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7월 18일 12시 중대방송을 예고하자 한국은 물론 외신들도 북한 TV와 라디오에 초점을 맞추었었습니다. 며칠 전 북한 정권이 리영호 총 참모장 해임을 발표한 이후여서 언론들은 갖가지 억측을 쏟아내며 솔직히 김정일 사망 발표 때보다 더 큰 충격을 북한으로부터 기대했었지요. 저는 그 예고방송이 있을 즈음에 한때 저의 직장 선배님들이었던 어느 국책연구소 연구원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한 달이라는 런던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기 때문에 그 동안의 소식들과 감회를 나누기 위해서 만난 자리였던 것이었습니다. 과연 북한이 어떤 중대 발표를 할까? 그때 우리는 맛있는 점심밥 내기를 했었습니다. 다른 북한 학 박사들은 개혁개방 관련 중대 발표를 할 것이라고 말한 반면, 북한 출신 연구원들은 최고사령관 이후 남은 것이 원수 칭호이니 그 놀음이나 벌이자고 저 난리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개혁개방이란 단어조차 통제하는 북한이 개혁 개방 정책을 중대방송으로 발표할 정도면 그거야말로 급변 사태나 마찬 가지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역시나 북한은 12시 중대 방송을 통해 김정은에게 원수칭호 수여를 선언했고, 한국은 물론 세계 언론들도 허탈감과 실망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날 우리는 내기에서 이겼지만 오히려 마음이 더 무거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던 북한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금 새삼스럽게 확인하는 순간이어서 말입니다.
지금껏 북한에선 중대 방송이라면 늘 김 씨 일가와 관련한 것들이었습니다. 김일성, 김정일 사망이나 최고사령관 추대, 원수 추대 따위의 것들만 말입니다. 수령이 중심인 수령주의의 나라, 말하자면 수령의 일상만이 그 체제에서 가장 중대한 사안이어서 단 한 번도 인민을 위한 중대 방송이 없었던 북한이었습니다.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에는 자기 수명을 다 산 사람의 죽음인데도 북한은 중대 발표를 했습니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으로 300만이 제 명을 다 못 살고 굶어 죽었던 그 인민의 대량아사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중대 발표는 고사하고 제대로 된 통계발표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나라여서 주민들이 가난에 허덕이는 세계 최빈국 인데도 북한 당 선전선동 부는 김일성부터 3대에 이르는 김정은까지 그냥 위대한 영도자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북한 내부의 그 선전 문구를 한국인이나 외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수령은 대대로 위대해야 하고 주민들은 대대로 가난해야 한다."는 체제강요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 날 점심밥을 먹으며 이런 농담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김정은이 아직 나이가 어린데다 북한 지도자로서 받을 수 있는 직함과 명예직은 거의 다 가졌으니 앞으로 북한 TV에서는 중대발표가 더는 없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더구나 북한의 이번 김정은 원수칭호 수여 발표로 국제사회 또한 북한이 아무리 중대발표를 한다고 해도 더는 기대도, 신뢰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확신합니다. 온 세계를 놀라게 할 북한의 중대발표가 꼭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 날은 기필코 지금과 같은 세월이 아니라 북한인민의 존재를 알려 줄 역사적인 날일 것입니다. 다름 아닌 여러분이 주인공이 되어 여러분이 마이크를 쥐게 될 그런 중대발표의 날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장진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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