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실체] 김정은 3대 세습, 어떻게 볼 것인가?

0:00 / 0:00

북한이 김일성 생일 100돌인 4월 15일 분위기용으로 광명성 3호라는 것을 쏘아 올리겠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북한의 유일한 우방국인 중국마저도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는 것은 물론 국제사회가 모두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 지구 땅에서 가장 최빈국인 북한이 우주점령의 명분을 운운한다는 것이 가당치도 않거니와 김정은 정권이 주민들의 식량문제에 너무 무책임하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지난 2월 29일 북한은 미국과의 양자회담에서 북미합의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북한은 핵개발 프로그램을 일시 중단하고 국제원자력기구(lAEA)사찰단을 받는 대신, 미국은 북한에 영양강화 제와 옥수수 24만 톤을 지원하는 것이 합의의 핵심입니다. 일각에선 이런 반전을 두고 군 강경파의 득세, 북한의 상투적인 뒤집기 수법 등의 각각의 해석을 내놓는데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군 강경파 반발과 같은 조직 장악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 과도기의 정책 공백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김정일은 생존 시 체제유지를 위해 미국과의 양자회담이 필요했는데 그가 사망한 후 김정은 정권은 체제유지보다 체제결속이 더 절박하여 로켓 발사와 같은 강경 전략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하는 여러 정황들이 있습니다.

한국 정부 고위관료는 2.29합의에 대해 "형식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이번 북미대화 재개는 진공 상태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12월 하순 전후까지 쌓인 기초 위에서 이뤄지는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외국 언론들도 '지난해 12월 북한이 일부 비핵화 사전조치를 이행하고 그 대가로 미국이 24만t의 영양제 지원을 제공하는 등의 6자 회담 재개를 위한 비핵화 사전조치와 관련해 큰 틀의 합의에 이미 도달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결국 2.29 북미합의는 미국이 김정일의 급작스런 사망과 장례기간이라는 북한의 특수상황을 이해하며 기다렸다가 이루어낸 합의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2.29합의가 나올 때까지도 김정은 정권 안에서는 대외정책을 결심하고 주도할 권력주체가 없었다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다급한 내부 문제에만 집중했을 뿐, 김정일의 지시로 추진됐던 외교정책은 권력공백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외무성의 사안으로 그냥 방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김정은 정권이 마침내 김일성 생일 100돌에 맞춰 정책 합의점들을 모색하게 됐고, 체제결속의 과시를 3월 16일 로켓 시험 발사 선언으로 결정한 것 같습니다. 사실 김정일 사후 김정은 정권의 정책공백 현상은 여러 번 감지됐습니다.

그 대표적 사례가 김정일 사망 후 한국 정부가 비상경계령을 내렸을 때 북한은 김일성 사망 때처럼 준 전시태세로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 점입니다. 이는 권력안정이 완벽하지 못한 시점에서 전군을 동원하여 준 전시태세로 돌입할 경우 자칫 외부의 위협요인이 증가되면서 체제불안을 가증시킬 것이라는 불안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여 북한은 김정일 사망 3달 후인 지난 3월 1일에야 서해에서의 한미연합훈련 대응 명분을 찾아내어 비상경계태세를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군법으로 강요한 200만 전국청년들의 복대소동을 대외에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목적은 대외적 요인보다 김정일 사망 애도기간과 김일성 생일준비와 맞물려 전민을 상대로 벌이는 충성검증 광기를 위해서였습니다. 그러한 내부 분위기를 보다 체제안정 자신감으로 과시하기 위해서는 장거리 로켓 발사라는 대외적 충격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김정일 때에는 체제 자신감의 근거를 외부에서 조작하여 안으로 끌어들였지만 김정은 정권은 거꾸로 내부가 더 우선이고, 그것을 외부에 보여주는 식입니다. 이 같은 정책방향의 주된 원인은 북한의 전통적인 유일지도체제 권위가 김정은에게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북한은 김정은을 상징적 지도자로 내세운 핵심 집단 지도체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정이 김정일과 같은 유일지도체제 권력을 가지자면 세 가지 필수요소가 준비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완벽한 신격화와 그 증거들이며, 두 번째는 권력 숙청을 통해 얻은 공포질서, 세 번째는 자기가 직접 임명한 측근 및 충성 주도세력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3대 지도자라 할지라도 그 모든 것들은 김정은이 직접 이루어내지 않고서 선언식으로만 획득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노동신문이 김정은의 비준을 공개했는데 이는 그가 현실정치를 경험하기 전에 궁중정치의 틀에 묶였다는 것을 반증한 셈입니다. 즉 김정일 측근들에게 둘러싸여 중대 차한 대내외 모든 결정을 그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형편이 된 것입니다. 김정일 정권에서의 비준정치는 유일지도체제의 핵심이었습니다. 북한의 간부들은 모든 책임을 김정일의 비준으로 떠넘겼고 그러한 권력층의 자발적 권력포기가 안정된 유일지도체제를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의 비준정치는 다릅니다. 대외적으로만 지도자의 비준일 뿐, 실제 그 결심주체는 정권운영 경험이 많은 김정일의 최 측근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김일성의 당 총 비서 권력과 측근들을 무력화시키고 김정일 당 조직비서 유일 지도체제를 만든 풍부한 경험자들입니다. 또한 피의 숙청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억척스런 사람들입니다.아마도 그들의 섭정정치는 자기들의 지위와 권력이 보호되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당 대표자 회의에서도 김정은 정권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젊은 권력층 몇 명을 임명할 뿐, 근본적인 큰 권력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김정일 장례식 때 영구차 호위간부 명단에서 2번째로 김정은의 뒤를 이었던 장성택에게 힘이 더 실리는 방향으로 권력 분담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현재 북한 대내외정책을 결심하는 핵심 권력 집단에 가장 필요한 것은 과거의 재현입니다. 국내는 물론 외부세계가 김정일 정권 연장선에서 김정은 정권을 보고 인식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김정은 정권이 안정을 찾을 때까지 시간을 벌자는 의도만이 아닙니다. 김정일의 최 측근들은 자신들의 변화는 곧 그 어떤 형태로든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에 김정은을 김정일 역사의 한 부분으로 철저하게 구속시키려는 것입니다. 누구보다 권력의 속성을 잘 아는 김정일은 김정은에게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김경희에게 당 정치국 비서 직함을 주던 그 날 아마 이런 말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혈육 외 누구도 믿을 사람이 없다."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