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세계는 주민들에게 군대식 전체주의를 강요한다는 이유로 북한을 병영 식 사회라고 합니다. 그러나 탈북자의 시각에서 본 북한의 극악한 병영식 구조는 다른데 있습니다. 바로 동 인민 반 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의 동인민반제도는 주민들의 동생활 편의보다 감시에 더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고난의 행군이후 기관이탈 세력이 늘어나면서 직장을 통한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오히려 동 인민반제도를 더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주민통제를 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북한의 동인민반제도는 크게 두 가지 즉, 인민반장과 세대주 반장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인민반장은 해당 동에 거주하는 전체 주민들의 감시자 역할을 하고 세대주 반장은 남편들만을 별도로 관리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방은 덜하지만 평양시 같은 경우 세대주 반장제도가 굉장히 활성화 돼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지역과 달리 평양은 중앙기관들이 밀집 돼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소유를 불법으로 규정한 북한에서는 아파트도 법적 원칙에서 볼 때 엄연히 국가소유로 돼 있습니다. 개별적으로 아파트를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기관별로 실적과 충성평가 형태의 우대 공급을 하는 관계로 평양시 같은 경우 많은 주민들이 기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런 거주 환경에 맞는 통제를 위해 1970년대 중반 김일성은 세대주 반장 제도를 강화하라는 지시를 내리게 됩니다. 그 발단이 중앙당 간부가 퇴근 후 술을 먹고 소란을 피워 문제가 됐기 때문입니다. 김일성은 간부들은 출근해서만 간부가 아니라 퇴근해서도 간부의 품위를 지켜야 한다며 직장생활 연장선에서 동인민반 안에도 남편들의 생활을 별도로 감독 관리하는 세대주 반장제도를 내오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중앙당 아파트에만 적용했던 세대주반장제도를 김정일이 당 조직비서가 된 후 전국으로 확대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인민반장은 해당 동에 거주한 전체 주민들을 상대하지만 세대주 반장은 남편들만을 상대로 인민반회의, 인민반동원, 인민반강연을 주최합니다. 거주의 자유가 없는 북한에서 모든 주민들은 인민반생활에 구속될 수밖에 없는데 이는 결국 정권에 의해 퇴근 후 일상의 통제까지 강요당하는 셈입니다. 인민반장이나 세대주반장의 권한은 단순히 위의 지시를 전달하는 인민반회의 소집권한이 결코 아닙니다. 북한의 행정체계는 시, 구역, 동으로 나누어지는데 그 매 단계마다에는 세 개의 감시기관 소속원들이 존재합니다. 당위원회, 국가보위부, 인민보안부 주재원들입니다. 그들은 주간 단위로 담당 거주자들 내 이상 동향을 파악하여 윗선에 보고를 하게 되는데 만약 인민반장과 세대주반장과 관계가 안 좋을 경우 온갖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북한의 당 간부문건에는 간부등용 대상의 거주 지역 인민반장과 세대주 반장으로부터 사상동향, 가족생활, 심지어는 성격문제에 이르기까지 평가하고 사인하는 절차가 있습니다. 아무리 충성심이 인정되고 재능이 뛰어나도 동 인민반장과 세대주 반장이 동 인민반생활을 근거로 시비를 걸면 낙오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김정일은 당 간부과 직원들에게 “간부 후보자의 충성심도 중요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이면의 모습을 아는 것이 더 정확하다며 거주 인민반의 평가부분을 많이 참고하도록 지시를 주었습니다. 거주자들에 대한 인민반장과 세대주반장의 평가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민반회의는 물론 사회건설이나 군중행사, 각종 명목의 지원을 요구하는 인민반동원에 어느 세대, 어느 남편이 잘 참가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또한 가정혁명화 원칙에 맞게 살고 있는지, 아파트 경비를 통해 퇴근시간을 정확히 지키는지, 자기 월급의 형평성에 맞는 적절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집에 손님이 많이 찾아오는지 등 다양한 감시 결과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인민반장은 동사무소에서 임명하는데 주로 충성심과 신분이 좋은 집안의 여성 중에서 선택됩니다. 세대주 반장은 남자들을 상대하는 위치이기 때문에 품위문제를 고려하여 지위가 좀 있는 사람으로 임명됩니다. 중앙당 간부들이 모여 사는 평양시 중구역 창광동 같은 경우 인민반장 권한이 막강합니다. 외부인의 출입제한으로부터 중앙당 간부들이 몇 시 출근하고 퇴근하는지 기록하여 일일보고로 중앙당 담당 창광보안소에 보고하게 돼 있습니다.
그러한 감시가 가능한 것은 북한의 모든 아파트들에는 출입할 수 있는 현관이 단 하나 뿐입니다. 이런 관계로 중앙당이나 국가보위부와 같은 특수기관들을 제외한 다른 기관 사람들은 기관아파트를 기피하고 있습니다. 가족으로의 진정한 퇴근을 위해서인 것입니다. 또한 시장이 확대되면서 조직연대감보다 개인연대감을 더 중시하게 된 사회 환경의 변화로 인민반장들과 주민들과의 사적 결탁관계가 많이 이루어집니다. 심지어는 담당 거주자들과의 친분을 이용하여 이익을 챙기려는 동 보위원이나 보안원, 당일꾼들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렇듯 시장의 영향은 북한 정권이 가장 중시하는 말단감시체계까지 위협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김정일이 생존해 있을 때 화폐개혁까지 단행하며 시장을 통제하려 했던 이유는 북한의 전통적인 명령과 복종의 구조가 수요와 공급의 시장질서에 점령당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는 정권의 통치에 시장이 간섭하면서 사회질서와 윤리, 가치관마저 흔드는 결과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