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북한을 김씨 종교국가라고 합니다.실제로 북한이 정상적 사회주의 국가였다면 공산동구권 붕괴 때 함께 이성의 새 시대를 맞았을 것입니다. 또 최소한 북한의 국호처럼 정말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었다면 제한된 민주적 결정으로나마 중국처럼 개혁개방의 길을 조심스럽게 선택했을지도 모릅니다. 북한은 단순히 일인 장기독재 국가도 아닙니다. 그랬다면 최근 중동에서 분 민주화 바람이 리비아 가다피의 철통 통치를 끝장낸 것처럼 민중봉기도 가능했을 것입니다. 북한 정권이 이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3대까지 세습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은 물리적 독재 때문만이 아니다. 바로 세뇌의 독재, 개인의 절대적 우상을 전제로 하는 종교적 통치 때문입니다. 물론 북한 같은 나라를 종교국가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비유가 아닙니다. 모든 종교에 대한 모독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류역사에 개인을 위해 전체가 희생하라는 극악한 종교는 그 어디에도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선과 악을 정확히 구별하고 이해시키는 차원에서 북한과 기독교를 비교 설명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북한의 “예수님”은 김일성입니다. 그래서 북한에선 김일성을 “민족의 태양”이라고 합니다. 김일성이 출생한 14월 15일도 “태양절”이라고 합니다. 북한 정권은 그 날을 조선의 시원으로 정하고, 그때부터 계산되는 세상에 없는 주체 년 호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는 북한의 “예수님”인 김일성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북한의 세월은 물론, 주민들 2천만도 결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엄청난 폭언인 셈입니다.
둘째로 북한의 “성경책”은 김일성, 김정일의 혁명 역사 책들입니다. 북한이 자랑하는 무료 교육은 사실 김씨 신격화를 위한 강제교육입니다. 유치원 때에는 김일성, 김정일의 어린 시절, 인민학교(초등학교) 때에는 김일성, 김정일의 학생시절, 이렇게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 김정일의 혁명역사와 함께 성장합니다. 그 혁명 성경 책에서는 김일성, 김정일을 북한 모든 주민들의 생명도 구원해주는 구세주라고 합니다. 그 생명이란 바로 정치적 생명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생명체로서 육체적 생명 외 정치적 생명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의 “혁명성경책”에는 김일성, 김정일에 의해 숙청된 수많은 육체적 생명들의 비극은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셋째로 북한의 “교회”는 김일성, 김정일 혁명역사연구실들입니다. 이를테면 신격화 교회들인 셈입니다. 언제나 열려있는 그 연구실들에선 개인의 생각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수령교시 학습”, “혁명역사 따라 배우기 운동”, “충성의 선서” “맹세모임” 온통 김일성, 김정일 생각뿐이어야 합니다.
넷째로 북한의 “찬송가”는 김 부자 찬양가요들입니다. 북한의 TV는 방송개시음악을 “김일성 장군의 노래”로 시작하여 방송마감 노래는 “김정일 장군의 노래”로 끝납니다. 선서를 하거나 각종 행사 시작과 끝도 마찬가집니다. 민족의 장군이란 김 씨밖에 없는 북한이어서 주민들에게 자나 깨나 그 감사와 충성으로 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다섯째로 북한의 “목사”는 북한의 “혁명성경”을 설교하는 당비서들입니다. 그들은 매 주마다 김일성, 김정일의 지침을 전달하며 강연회, 교시학습 등 온갖 정치적 세뇌를 담당합니다. 그래서 당비서는 당원들의 모범이 되어야 하고, 누구보다 겸손해야 하고, 누구보다 충실해야 하며, 누구보다 인간적이어야 한다고 당간부 인사원칙에 밝혀 있습니다.
여섯째로 북한의 “참회”는 생활총화입니다. 김일성의 교시, 김정일의 지침을 먼저 인용한 뒤 그 기준에 맞게 생활했는지 잘 잘못을 따지는 형태입니다. 노예의 복종정신을 심어주기 위해 어려서부터 자아반성을 습관화 생활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생활총화에서는 자신의 죄만 고백하지 않습니다. 남들도 무조건 비판하도록 합니다. 이렇듯 북한이 강요하는 참회는 개인들을 산산이 분열시켜 수령주의로 결집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일곱째로 북한의 “헌금”은 당비입니다. 월급을 줄 때 아예 공제되기 때문에 자발적이지도 않습니다. 스스로 바쳐야 될 헌금은 따로 있습니다. 충성의 외화벌이, 선군 지원, 사회지원 등 각종 명목으로 헌금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빼앗기는 것을 당에서는 기쁘게 생각하라고 합니다. 그것도 수령을 위해, 조국을 위해 사는 삶의 양심이라며 말입니다.
여덟째로 북한의 “십계명”은 당의 유일사상체계 10대원칙입니다. 그 십계명의 요구대로라면 아예 인간으로 살기를 포기해야 합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령을 위해 살아야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죽은 목숨인 것입니다. 때문에 당원이라면 그 10대원칙을 자자 구구 외워야 합니다. 그것이 입당심의 조건이자 곧 삶의 심의 조건으로도 됩니다. 아홉 번째로 북한의 “아멘”은 만세입니다. 반드시 수령께 바치는 맹세의 끝은 만세의 합창으로 끝나야 합니다. 홀로 부르는 만세는 비장하고, 결의 충만해야 하지만 정작 수령을 만날 때 부르는 만세에는 눈물이 질퍽하게 섞여야 합니다. 김일성, 김정일은 그렇듯 전체주의 만세 위에서 사는 살아있는 신입니다.
한편 북한의 만세는 공평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위로만 향해야 하는 인민의 몫이지 수령이 인민만세를 부르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열 번째로 북한의 “십자가”는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입니다, 그 초상화들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가정마다, 사무실들마다, 교실마다, 복도에도, 정문에도, 거리에도, 심지어는 가슴팍에도 달아야 합니다. 북한 주민들이 항상 수령을 의식하며 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평시에는 그 초상화 밑에서 양심을 닦아야 하고, 명절이면 그 초상화를 쳐다보며 만세를 불러야 합니다, 성경의 예수님은 만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도 바쳤지만 김 부자는 죽어서도 만인이 자기만을 사랑하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지만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은 사랑의 독점을 위해 자기를 반대하는 모든 원수들을 끝없이 증오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북한에는 정치범수용소가 있고 그 증오의 한을 풀기 위해 3대까지 멸족시키는 악법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성경의 십자가를 외국 영화에서라도 보신 적 있습니까? 북한의 신이라는 김일성, 김정일은 죽어서도 ‘태양의 미소’를 만족하게 짓고 있지만 성경의 예수님은 인간들을 위해 삶도 죽음도 비참하게 바치신 그대로 십자가에 매달린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