러는 거예요. 배에 하얗게 보이는 것은 잉어빵이고 까맣게 보이는 것은 붕어빵이예요. 이러는 거예요.

기자: 그러니까 팥이 들어가면 붕어빵이고 크림이 들어가면 잉어빵이군요

묽은 밀가루 반죽을 붕어 형태의 틀에 구워 중간에 붉은팥을 넣은 붕어빵은 추운 겨울 남한사람이 흔히 거리에서 사먹는 간식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좀 새로운 형태의 붕어빵 즉 잉어빵이 팔리고 있다는 말인데요. 이건 현재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인듯합니다.

또 다른 형태의 언어에 대한 오해는 잘못 해석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탈북자 노우주 씨입니다.

노우주: 그때는 가을이었는데 팔공산에서 큰도로 쪽으로 내려오다 보니까 거봉 판매합니다 이런 것이 있는거예요. 저는 양봉을 생각하고 큰 벌이 거봉인줄 알았어요. 양봉, 거봉 이렇게요.

보통 포도보다 두 배 정도 큰 알이 큰 포도인 거봉을 보고는 자기 나름대로 상상을 했던 겁니다.

노우주: 거봉 판매한다고 했는데 큰 벌도 팔아요? 이랬더니 친구가 우주 씨 뭘 보고 그러냐고 해서 내가 거봉 판매한다고 하잖아요. 큰 벌도 팔아요 했더니 죽겠다고 웃고 그러면서 왔어요.

여러 예에서 보여주듯 여러가지 이유에서 남한에 간 탈북자는 언어에 대해 익숙해질 때까지 신경을 쓸수밖에 없게 됩니다. 특히나 자신에게 익숙해져 있는 표현을 바꾸는 데는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정진화: 모임 있는 큰 회관이었어요. 자리가 비어있는거예요. 제가 자릴 찾아야 하니까 여기 자리가 비었습니까 이렇게 말을 해야 하는데 여기 사람이 없습니까? 이렇게 물어본 거예요. 옆에 계신분이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 거예요. 제가 듣기에도 어감이 이상한거예요. 자리가 비었습니까? 이렇게 해야하는데 잘못 물어본거죠. 그분이 저를 처다보면서 웃으시더라고요. 남한생활 벌써 15년이 됐는데 언어상에 들어보니까 그게 맞구나 이런 생각이 들때가 가끔있어요.

어찌보면 별거 아닌 듯하면서도 살아가면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말. 우린 흔히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거나, 사람이 하는 말이 어 다르고 아가 다르다는 말을 합니다. 정확한 언어 사용은 자신을 위해서도 꼭 습득해야 하는 일이란 생각을 합니다.

정진화: 시월이면 한국에 길가에 은행이 많고 떨어지는데 아이하고 같이 가다가 열매 많이 달렸다 하니까 아이가 하는 말이 엄마 열매는 열렸다고 하는 것이 맞는거야 이러는 거예요. 애들은 표준어를 배운다고 해야 하나요? 저도 북한에서 방송을 했으니까 실수를 크게 한적은 없었는데 그래도 가끔은 이렇게 사용하는 것이 맞구나 하고 생각하는 때가 있어요.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탈북민이 힘들어 하는 남한말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