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북한 주민들이 아니라 김정은 정권에, 그리고 통전부 전직 직원으로서 현직 직원들에게 이 방송을 보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김정은이 나이가 어려 아직 세상을 너무 모르는 것 같고, 또한 그의 지도를 받는 대남방송 전문가들인 통전부 직원들이 꼭 참고해야 할 사안이 있어 알려 주고 싶은 간절함 때문입니다.
제가 통전부에 배치 받아 처음 글을 썼을 때였습니다. 통전부 간부들은 글의 내용은 좋은데 현지화가 안 됐다며 원고를 되돌린 일이 있었습니다. 현지화가 안됐다는 것은 남한 사람이 쓴 글처럼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주체문학의 이론적 테두리 안에서만 글 쓰도록 교육을 받았고, 보다는 북한 체제가 남한이나 국제 사회와 너무 동떨어져있는 현실의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저 뿐 아니라 통전부 101연락소 5국 19부의 6명 동료들도 고민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 19부 직원들이 사무실에서 "평양 밖에 모르는 우리에게 남한 사람처럼 생각하고 글을 쓰라는 것은 언어도단이다,"면서 상부의 현지화방침을 비꼬았던 기억이 납니다. 하여 통전부 직원들은 대체로 현지화 해결방법을 남한용어 사용으로 대체했습니다. 이를테면 "대중"을 "민중"으로 "분계선"을 "금단의 선", "전국"을 "경향각지" 등 남한만의 용어들로 말입니다. 그러나 단 하나 절대 허용될 수 없는 금지어가 있었습니다. 남북한을 "이남", "이북"으로 표현해야지 남한 국민들이 말하는 대로 "북한", "남한"이라고 쓰면 남한을 합법적 국가인 대한민국으로 인정하고, 북한을 그 속국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통전부에서는 엄격하게 통제해 왔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용어선택의 현지화 부분이 아닙니다. 글의 논리전개와 표현의 현지화를 요구하고 싶은 것입니다.
최근 북한은 이명박 대통령을 동물에 비유하며 원색적인 비난을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북한의 공개 매체들은 물론 심지어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된 몇 만 명 규모의 평양시민 군중대회에서까지 그런 구호들과 표현들이 노골적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역시나 20대 김정은의 지도를 받기 때문인지 김일성, 김정일에 비해 너무 철없어진 북한을 보는 듯싶습니다. 북한은 위대한 3대 계승이라고 하는데 대를 이어 한심해지는 3대 세습이 눈에 막 보일 정도입니다. 저는 최근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TV총국, 조선중앙통신사의 주장들을 보면서 대남 논리를 만들어내는 통전부의 수준도 많이 떨어졌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김정은 정권의 요구가 수준이하여서 통전부 직원들도 현지화를 고려할 새 없이 허둥지둥 쫓기는 모습이 보이는 듯싶습니다.
제가 평양에 있을 때 같은 부서의 어느 동료가 "차라리 서울로 유학을 보내주지..."라고 말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은 대한민국 국민이 된 사람의 경험으로 통전부 직원들에게 직업적 조언을 해주고 싶습니다. 우선 대남비방에 관한 것 들입니다. 사실 통전부의 주요업무는 대남비방의 전략화와 기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남한에 와서 보니 증오에도 증오의 방법이 있습니다. 개인은 원색적 비난을 할 수 있지만 정권은 정권이기 때문에 표현 하나하나에도 심각해야 합니다. 공개매체일 수록 가볍게 지적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경고가 되도록 절제되고 심사숙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남한을 향해 입만 열었다고 하면 남한의 초등학생들도 입에 담기 어려울 상스러운 표현들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존엄은 언론의 존엄인데 그런 상식조차 없는 위정자들의 실태를 스스로 고발하면서 까지도 말입니다. 통전부는 최고의 폭언들을 동원할수록 남한 국민들이 두려워한다고 오산하는데 정 반대입니다. 오히려 계속 그런 식의 정권운영의 모습을 보이면 초라해지다 못해 나중엔 김정은의 선택이란 자해 공갈 밖에 안 남게 됩니다. 정말 협박이 되자면 무력의 방법밖에 없다는 강박관념에 스스로 빠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돌아오는 것은 국제봉쇄와 압박이어서 3대세습의 수명도 그만큼 단축됩니다.
또 다른 역효과도 있습니다. 통전부는 자신들의 언론에서 일단 공격 대상을 선정해주면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들이 합세 할 것으로 믿고 그 연합전선의 폭과 깊이를 강조하기 위해 표현의 수위를 높이는데요, 만 사람이 납득할 수 있는 충분한 논리와 근거로 주장해야지 그렇게 일방적 목적만 드러내고, 거기에 표현까지 저질스러우면 도리어 도와주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명분만 위축시키는 꼴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남한의 대북 인터넷 신문인, 뉴 포커스에서는 북한 노동신문이나 우리민족 끼리 기사들을 원문 그대로 올립니다. 왜냐하면 그 소재처럼 북한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대북 메시지가 더는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반북심리전을 한국 정부가 아니라 북한 정권 스스로가 자행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또한 남한 내 친북공감대와 영역을 확대하는데 앞장서야 할 통전부가 반북정서를 전파시키는 주역이 되는 셈입니다. 더구나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분단국 안에서 북한의 언어폭탄들은 선한 사회와 악한 사회의 명백한 대조를 보여주는 산 증거물로 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조언이 김정은정권의 입장에선 또 다른 비방으로 밖에 비쳐지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수령신격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북한은 왕조세습 독재정권을 비정상적으로 보고 있는 국제사회에 대한 증오를 표출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념이나 체제의 문제를 넘어 이성과 상식조차 통하지 않는 폐쇄정권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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