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토너 같은 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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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에 가서는 한의사 자격시험을 보게 해달라고 국회에 청원서를 냈고 법 개정이 이뤄지는 동안 한의과 대학을 다시 다녀 졸업한 탈북 동의사가 있습니다. 벌써 15년 세월이 흘렀는데요. 그는 그가 소망한 했던 대로 의료인의 길을 걸으면서 성공한 탈북자 대열에 우뚝 선 이가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사람은 대한여한의사회 김지은 홍보이사입니다.

김지은: 처음이고 한 명밖에 없고 전무후무하지 않을까 싶어요.

북한에서 동의사였지만 남한에서 의료인 국가자격증이 없어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갈 수 없었기에 탈북민 최초로 국정감사장에 참고인 자격으로 탈북민의 현실을 증언했던 김지은 씨. 세월이 흘러 한의원도 개업하고 현재 국제 라이온스 클럽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봉사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습니다. 김 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을 개업하던 당시를 이렇게 기억합니다.

김지은: 사람들이 다 놀랐고 지금 제가 생각해도 놀랍고요. 당시 제가 했던 생각은 북한 사회에서 시키던 일을 하던 사람이잖아요. 그러다보니까 이제 나는 누가 시키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가 첫번째였어요. 내것이 없었기 때문에 내것을 가지고 싶다가 첫번째고 두 번째로 내가 40대 초반에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때 내가 만약 월급 받고 일한다고 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저는 대학을 다니면서도 졸업하면 한의원을 개업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개업했죠. 당시 나는 오직 내 한의원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만 했었죠.

기자: 선배 한의사로서 어떤 절차를 밟아서 개원했는지 간단히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김지은: 어렵진 않은 것같아요. 개업을 하자면 돈을 마련하는 것이 첫번째인데 저는 은행을 찾아갔습니다. 제 계획이 있었습니다. 3년뒤 5년뒤 10년뒤 계획을 은행장을 만나 설명 했어요. 투자하라고 했죠. 여자분이었는데 상당히 내 얘기에 감명을 받으신 것같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했죠.

지난 2009년 6월 "진 한의원" 이름으로 시작한 한방병원을 5년간 운영하게 되죠. 그리고 2014년 서울에서 개업하자고 잠시 휴식기를 갖게 됩니다. 그러면서 방송 출연을 하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게 되는데요.

김지은: 사람들이 유명해졌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런 것은 있었어요. 주변사람들이 한국은 처음 일을 시작할 때 홍보를 해서 확 알려야 됩니다. 그런데 저는 강력히 반대를 했거든요. 왜냐하면 내가 홍보할만큼 내세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남북한 한의대를 나오긴 했지만요. 한국 환자들을 만나보지 못한 상태에서 이 사람들을 위해 뭘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준비가 안 됐었거든요. 북한에서 왔다는 것 하나로 홍보를 하면 환자를 속이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내가 준비 안된 상태에서 사람들이 홍보한 것만 보고 몰려오면 저에게 안 좋다고 생각했어요. 두 번째로 의료행위가 상업화 됐다는 것이 불쾌했어요. 의사는 의술을 환자에게 펼치고 환자와의 관계인데 광고를 하고 하는 것을 처음에 굉장히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어요. 그래서 홍보를 안 했었죠. 인터뷰를 일체 안 했습니다.

남한생활의 희로애락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북에 있는 아들과 남쪽에서의 상봉입니다. 김 씨는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아들을 한국으로 데려왔고 북한에 고등중학교를 졸업한 아들은 현재 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김지은 씨는 탈북민으로서가 아닌 남한에 사는 의료인 김지은으로 살고자 하지만 고향이 북한이라 본의 아니게 논란에 중심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기자: 탈북 의사로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많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김지은: 너무 많죠. 저는 의료인이기 때문에 삶의 중심은 병을 치료하는 의사로 나를 보죠. 그런데 북한 사람들이 아프다. 그 사람들이 못 먹고 굶어 죽는다. 이러면 생명이 다하니까 의료인으로 관심을 가져야하는 부분이예요. 그러면 제 입장에서는 쌀을 보내줍시다. 이러는 거예요. 그런데 쌀이 일반인에게 돌아가지 않고 군인에게 간다. 이런 부분이 걸리는 거죠. 그런데 의료인은 군인도 사람입니다. 먹여 살립시다.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거든요. 생명 앞에서는 같잖아요. 하지만 한국은 정치적으로 묘한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여기서 북한에 쌀 보냅시다. 저 사람들이 살아야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고요. 또 한편으로 보면 북한정부가 하는 짓을 보면 속이 부글부글 거릴 때가 굉장히 많잖아요.

지난 2002년부터 남한에 살기 시작했으니 이제 남한생활 15년이 됩니다. 가끔은 내가 다시 이런 인생을 살 수있을까? 정말 치열하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할법도 한데요.

김지은: 저는 내가 치열하게 살았다고는 생각을 안 해요. 사람들이 당신 열심히 살았으니까 성공한거야 이런 말을 하면 나만 열심히 살았나? 사실 탈북자들 속에 열심히 산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이 다 성공한 것은 아니잖아요. 다만 저는 조건이 좀 좋았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고 하지만 꾸준하게는 살았다고는 생각해요. 그냥 한발한발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았는데 10년이 지나니까 사람들이 성공에 반열에 푹 올려놨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누가 당신의 좌우명이 뭡니까 하면 저는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답합니다. 마라톤의 묘미는 인내, 끈기, 완주거든요. 마지막 주자에게 박수를 보내는 경기는 마라톤밖에 없거든요. 그 긴 과정을 포기하지 않고 완주했기 때문에 그 노고와 고통을 이겼다는 것에 관중이 박수를 쳐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인생도 같다고 봐요.

김 씨는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는 거죠. 하지만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고 지금 내가 할수 있는 것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것. 급하게 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게으름 부리지도 않고 매일매일 충실하게 살고자 한답니다. 그리고 이제 김 씨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미완으로 남겨 둡니다.

김지은: 우선 개인적으로 여행도 좋아하지만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까 앞으로 그림 전시회도 하고 싶고 그리고 사실 지나온 삶에 대해 글로 쓰라는 제의를 많이 받는데 아직은 연배가 안됐으니까 안 쓰고 있는데 언젠가는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정말 하고 싶은 것은 아들 이야기이긴 한데 아들이 가끔 뜻밖의 선물을 자주해요. 허그 하면서 목에 키스를 해준다든가 지나가면서 브로찌를 하나 사온다든가 이런 선물을 많이 하거든요. 저는 아들이 지금껏 내게 준 모든 선물들을 사진 찍고 정리해서 아들과 관련된 책을 내고 싶어요. 아들이 선물을 주면서 했던 말과 표정들을 모아서요. 이것이 제가 하고 싶은 일 중 하나예요.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대한여한의사회 김지은 홍보이사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