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실체] 북한 정권이 주장하는 유훈 통치의 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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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김정일 정권은 유훈 통치를 선언했습니다. 첫째는 김정일의 계승정치였고, 두 번째는 주민들의 식 의 주 문제 해결에 관한 김일성의 유훈 교시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김정일의 계승 정치 부분은 사실상 형식적인 것입니다. 이를테면 주민들의 식,의,주 문제를 해결하자면 정권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 최빈국인 북한을 어떻게 부유한 나라로 만들지에 대한 정권의 구체적인 고민과 실현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김정일은 정권계승만 유훈으로 관철했고, 주민들의 식,의,주에 관한 김일성의 유훈 교시는 아예 백지화시켰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선전하는 김일성의 소원이란 사실 초라하기 그지없는 것이었습니다. 남북한만 비교해 봐도 현재 남한 국민에겐 먹고 입는 문제가 더는 삶의 고민이나 목표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살찌는 것이 불행이고 젊은이들 같은 경우 일부러 찢어진 옷을 입는 것이 유행입니다. 이런 지구촌에서 "조선의 신"이라는 김일성은 인민들에게 이밥에 돼지고기 국을 먹이는 것을 평생 소원했고, 결국 그 소원을 품은 채 운명하고 말았습니다.

김 씨 일가를 위한 소원은 3대 세습까지 실현하면서도 주민들을 위한 소원은 소원으로 남겨둔 채 말입니다. 하여 주민들은 현재 이밥에 돼지고기 국이 아니라 최소한의 배급 식량마저 위협당하는 형편이 됐습니다. 김정일은 세습정치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김일성의 유훈 통치를 정면에 내걸고 김일성 사망 후 17년간의 통치를 해왔습니다. 김일성의 유훈은 공화국법을 초월하는 지위에 올려놓고 전국에 충성경쟁을 강요한 김정일 정권은 17년이란 긴 세월을 주민들의 식,의,주 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보다 3대 세습을 위한 자기 권력기반을 강화하는데 총력을 다 했습니다.

우선 선군 정치로 군 계엄통치를 선언하는 것과 동시에 의무 병역 제를 실현했습니다. 김정일은 선군 정치 이유를 조국이 있어야 인민도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사실 자기 개인의 안정이 있고 나서야 주민 안정도 있다는 말입니다. 사실 그 어느 나라도 최빈국인 북한을 위협적인 상대로 의식하지 않습니다. 북한 정권이 자국 주민들의 인권이나 행복지수를 높이도록 정치를 할 것을 요구할 뿐이며 그것을 위반하는데 대해 몹시 우려하고 경고하는 정도입니다. 유일한 동맹국이라는 중국마저도 김정일의 폐쇄적 정치방식에 계속적으로 불만을 표시해왔습니다. 중국 동북3성의 한 지방신문은 김정일이 생존 마지막으로 식량구걸을 위해 방중했을 때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신문은 후진타오가 중국은 13억도 먹여 살리는데 왜 북한은 고작 2천만도 굶기냐며 김정일의 면전에서 비난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렇듯 김정일은 김일성 사후 17년 동안 이밥에 돼지 고기 국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정권안정을 위한 핵개발로 국제적 고립을 자처해왔습니다. 두 번의 핵실험과 광명성 1,2호 미사일발사비용에 들인 돈으로 식량만 사왔어도 북한 주민들이 2년 동안이나 먹고 남을 쌀을 장만할 수 있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김일성 사후 전국에 세워진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 3대 위인상 사적비 건설에 들인 엄청난 국가재정, 측근정치, 선물정치를 위해 외국에서 수입한 고가 사치품비용으로 인민경제에 필요한 공장들을 짓고 설비들을 사왔어도 주민들이 그 덕을 조금이라도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김정일은 주민들의 지지에 의한 정권안정이 아니라 정권안정의 힘으로 주민충성 강요정치를 해왔습니다. 김일성의 유훈을 배신한 김정일의 정치행태는 그 뿐이 아닙니다. 김일성은 김정일에게 늘 빨치산 동지들의 명예와 지위보장을 부탁했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은 아버지와의 권력 갈등과 대립이 완전히 종식되던 해인 1994년부터 2000년 까지 6년 사이에 북한 정권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대규모적인 피의 숙청을 단행했습니다. 그 대상의 핵심인물들은 과거 김일성에게 충성해왔던 빨치산 동지들이나 자녀들이었습니다. 미국이나 한국 간첩 색출 명목으로 북한 내 6.25경력자들을 모두 조사 심의한 과거 인민보안 성 "심화조"에 의해 김정일의 눈 밖에 났던 북한 내 고령의 간부들과 그 일가족 2만 여명이 일괄적으로 실종 처형되었습니다. 지금도 북한 주민들의 기억 속에는 "심화조"가 공포의 대명사로 인식 돼 있을 것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김일성의 유훈을 신조처럼 내세운 김정일의 17년간의 정치는 위선이었고 기만이었으며 본질적으로 배신이었습니다. 오늘도 김일성에 이어 김정일의 유훈 통치를 강조하며 3대 세습 막을 올린 김정은 정권은 그 첫 시범이 미사일 발사였습니다. 이는 김 씨 일가의 대를 이어 계속되는 세습통치 속에는 인민생활과 관련한 결단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증거이며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라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결국 북한 정권은 유훈 통치로 김일성, 김정일은 영생한다고 하지만 세습정치가 가져다 줄 주민들의 고통이 언젠가는 분노로 일어서게 될 날이 꼭 오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