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실체] 김정은의 현지지도는 주민들의 현지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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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김정일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3대 세습 이후,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에는 김정은의 현지지도에 관한 내용이 많이 실리고 있습니다. 또한 '조선중앙TV'에서도 3대 세습의 주인공인 김정은에게 환호하는 주민들의 열띤 모습들을 매일같이 방영하고 있습니다. 젊은 지도자여서 현지시찰이 많아진 데도 있지만 부족한 신격화 근거들을 메우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하나하나의 장면들에선 3대 세습 지도자를 만나는 주민들의 환호와 감격만 전달하고 있는데요.

그러나 사실 북한 주민들에겐 김정은의 현지지도가 현지부담으로 되고 있습니다. 전례는 김일성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과거 김일성이 함경남도 오매 리를 현지 지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후에 국가 정책에 따라 오매 리를 가로지르는 직선도로를 내야 했지만, 단지 '김일성이 지도한 신성한 장소'라는 이유만으로 우회도로를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하여 지역 주민들은 가까운 길을 눈앞에 두고도 먼 길을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주민들에게 '사적지 보호'는 불만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정일은 마치 김일성과 경쟁이라도 하듯이 자신이 다녀간 모든 곳을 혁명사적지나 기념물로 만들었습니다. 일례로 북한 함북도 산 길에서 김정일이 타고 있던 자동차가 갑자기 고장 나서 운전수가 수리를 하기 위해 잠시 갓길에 정차한 적이 있었습니다. 후에 그곳에 굉장히 큰 푯말이 세워졌는데 어이없게도 거기에는 '차를 멈추신 곳'이라고 표기되게 되었습니다. 이에 끝나지 않고 푯말의 주변에는 더 이상 개발이나, 도로 보수 등과 같은 작업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단지 차를 세웠다는 이유만으로 '기념의 성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북한 황해북도 신흥 동에 있는 닭 공장은 사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30년이 넘게 방치되어 있으면서도 김정일이 다녀갔다는 상징성 때문에 농지로 바꾸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비옥한 땅이 있음에도 개간을 하지 못해 주민들이 식량난으로 굶어 죽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가끔 농촌 현지시찰 과정에 농민의 집에 들르면 그 집 주인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습니다. 자기 집이고 자기 재물인데도 모든 것이 김정일의 기념물이 되어 뭐 하나 마음대로 건들 수도 없습니다. 보위 부 직원들이 때때로 감시를 와서 변한 게 없는지, 손상된 것은 없는지 검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수령"이 나무 그늘에서 좀 쉬어가면 '만져보신 나무'라고 해서 기념물이 되고, 잠깐 앉았다가 일어서기만 해도 '앉아보신 의자'라는 이름을 붙이며 손상 되지 않게 보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시 부러지거나, 위치가 바뀌었을 경우 '최고 존엄 모독'이라는 죄명으로 3대멸족도 마다하지 않는 북한 체제입니다. 이런 기괴한 현상들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정은이 역설적으로 현지지도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주민들의 불만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북한에는 3대 세습을 거치는 동안 수많은 기념물들이 생겼고, 혁명사적지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영광의 기념비들을 많이 보유하기 위해 각 기관장들은 자기 단위에 김정은이 현지지도를 오면 지도자의 눈과 손끝에 모든 정신이 집중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민들은 다른 눈으로 볼 것입니다. 이를테면 '제발 이것만은 만지지 말아라.' '우리가 또 고생하며 사적비를 세워야 할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김정은이 들르고 만지는 순간 신격화 유적이 되고 유물이 되어 주민들을 괴롭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희한한 3대 세습만큼이나 희한한 전통과 기적으로 가득 찬 북한입니다. 북한이 체제를 바꾸지 않는 한 시간이 지날수록 김정은의 현지지도는 계속될 것이며 더불어 주민의 현지부담도 더 커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