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8월에 평양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떤 젊은이가 김정일 아들을 사칭하면서 대외보험총국 외화를 빼간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국가보위부는 다른 범죄도 아니고 대담하게 김정일 아들을 사칭했던 범죄여서 내부적으로 조용히 수사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수사방법을 고심하는 동안 벌써 입소문이 평양시에 퍼져버렸습니다. 하여 국가보위부는 은밀한 방법보다 엄격한 경고와 강력한 응징을 과시하는 차원에서 공개수사를 벌였습니다. 사건내막을 보고받은 김정일도 감히 자기 이름을 도용한 자에 대해 분기를 참지 못했습니다. 범인을 잡지 못하면 국가보위부 간부들부터 전부 옷을 벗어야 한다고 호통 쳤다고 합니다.
그 사건 과정은 이러했습니다. 대외보험총국 당위원회 앞으로 사전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장군님 서기 실인데 1시간 후 장군님의 아드님께서 대외보험 총국으로 갈 것이니 당위원회 책임비서는 비상대기 하시오. 누구에게도 비밀을 발설 하지 말고, 당 책임비서 혼자만 알고, 마중하도록 하시오." 그 전화를 받은 대외보험총국 당 책임비서는 비밀보안이라는 말에 신뢰가 컸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김정일 현지시찰 대상선정이나 방문과정에 가장 강조되는 것이 보안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시간 후 당 책임비서는 정문에 나가 기다리고 있었고, 정말로 그 시간에 대형 벤츠가 들어섰습니다. 대외 보험총국 당 책임비서가 허리를 숙이며 허겁지겁 마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젊은이가 타고 온 차 번호 때문이었습니다. 북한은 중앙당 부부장 이상 급 간부 차 번호 들은 모두 김정일 생일을 뜻하는 2.16으로 시작됩니다.
훗날 국가보위부 조사에서 드러난데 의하면 범죄에 이용된 중앙당 간부 차는 젊은이가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위해 중앙당 간부 운전 기사를 매수한 것이었습니다. 기관에 등록된 북한의 모든 운전기사들은 여가시간에 차를 이용해 돈을 벌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국가가 차 부속품과 기름을 공급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자체로 충당하기 위해서라고 말입니다. 중간급 이하 간부 운전기사들 같은 경우 그런 명분으로 공무차를 개인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 뒷돈을 챙깁니다. 그러나 중앙당 간부차 운전 기사들은 전적으로 배급과 월급에만 의존해서 살아야 하는 형편입니다. 차만 명품이지 다른 간부차 운전기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생활을 하는 그들이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을 노려 젊은이는 어느 정부청사 앞에 서있던 중앙당 간부 차에 접근하였습니다. 그리고 미화 10달러를 주겠으니 어디까지만 태워달라고 부탁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타고 온 중앙당 차 번호 앞에서 당 책임비서는 허리를 깊이 숙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당 책임 비서가 김정일 아들이라고 믿었던 또 다른 근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젊은이가 비만 체형을 가졌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북한에선 "살이자 인격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민들은 깡마르고, 간부들은 뚱뚱해서 아이들은 간부친척 자랑을 할 때 "우리 친척 중에 배 나온 사람이 있다."고 말을 합니다. 중앙당 차를 타고 온 뚱뚱한 젊은이, 김정일의 아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의 근거가 충분했던 것입니다. 대외보험총국 책임비서가 속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도 관련됩니다. 2002년부터 북한에선 후계 절차의 첫 단계라고 볼 수 있는 후계자 어머니, 즉 김정일의 부인 신격화가 시작됩니다. 김정일이 유방암을 앓고 있는 처에 대한 연민으로 간부들 앞에서 자주 고영희 이야기를 꺼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후계 암시로 잘 못 판단한 당 선전선동부장 겸 비서 정하철이 북한의 핵심계층인 당과 군에서부터 고영희 우상화를 시작하도록 했습니다. "조선의 어머니", "발걸음" 노래도 이 시기에 나온 노래들입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김정일은 대노하여 정하철을 처형하도록 했습니다. 아직까지 그의 명예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봐선 당시의 후계자 대상이 김정은은 아니었던가 봅니다.
그로부터 4년 후 김정일이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 졌고, 그 계기로 김정은의 후계공식화가 급속히 이루어졌습니다. 아무튼 2002년 당시는 고영희 우상화가 본격화 되던 시점이어서 대외보험총국 당 책임비서는 김정일 아들의 등장에 황송하기만 했었던 것입니다. 당 책임비서 사무실로 들어간 젊은이는 보안을 강조하며 다른 사람을 방에 들이지 말라고 한 다음, "장군님을 모시고 대외보험총국을 방문하려고 한다. 그래서 점검차원에서 나왔으니 모실 준비가 돼 있냐?"고 물었고, 당 책임비서는 영광이라며 감격했습니다. 개별단독의 대화 과정에 젊은이는 장군님을 모시는 준비 차원에서 고가의 물품들을 보내주겠으니 일단 외화 2만 달러를 가져오라고 했고, 그 돈을 갖고 당 책임비서의 충성심을 격려한 다음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대외보험총국 당 책임비서는 그 사건으로 바로 다음날 해임 됐습니다. 젊은이가 은행도 아닌 대외보험총국을 사기대상으로 선정한 것은 대외보험총국의 외화보유 한도가 그 어느 기관보다 클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대외보험총국은 북한의 배들을 외국해상선박보험회사에 들게 한 다음 일부러 수장시키는 방법으로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였었습니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중국 심양에 호텔도 짓고, 북한 내에서도 온갖 이권사업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대외보험총국은 김정일의 금고인 당38호실의 주요 외화원천기지로 돼 있습니다. 국가보위부가 기관, 동, 인민 반들에 전국수배사진을 돌리고 나서 한 달 후 범인이 체포 됐습니다. 잡고 보니 평양조명기구공장 청년동맹위원장이었습니다. 달러번호를 추적한다는 소문 때문에 2만 달러 중 한 달러도 쓰지 못한 채 붙잡힌 것입니다. 그 사건은 많은 의미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인식하고 있는 김 씨 일가가 더는 신이 아니라는 것을 고발한 셈입니다. 다시 말해서 초상화만 봐도 눈물 나는 감격의 대상이 아니라 범죄의 등장 인물로, 사기 가치로 활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김정일의 이름만 말해도 벌벌 떠는 북한 권력층의 눈 먼 충성심도 폭로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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