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젊어서는 시간이 많아도 돈이 없어 못 놀고 중년이 되서는 경제적으로는 크게 부족함이 없는데 일하느라 시간이 없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노년이 되면 퇴직을 해서 예전에 비해 시간도 많고 돈도 있는데 건강이 안 따라 줍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핑게인데요. 한 탈북민은 환갑을 훨씬 넘겨 빈손으로 남한에 가서는 꿈을 이뤄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문영옥(가명)씨가 전하는 중국여행에 대한 경험담 들어봅니다.
문영옥: 좀 친하다. 전쟁 시기에 많은 지원군이 우리를 많이 지원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죠.
북한에 있을 때 중국하면 막연히 떠오르던 생각입니다. 북한에서는 비행기를 타고 외국 여행을 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죠. 하지만 마음속에 언젠가는 여러 나라를 직접 가보고 싶다는 꿈을 가졌던 문 여사. 지난해에는 캐나다와 미국의 수도 워싱턴을 방문했고 그 전 해에는 중국 여행을 합니다. 2007년 탈북해 남한으로 가서부터 꿈이 하나하나 현실이 된겁니다. 그러면서 이전에 가졌던 생각에도 변화가 왔는데요.
문영옥: 갔다 오니까 그런 것이 아니예요. 왜 그런가 하면 이번에 광개토대왕 기념비가 있는 곳을 가봤는데 400년이 넘는 기간을 통치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자기네 이름으로 유네스코에 등제했잖아요. 옛날에는 우리 땅이었는데 자기들 땅이라고 등제 하고 있더라고요. 그런 것을 봐서 중국이 북한을 이용해 먹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중국에서 태어나 어릴 때 아버지 손에 이끌려 북한으로 갔던 문 씨. 중국에 대해선 부모님에게 들은 기억만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로 남습니다.
문영옥: 전혀 변한 것이 없어요. 그때가 6월 정도였는데 옥수수 산에 심은 것이 파릇파릇하게 나와서 한뼘정도 되는데 이쪽 중국 땅의 옥수수는 내 허리 넘게 컸어요. 대비해 보니까 너무 안 좋더라고요.
기자: 중국 간 것이 북한선교를 위한 중국 교회 방문이었습니까?
문영옥: 네.
기자: 자기 돈 써서 간 관광여행은 아니네요?
문영옥: 자기 돈 썼지요.
기자: 자기 돈을 쓰면서까지 중국에 갔던 이유는 뭔가요?
문영옥: 내가 이젠 나이가 있으니까 내 고향을 보면서 그동안 얼마나 변했나 보려고 갔는데 북한은 전혀 변하지 않고 오히려 황폐화 된 것을 보고 지금 북한의 선교 사업이 중국 땅에서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가를 직접 보고 왔어요.
탈북 당시 건강이 안 좋았던 문 씨는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습니다. 남한에 가서 서서히 체력을 회복했고 병치료를 위한 수술도 받습니다. 게다가 나이도 환갑이 훨씬 지나서 세계여행에 대한 꿈이 이뤄졌는데요. 남한생활 중 벌써 가본 나라가 5섯 국가가 넘습니다. 무슨 돈으로 그렇게 여행을 다녔냐고요? 문 씨가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교회를 통해 선교여행을 갔던 겁니다. 여행 경비를 교회에서 대부분 부담하고 일부를 자신이 내는 겁니다. 선교여행이지만 일행은 그 나라에서 유명한 관광명소도 찾게 되는 데요. 바로 중국에서 장백산이라고 부르는 백두산을 가게 됩니다.
문영옥: 처음이죠. 북한에선 교통도 그렇고 조건이 주어지지 않으니까 못 가봤어요. 백두산은 중국 쪽에서 서파, 남파, 북파 이렇게 세곳으로 갈라져서 올라가는데 우리는 서파로 올라갔어요. 표를 끊고 올라가는데 하루 관광객이 5만명이랍니다. 돈으로 하면 한 10억 달라를 번다고 해요. 표를 사서 백두산 정상 밑까지 버스를 타고 1시간 갑니다. 65세 이상은 돈을 안 내고 여권만 보여주고 갔어요. 요금은 중국 돈으로 100원 넘게 내요. 해설원이 그러는데 백두산 올라가자면 계단이 1,442개라고 해서 안 믿었는데 실제 계단마다 글이 있으니까 1,442계단이란 것을 실감하게 됐어요.
평지도 아니고 백두산 정상을 향한 계단을 그것도 거동이 불편한 여성이 오른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정상에 올라야 천지연을 볼수 있으니 젖먹던 힘까지 모두 쓸 수밖에요.
문영옥: 일행이 내 양쪽에서 팔을 끼고 올라갔어요. 가서 백두산의 장관을 보려고 했는데 안개가 꽉 끼고 올라가면서 땀을 흘렸는데 추워서 안내원이 입은 솜동복을 누구 추운 사람 입으라고 해서 내가 얼른 입었어요. 안개 때문에 천지연은 못 보고 사진만 찍었는데 계단을 내려와서 휴게실에 있는데 또 비가 오더라고요. 날씨가 하루에도 몇번씩 변화해서 백두산 날씨를 가늠할 수가 없더라고요. 올라가면서 보니까 꽃이 피고 했는데 정상에는 눈보라가 치고 얼마나 추운지.
백두산 모습은 선택받은 사람만 볼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보기 힘듭니다. 어떤분은 3번이나 올랐지만 천지연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요. 문 여사가 정상에 오른 날도 구름이 잔뜩끼어 아쉬움을 달래야했습니다.
문영옥: 허무했어요. 그래서 너무 섭섭해서 내려오니까 그날 저녁에 너무 피곤하고 힘드니까 우리를 맛사지 하는 곳으로 데려 갔는데 거기 벽면에 크게 백두산 천지연 그림이 있어더라고 그래서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어요.
남한 인천공항에서 중국 동북부에 있는 심양공항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 40분 정도. 비행기가 이륙하고 정상 고도에 이르면 기내에서 음료수 한 잔 정도 마시고나면 목적지 도착입니다. 좀 더 중국 여행에 대한 문 여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죠.
문영옥: 북한 주민에게 전해주고 싶은 것이 떠나올 때는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심양으로 갔고 거기서 단동으로 오는데 고속도로 거리에 태양열 판을 가로등에 모두 했더라고요. 발전소에서 전기를 안 보내줘도 자체 발광하는 것을 보고 중국이 발전했구나 했죠. 븍한하고 대비해 보니까 신기했어요. 그리고 다음 날 단둥에서 배를 타고 신의주를 보는데 이쪽 단둥은 밤에도 대낮같이 밝은데 신의주는 불이 동상 근방에만 조금 있고 쥐 죽은 듯 조용해서 사람 사는 것같지 않았어요.
기자: 중국에서 6박 7일 있으면서 먹은 음식은 어땠습니까?
문영옥: 중국 음식은 대체로 음식이 입맛에 맞았어요. 단둥에서도 호텔에서 아침을 간단히 하고 배를 타고 삭주까지 수풍발전소 밑에까지 가서 봤는데 북한은 땅이 황폐화 되고 사람이 간간히 오고 가더라고요. 우리는 사진을 찍으면서 보는데 거기 사람들은 기운이 없이 한 두명 걸어가고, 가는 동안 차라는 것은 한대도 못 보고 말을 타고 가는 사람 한 명은 봤어요. 경비대가 산밑에 굴처럼 만들어놓고 집은 간혹 하나씩 있고 산에 뙤기밭을 만들어서 옥수수 심고, 나와서 강에서 빨래도 하고 그랬어요. 청수화학 공장도 옛날에는 비료가 나와서 함경북도 그 일대는 다 그 청수화학 비료를 썼는데 지금은 창문이 다 깨지고 굴뚝에서 연기가 하나도 안 나오고 공장이 다 죽은 것 같았어요.
기자: 중국 쪽에서 북한을 바로 본 것이죠.
문영옥: 네, 그렇죠. 중국 쪽은 기와도 빨간 기와 파란 기와로 올렸는데 북한은 컴컴한 것이 중국은 활기찬데 북한 땅은 조용하고 사람도 사는 것이 활기가 없고 자동차도 안 다니고. 중국은 활기찬데 북한 땅은 그렇지 않은 것을 보고 왔어요.
기자: 기분이 묘했을 것 같아요?
문영옥: 그럼요. 가슴이 찡하죠. 세계는 이렇게 발전해가고 이웃인 중국도 발전하는데 왜 북한에서는 보지 못하고 있는가 하는 슬픔이 가득했어요.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탈북민 문영옥(가명)씨가 전하는 중국여행에 대한 경험담을 전해드렸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문 여사의 몽골여행 편입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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