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실체] 김정은의 스킨십정치에서 본 북한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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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 노동신문이 신격화 만들기 차원에서 김정은 현지시찰 소식을 잇달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부분이 있습니다. 과거 김일성, 김정일 정권에 비해 김정은의 스킨십 장면이 눈이 띄게 늘어난 것입니다. 스킨십이란 한국어의 뜻으로 본다면 피부의 상호접촉에 의한 애정 교류입니다. 주로 연인들 사이에 손을 잡거나 포옹으로 애정을 나누는 것인데요. 김정은이 현지시찰 때 주민들과 스스럼없이 손을 잡고, 포옹하는 유연한 정치행태의 변화를 감지한 한국 언론들이 이런 점을 김정은의 스킨십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아무튼 신격화 정치로 매우 권위적이었던 김일성, 김정일과 달리 주민들에게 먼저 다가서려는 젊은 김정은의 행동은 매우 신선해 보였습니다. 북한은 일인지배 체제이기 때문에 지도자의 작은 변화가 상당한 파장을 줍니다. 또, 지도자로부터 북한의 모든 변화가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정은의 스킨십은 많은 의미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의 절대적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해 일반인들과의 스킨십 장면을 잘 노출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지도자의 인간성을 부풀리는 차원에서 김일성, 김정일이 주민들의 손을 만지거나 안아주는 장면을 연출하긴 했지만 지금의 김정은처럼 반복해서 보여주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김 부자의 신적 존재를 유지하면서도 단 한 번의 스킨십만으로도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실제로 김일성, 김정일의 존재는 북한의 절대개념으로 신격화되어 있어 굳이 스킨십 없이 가까이 만나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주민사랑을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김 부자를 가까이 만났던 사람들을 북한에서는 접견자라고 합니다. 접견 자는 김일성, 김정일과 20분 이상 단독대화를 하거나 함께 자리를 같이 했던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북한 정권은 신격화 연장선에서 접견 자들에게 공민 특혜 권을 부여하고 있는데요, 당 조직부가 특별 관리하는 것은 물론 접견 자들 같은 경우 현행범으로 범죄증거가 확실해도 김일성, 김정일에게 비준을 받아야만 사법처리 할 수 있습니다. 접견 자들은 당 간부 등용과 표창에서 반드시 먼저 혜택을 받도록 돼 있으며 해마다 전국 충성 계층에게만 보내는 김 부자 명의로 된 선물 명단에도 제일 앞자리에 이름이 놓이게 됩니다. 접견자란 새로운 이름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특혜와 특권이 될 수 있도록 완벽한 충성 위계 질서를 만들어 놓은 북한, 그래서 김 부자가 가까이 만나주는 것만으로도 김지덕지해야만 했던 북한 주민들이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지도자와 주민과의 분리는 경호 목적도 있었습니다. 때문에 김일성, 김정일이 먼저 손을 내밀기 전에는 누구도 감히 접근할 수 없도록 경호군관들이 사전에 접견원칙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악수를 청할 때를 대비하여 먼저 손 소독을 하는 것도 일종의 접견 절차 중 하나입니다.

제가 북한에서 근무할 때 김정일이 불러 강원도 원산 갈마 초대소로 갔던 적이 있습니다. 김정일이 접견 실에 나오기 전에 경호원들이 작은 봉투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뜯어보니 일제 알코올 약솜이 들어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손을 일일이 닦아야 했고, 실제 알코올 솜으로 닦았는지 경호원들은 냄새까지 맡았습니다.

이후 경호원들은 또 다른 접견 원칙으로 김정일과 마주서서 이야기 할 때 절대 마주보지 말고 김정일의 두 번째 윗 단추에 시선을 두어야 한다는 요구까지 받았었습니다. 그처럼 김정일은 시각적 평등도 허용치 않는 절대 군주였습니다. 누구도 감히 쳐다볼 수도,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는 존재, 그런 신이 바로 김일성, 김정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신격화 국가였던 북한에서 김정은이 스킨십 정치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것은 그만큼 북한 정권 스스로가 신격화 공백을 심각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김정은에게 스킨십마저 없다면 업적도, 인간성도 조작할 근거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가 인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지도자라면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가능했었는데 이제는 몸으로까지 강조해야 할 판국이 된 것입니다. 단지 그 뿐이 아니라 북한 사회의 변화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이끌려가는 거룩한 지도자가 아니라, 지도자가 일부러 주민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의식할 만큼 상황이 반전된 것입니다.

김정은의 스킨십, 이는 결코 젊은 지도자의 새로운 행동의 리더십이 아닙니다. 북한 권력층이나 주민들의 3대 세습 피로감에 충성을 호소하는 김정은의 신격화 구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