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국법 위에 김정일의 지침이 있는 개인주의 국가입니다. 그가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곧 법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개인의 한계를 개인의 만능으로 조작하고 또 그것을 명령으로 강요한다는데 있습니다. 그 많은 사례들 중 오늘은 일명 "김정일의 양어장 사랑"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2000년 북한의 전국 곳곳에선 양어장 건설이 진행됐습니다. 김정일이 양어장을 만들라고 지시한 것입니다.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이 밥에 고깃국을 먹이겠다던 김일성의 소원 대신 아마 김정일은 이 밥에 열대메기국은 보장할 수 있다고 장담한 모양입니다.
그러자 전국 시, 군 단위들에 20~30ha의 양어장이 건설되기 시작됐는데 실제 당시 노동당 선전선동 부는 주민들의 식탁에 밥은 없어도 열대메기 반찬만은 가득 채워줄 것처럼 선전했습니다. 하여 "열대메기를 길러 군인들과 인민들에게 공급하여야 한다"라는 김정일의 지침을 걸어놓고 전국에서 양어장 건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열대 메기는 섭씨 25도에서 5개월만 키워도 무게가 1.5kg이나 됩니다. 하지만 함북 이상의 북쪽 지역들에서는 한 여름에도 25도의 수온을 유지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더구나 여름에 석 달만 키워서는 열대메기가 제대로 자랄 수도 없습니다. 주민들은 실패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양어장에 대한 지식이 없던 김정일의 짧은 혀에서 나온 한마디가 곧 전국의 노동 동원으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물고기라도 물만 먹고 자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열대메기에게 주는 사료까지 훔쳐갈 정도로 굉장히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먹이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하자 김정일은 다시 이런 지시를 내리게 됩니다. "양어장에 생활오수를 넣어주라."고 말입니다. 생활 오수로 인해 플랑크톤이 번식하며 물고기가 먹을 수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대부분 주민들의 변은 거름으로 쓰였고, 구정물은 돼지에게 줘야 했으므로 생활 오수가 생길 조건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김정일은 곧 다른 지침을 내리게 됩니다. "양어장에 등을 켜놓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전국에 양어장을 만들고 사료부족으로 생활 오수도 넣어주라고 했지만, 그래도 먹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자연을 이용하여 먹이 문제를 해결해 보라며 등을 켜놓으라고 한 것입니다. 전등불을 보고 날아오는 날벌레, 나비 등을 물고기가 잡아먹을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였습니다. 자력갱생 구호를 내붙인 양어장이어서 어느새 열대메기도 자체로 사냥까지 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 것입니다.
김정일의 지시로 전국 양어장들에는 불빛이 생겼지만 워낙 전기가 없는 나라여서 기름등잔불이 고작이었다. 그것도 훔쳐가는 손들이 많아 유명무실해지자 김정일은 마치 자연에 도전이라도 하듯 이번엔 양어장 주변에 버드나무를 심으라고 지시하게 됩니다. 양어장의 그늘이 수온을 유지시켜주고, 풍경이 좋아지며, 나무에 꼬이는 벌레를 열대메기가 먹을 수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장군님의 위대한 은덕"으로 마침내 북한의 열대메기들은 밤 사냥의 고난에서 벗어나 그늘과 먹이의 혜택을 받는 듯싶었습니다. 실제로 산이란 산은 다 벌거벗었는데 양어장 나무심기가 전국적으로 벌어졌습니다. 그렇듯 년 중 계속되는 김정일의 열정적인 열대메기 사랑으로 봄에 시작했던 전국 양어장 건설과 관리는 결국 겨울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김정일은 열대메기를 겨울메기로 착각했는지 나중엔 수면에 덮인 얼음을 깨 산소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고 말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그때 전국 양어장들에는 이미 열대메기가 거의 없는 정도였습니다. 아무리 "장군님의 신임을 받는 열대메기"들이라 할지라도 도저히 살 수 없는 환경조건 때문이었습니다. 주민들은 당연히 어이없는 지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김정일의 입 밖으로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겨울 내내 양어장에서 얼음을 깨야만 했습니다. 어떤 지역에선 "말씀관철"을 한다며 열대메기 대신 붕어를 풀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런 실정도 알지 못한 채 김정일은 어느 날 간부들에게 이렇게 물어봅니다. "어떻습니까? 인민들이 좋아합니까?" 북한TV를 보면 김정일이 열대메기가 진열된 상점을 둘러보며 호탕하게 웃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주민들이 좋아하는가 묻기도 했다는데 당시 주민들은 "우리는 열대메기가 아니라 매일 선전하는 방송메기만을 먹어볼 수 있었다"고 비웃었습니다. 전국 직장들과 학교들, 마을들마다 만들어진 양어장들에선 물이 썩는 냄새가 진동하면서 열대메기가 아니라 모기와 파리만 날리게 됐는데 그 양어장의 모습이 곧 김정일의 짧은 혀가 만든 오늘의 북한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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