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선 죽은 김일성을 지금도 인민의 어버이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일성은 개인적으로는 평생 수령으로 산 행운아였지만 정작 제 가정의 행복도 지켜주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김일성에겐 평생 두 명의 부인이 있었습니다. 첫 부인이었던 김정숙이 사별한 뒤 자기 집무실 비서였던 김성애와 재혼하게 됩니다. 김성애는 처음 김일성의 개인 속기수로 발탁될 만큼 그 당시에는 좋은 가정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 엘리트 여성이었습니다. 평안남도 강서 군에서 태어난 김성애는 김정숙에 비해 미모도 키도 훤칠했습니다. 김일성과 김성애와의 공공연한 동거는 6.25전쟁이 시작되면서부터였습니다. 사무실을 계속 옮겨 다녀야 하는 상황에서 김일성에겐 속옷이라도 챙겨주어야 할 여성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했고, 김성애는 그런 김일성의 충실한 보조자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김성애와 함께 늘 최고사령부에서 근무했던 오빠 김광협은 훗날 민족보위 성 장관을 거쳐 제 7대 공화국 내각 부총리로 역임되기도 합니다. 중국에서 모택동의 부인 강청이 문화대혁명을 주도하면서부터 김성애도 정치정면에 나서게 됩니다. 하여 1965년 조선민주여성동맹 부위원장, 1971년 위원장, 1972년 12월에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뽑히게 됩니다.
그러나 중국에서 문화대혁명 4인방이 숙청되면서 김성애의 과도한 권력남용이 문제가 됐고, 이를 계기로 김일성은 당시 당선전선동부에서 근무하던 김정일에게 후계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김정일의 당조직부 권력이 본격화 되면서 김성애에 대한 당적 견제도 시작됩니다. 특히 김정일은 자기의 생모인 김정숙이 김일성의 여비서였던 김성애 때문에 우울증을 겪었고, 그래서 출산과정에 사망한 것이 아니라 자살했다는 설도 굳게 믿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아무리 계모라 할지라도 김성애에 대한 김정일의 응징이 그렇게 잔인할 수 없습니다.
우선 김정일은 수령유일지도체제 명목으로 "곁가지"라는 내규 용어까지 만들어 그 잣대로 김성애 일가를 숙청하였습니다. 먼저 한 때 김일성의 후계자로 지목됐던 김평일은 초대소에서 조선인민군 협주 단 여성들과 섹스파티를 했다는 이유로 가택연금을 하고 이후 외교관으로 임명하여 사실상 해외로 추방 보내게 됩니다. 김평일의 동생 김영일도 대학 졸업 후 김평일과 마찬가지로 독일 주재 과학참사 직함을 주어 평생 해외에서만 살게 만들었습니다. 이렇듯 배다른 동생들에게만 가혹했던 것이 아닙니다. 평양시당 지도원으로 근무하다 평양시당 조직비서를 지내던 김성애의 동생 김성갑은 비리혐의로 숙청했는데 그 화병에 술로 세월을 보내다 간암으로 사망했습니다. 또 다른 동생인 김성호 역시 질병으로 사망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김성애의 부각과 함께 김평일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점쳐질 때 그를 추종했던 사람들도 일괄적으로 숙청됐습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김일성의 빨치산 동지들인 항일투사 자녀들이었습니다. 단순 동창생들 같은 경우에는 수용소로 가거나 완전히 숙청된 반면 북한 최고위층 자녀들은 권력 내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복귀를 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들마저도 항일투사 자녀들은 당에 받지 말라는 당조직부 내규원칙에 따라 내각이나 다른 부처들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김정일의 당조직부 유일지도체제가 확실시된 상황이어서 이미 실권을 읽은 김일성과 그의 빨치산 동지들도 감히 불만을 드러내놓을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김정일이 김성애에게 입힌 정신적 피해는 이 뿐이 아니었습니다. 김정일은 치료 명목으로 김순희라는 여성을 김일성의 의료비서로 임명하였습니다. 김순희의 존재는 북한 호위사령부 군인들치고 모를 사람이 없을 만큼 김일성이나 김정일의 신임을 동시에 받았던 여성이었습니다. 김정일은 김순희를 통해 김일성의 주변 움직임과 심리 변화상황을 감지했고, 김일성은 여생을 김순희의 미모에 빠져 살았습니다. 김일성은 김순희를 의료비서가 아니라 빨치산 식으로 꼭 "간호장"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김일성의 후처로 들어갔다가 두 아들의 운명은 물론 친동생들마저 불우한 인생을 마치도록 한 죄책감 때문인지 김성애는 1990년대 초반 완전히 실성하게 됩니다. 최근 한국에 온 1호 호위총국 출신 탈북자의 증언에 의하면 미쳐버린 김성애는 초대소 근처를 배회하며 알아듣지 못할 욕설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말을 받아주지 말고 그냥 무시하라는 상부 지시로 초대소 근무 경호원들로부터도 외면당한 채 말입니다. 김성애의 운전기사나 비서도 1년에 한번 꼴로 계속 교체되어 사실상 그 누구에게 하소연하거나 의존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가끔 김평일이 어머니를 찾아오지만 그때마저도 제3자의 입회조건으로 이루어지는 면담이라고 합니다.
김정일 사망 후 현재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면서 김성애와 김평일의 처우에도 약간의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김정일의 곁가지 친인척들의 운명은 이렇듯 비참했습니다. 김일성의 충신으로 선전했던 김정일, 그러나 그는 김일성의 부인마저 끝내 미쳐버리게 만든 악인이었습니다. 그런 김정일이어서 북한 인민들의 현재 처지도 세계 최악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장진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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