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실체] 김정일 사후 북한의 엄청난 변화는 노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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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사후 북한의 가장 큰 변화는 사실 김정은의 주민들과 가까이 하는 스킨십정치나 부인 리설주 공개가 아닙니다. 탈북자의 시각에서 본 북한의 엄청난 변화는 노동신문이었습니다. 바로 최영림 총리의 "현지료해"소식이 노동신문에 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라 최영림이 어디를 갈 때마다 계속적으로 소개하는 북한 선전선동의 위반이었습니다.

북한은 일인지배체제 국가입니다. 아니 단순히 일인지배가 아니라 아예 김 씨 신격화 국가여서 김씨의 행적 외 그 어떤 다른 간부의 현장 소식은 일절 전할 수 없는 것이 당 선전선동 원칙입니다. 그런데 김정일 사후 북한은 김정은의 "현지시찰"과 함께 "현지료해"라는 차별화 된 용어로 최영림 내각총리의 현장 방문 소식을 연일 소개했습니다.

그와 관련하여 얼마 전 뉴포커스의 통신원으로부터 흥미 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최영림 내각총리 현지료해 소식이 노동신문에 소개되는 이유는 김정일 사후 당 경공업부장이며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인 김경희의 지위와 권력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최영림이 김경희 경제권력을 대행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최영림은 현장의 문제점들을 즉석에서 김경희에게 "직보"(직접 보고)하고, 김경희 지시에 의한 후속대책들로 보완하는 등 최영림 내각총리의 "현지료해"는 마치 과거 김정일의 현지교시처럼 절대적인 성격을 가지게 됐다고 합니다. 또한 그의 행보를 강조하기라도 하듯 북한 노동 신문은 최영림 내각총리의 "현지료해" 상황을 거의 매일같이 1면에서 다루었는데, 이는 과거 김정일 현지시찰 소식만 실을 수 있던 노동신문의 유일체제 선전선동 원칙을 완전히 깨버린 것이어서 충성경쟁으로 이의를 제기했다가 해임된 선전 부 간부들도 있다고 합니다. 최영림 총리가 전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군이 현재 보유한 북한 내 주요 탄광들에 대한 독점 율을 낮추어야 한다고 현장에서 공개적으로 발언 했는데 총 참모부가 이를 강력히 문제 삼자 김경희가 노발대발했다는 소문도 있다고 합니다. 김정은이 군부대를 방문하여 태양광발전기나 풍력발전기를 이용한 자체 전력생산을 강조한 것도 그 사건 이후의 현지시찰 지침이라는 것입니다.

이 같은 경제지도를 두고 일부 남한 언론들은 김정은이 곧 개혁개방을 할 것이라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북한 정권도 얼마 전 개혁개방은 남한의 흡수 통일 야망을 드러낸 불순한 의도라고 공식적으로 비난한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이 인민경제 향상 명목으로 경제를 총괄하는 내각을 갑자기 부각시키는 저의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김경희의 섭정정치를 위한 합법적 발판을 만들려는 것입니다.

그 동안 김경희는 당 경공업부 부장이었지만 김정일의 유일지도체제 존엄을 위해 공개 활동이 일체 금지돼 왔었습니다. 더구나 김경희 자신도 아버지 김일성 권력을 무력화시킨 오빠의 정치적 야심을 너무도 잘 알고 있어 차라리 무시하는 쪽이 더 편하다고 여겨 조용히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20대 조카인 김정은 시대에 와서까지 더는 곁가지로 몰릴 수 없고, 그보다는 그 동안 자기들을 곁가지로 견제하고 멸시했던 기존의 김정일 최 측근들에게 조카의 운명을 맡길 수도 없는 것입니다.

"여자가 빌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김경희는 필시 김정일의 유훈과 조카를 위해, 그리고 주체 조선의 운명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치마권력이라도 들고 일어서야 한다는 심각한 자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자면 우선 김정일의 누이동생이라는 신격화 연줄만이 아니라 합법적 권력명분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을 공론화하기 위해서는 분명 자기의 권력을 대행 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김경희는 내각의 권위가 필요했고, 당장 아무 실권이 없는 최영림 총리의 어깨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해 당 선전선동 부 유일지도체제 원칙을 깨면서까지 노동신문의 '현지료해' 선전까지 강행했던 것입니다. 한편 장성택의 살벌한 견공들인 인민보안부와 내무군을 내세워 이른바 내각의 인민경제 지도를 방해하는 군부와 같은 기존권력조직들의 전횡을 감시하거나 처벌하는 물리적 권력도 보태주었던 것입니다. 리영호 총 참모장의 숙청은 아마도 김경희 권력에 도전하려는 그 어떤 고위 간부나 세력에 대한 첫 경고 겸 시범으로 보여준 무자비한 복수였을 것입니다.

얼마 전 파이낸셜 타임스는 "김정은은 북한 주민들에게 자신이 김일성 판박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을 버리고 할아버지 김일성을 택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노동신문도 김일성을 흉내 내는 김정은의 스킨십정치나 런닝 차림의 개방성을 많이 부각시켰습니다. 변한 지도자의 모습, 이는 왕조정권인 북한에서 그 어떤 총포성 보다 도 더 파장이 큰 공개 메시지입니다. 왜냐하면 "전체를, 하나를 위하여!"라는 북한의 구호는 곧 "전체 주민이 수령을 위하여!"라는 말과 같습니다. 수령의 언어는 교시이고 행동은 사회모범이어서 북한의 모든 주민들이 지켜보는데 김정은이 과감하게 김정일 식 격식을 깨고 김일성을 흉내 낸다는 것은 곧 김일성 식 조선을 만들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김정은의 그 신격화 행태나 내각의 부각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초기 김일성 정권을 돌아보면 권력의 양대 기둥은 지금처럼 당-군이 아니라 당-내각이었습니다. 오히려 김일성 측근들은 당 보다도 내각에 더 많았습니다. 그랬던 북한의 양대 권력을 바꾸어 놓은 것은 김정일이었습니다. 김정일은 자신의 후계입지를 위해 김일성 신격화 선전 차원에서 당 조직부와 선전부라는 양대 기둥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각의 실권을 무력화시킨 당 유일지도체제였습니다. 선군 정치 이후 당의 지도 수준으로 군을 강조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의 구속을 받는 이념의 선군 질서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각이 없으면 김경희도 없고, 김경희의 경제권력이 없으면 김정은 정권도 없습니다. 때문에 김정은은 김일성의 주체이념과 김정일의 선군 이념을 체제명분으로 유지하면서도 초기 김일성 식 실용구조였던 당과 내각이라는 새로운 권력의 양대 기둥을 모색하는지도 모릅니다. 또 그것을 위해 김일성 향수를 자극하는 방식의 현지시찰을 이어가는 것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김정은의 정치 개혁이 성공하여 앞으로 내각이 힘을 가진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김경희 개인을 위한 또 다른 유일지도체제일 뿐, 주민을 위한 개혁개방은 김정은 정권이 지속되는 한 결코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장진성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