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실체] 김정은 신년사를 통해 본 북한의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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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9년 만에 지도자의 '신년사'를 공개했습니다. 북한에서 '신년사'란 수령이 년 중 단 한번 주민 앞에 공개하는 육성교시란 뜻입니다. 신격화 국가여서 새해 북한 각 분야에 하달되는 수령의 명령, 법적 교시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김일성 생전까지 수령주의 국가에서 수령전통으로 이어져왔습니다. 김일성 사후 김정일은 육성신년사 대신 북한의 각 계층 대변지인 '노동신문', '조선인민군', '청년전위'의 공동사설로 신년사를 대체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수령의 한 부분처럼 돼 버린 신년사여서 김정일 지침과 같은 수준에서 공동사설을 절대화했습니다. 때문에 1995년부터 북한은 당 생활총화 때 당원들이 김일성, 김정일 지침과 함께 공동사설을 먼저 인용하고 거기에 근거한 자기반성을 하도록 했습니다.

이번에 김정은이 직접 신년사를 낭독한 것은 아버지 김정일보다 할아버지 김일성과 연계되고 싶은 권력심리가 더 컸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김정일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을 김정은 자신도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놀랍게도 신년사 첫 문구를 '친애하는 동지들!'로 시작했습니다. 북한에서 '친애'란 단어는 김정일에게만 해당되는 독점 용어였습니다. "경애하는 김일성", "친애하는 김정일"로 이름 앞의 존칭을 차별화했었는데 이러한 김정일의 신격화 독점용어를 2013년 신년사를 계기로 아예 동지들에게 줘버린 것입니다. 이는 크게 두 가지 목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친애하는 지도자"가 더는 없는 유일권력의 "경애하는 김정은"만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 둘째는 세습지도자와 동지들과의 관계에 '친애'를 호소하기 위해서입니다. 올해 신년사에는 전에 없던 새로운 단어들도 있습니다. "백두산대국",이란 표현을 사용했고, 그 연장선에서 북한군을 "백두산 혁명강군"이라고 표현한 점입니다. 이것 역시 김일성의 혁명 전통 뿌리를 백두산이라고 주장하는 김일성주의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또한 김정일 정권이 그동안 주장해왔던 "강성대국"에서 "강성국가"로 축소 수정한 점도 눈에 띄는 대목입니다. 김정일이 주장하던 강성 대국의 본질은 이념의 강국, 군사의 강국에 기초한 자립경제의 강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세계 최빈국이 대국을 말하는 것 자체가 북한 주민들에겐 조롱거리였습니다. 또 이 같은 불신이 김정일 정권의 정책에 대한 평가로까지 이어지자 김정은 정권은 "김정일의 강성대국"을 "김정은의 강성국가", 즉 강한국가로 재 정립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강성국가" 연장선에서 "사회주의 강성국가", "천하제일강국" 이란 부속 개념을 추가하여 "대국"을 지워버린데 대한 보완을 했습니다. 이러한 희망국가 개념의 재정립은 정책에 대한 새로운 표현에서도 드러납니다. 김정은의 신년사에서는 놀랍게도 "정확한 영도"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김 씨일가의 신격화를 최우선하는 북한에서 "영도"는 곧 "위대"와 동의어입니다. 이런 세습국가에서 당의 영도를 "정확한 영도"로 격하한 것은 사실상 대단한 언어 혁명입니다. 김정은 정권의 당 운영을 "정확한 영도"로 공론화한 것을 보면 김정일 정권의 국정 실패에 대한 주민불만을 심각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김정은의 신년사는 크게 두 개 단락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2012년의 한해 평가와, 2013년 새해 과업입니다. 2012 평가는 주로 김정일의 사망과 그것을 계기로 더욱 단결 된 체제안정을 과시했고, 장거리로켓 실험 성공을 부각시켰습니다. 신년사의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새해 과업입니다. 신년사는 전통적으로 5개 부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첫째는 새해 국가정서의 설정입니다. 유일한 체제이념으로 긴 세월을 버텨야 하는 북한 정권은 국가정서의 다양화로 주민 세뇌와 내부 결속을 유도합니다. 새해 국가정서 설정은 반드시 국가기념일과 연계시킵니다. 왜냐하면 새해 가장 큰 국가 행사에 정치적 초점을 맞춰 주민동원과 사상 평가를 강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정은 신년사에서 규정한 올해 국가기념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65돌"과 "조국해방전쟁승리 60돌"입니다. 이는 공화국창건 초심으로 3대세습 정권의 안착과 그것을 위한 6.25전쟁 전시 분위기를 이용하겠다는 의도입니다.

둘째는 경제분야입니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우주를 정복한 그 정신, 그 기백으로 경제강국 건설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가자!' 이것이 올해에 우리 당과 인민이 들고 나가야 할 투쟁구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새해에도 개혁이 아닌 돌파정신의 자립경제 노선을 추진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대목입니다. 그 결의는 곳곳에 있습니다. "올해 모든 경제사업은 이미 마련된 자립적 민족경제의 토대를 더욱 튼튼히 하고 잘 활용하여 생산을 적극 늘이며 인민생활을 안정향상시키기 위한 투쟁으로 일관되어야 합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자립적 민족 경제보다 더 쇄국적인 단어는 "인민생활을 안정향상"이라고 한 것입니다. 현재의 경제정책 안에서 부흥보다 안정을 선택한 것입니다. 김정은의 개혁반대 의지는 "우리는 우리식 사회주의경제 제도를 확고히 고수하고 근로인민 대중이 생산활동에서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도록 하는 원칙에서 경제관리 방법을 끊임없이 개선하고 완성"이라고 아예 명시하기까지 했습니다.

셋째는 군사분야입니다. 김일성의 "일당백" 구호 제시 50돌이 되는 올해를 강조함으로서 "백두산훈련"에 토대한 군의 기강과 보완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조선인민 내무군의 존재를 강조함으로서 내부결속과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넷째는 사회분야인데 기이하게도 사회주의 문명강국 건설을 주장했습니다. 이는 김정은 정권의 새로운 문명을 개척 하겠다는 뜻으로서 사회 분위기를 3대 세습의 현대화에 맞게 변화시키겠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다섯째는 "일군들의 사상 관점과 사업기풍, 일본새를 근본적으로 개선하여야 한다."는 권력 환경과 질서에 대한 요구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당과 인민 앞에 자기의 충실성과 실천력을 평가받아야 합니다."고 유별나게 강조한 점입니다. 새해 또 다시 권력 재편성을 위한 간부숙청이 예고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여섯째는 대남 대외 부분입니다. 대남분야에서는 6.15, 10.4선언을 전제로 하는 민족우선, 민족중시, 민족단합의 3대 조건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발표한 신뢰조건의 대북정책에 대한 대답으로서 북한의 대남정책인 "우리민족끼리전략"을 남북 공조 원칙으로 요구하는 것입니다. 대외정책은 단순히 자주, 평화, 친선의 이념밑에 누구와도 손을 잡을 수 있다는 형식 외교로 마무리했습니다.

김정은 신년사를 종합 평가한다면 첫째로 권력 자신감이 보이는 구체적 정책이 없습니다. 김정일의 권력 자신감은 대내 정책보다 주로 대외 정책에서 표출됩니다. 대남 정책같은 경우 대화 상대의 차별화나 공개적인 명시, 또는 "우리 민족끼리전략" 안에서의 단계적 요구도 보였습니다. 대외 정책도 미국에 대한 그 어떤 조건 제안이라던가. 북 핵을 지렛대로 하는 협상 과정의 요구를 들이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김정은은 자랑거리인 장거리로켓 실험 성공을 대내문제로만 제한시키고 대남대외 정책에서는 소심하게 상징적 주장에만 머물렀습니다. 정책의 공백은 권력의 공백을 의미합니다. 대내정책은 구체적인 반면 대외정책은 아무것도 제안하지 못한 점, 이것은 김정은정권이 여전히 대외관계를 주도할 정도의 합의 권력이 충분히 못하다는 반증입니다. 둘째로 2013년의 북한에는 경제개혁이 없습니다. 모란봉악단의 공연이 공개됐을 때 음악과 조명을 두고 외부세계는 북한의 개혁조짐을 조심스럽게 점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신년사에서 언급한 김정은식 사회주의 문명을 과시하는 정도였지 개혁 정책과는 무관합니다. 김정은 정권이 정말 개혁 의도를 갖고 있다면 이번 신년사에서 우선 중국과의 혈맹관계를 강조해야 하는데 그것이 전혀 없습니다. 또한 신년사 곳곳에 드러나는 자립경제 노선의 강조는 북한이 국가 부흥보다 3대세습 권력 안정을 위한 쇄국 정치를 더 강화하겠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셋째로 김정은에게 2013년은 권력 과도기의 해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신년사 첫 머리에서 김정은은 간부들을 "친애하는 동지들!", 군과 주민은 "영용한 인민군 장병들과 사랑하는 온 나라 전체 인민들!" 해외동포는 "그리운 동포형제 여러분!"으로 분류했습니다. 김정일은 명령지도체제여서 자기 외 친애하는 인물이 없었는데 김정은은 일단 권력층 간부들을 친애하는 상대로 불러줬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년사 안에 내포돼 있는 강경한 권력의지의 표현들입니다. 간부들이 자신들의 실력을 당과 인민 앞에 평가 받아야 한다고 한 점, 조선인민 내무군의 활동을 강조한 것, 그 외에도 개혁 정책과 대외 정책의 변화는 없이 모든 논리가 내부 결속으로 집중된 것입니다. 여기에 전쟁승리 60돌, 공화국창건 65돌과 같은 전시, 건국 정신까지 가세하기 때문에 피의 숙청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