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실체] 국방위원회 87부가 북한 사회를 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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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시간에는 김정은이 왜 후계 권력을 김정일처럼 당이 아니라 국방위원회 부 위원장으로 시작했을까?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다 아시다시피 김정일은 당 선전선동부를 거쳐 당 조직부 업무로 후계수업을 시작 했습니다. 이는 김일성이 당 총비서이면서 주석이었지만 당시에는 유일 지도 체제가 완성 되지 못했기 때문에 당 내부에 아들의 존재가 필요해서였습니다.

실지 김일성은 자기 머리가 나이보다 일찍 하얗게 된 것은 당 내 종파들 때문이라고 자주 말했었습니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이러한 내심을 실천 한다며 당의 유일지도 체제를 주장했고, 나중엔 자기의 유일지도 체제로 가져갔습니다. 그런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은 국방위원회 부 위원장으로 후계 공식화를 선언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선군정치 실천을 위해서인 것 같지만 북한 관례의 당 보다 군 을 강조한데는 그만한 사정도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얼마 전 대북 인터넷 신문, 뉴포커스 통신원에 의하면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방위원회 기능이 대폭 강화됐다고 합니다.

특히 국방위원회 핵심 권력으로 87부가 새롭게 신설 부각되면서 사실상 북한의 권력 중심이 당에서 국방위원회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다만 인사권, 행정 결정권을 갖고 있는 당 조직부의 권한은 아직 유효하지만 그렇다고 당 조직부가 김정일 정권 때처럼 유일 지도권한으로 북한 내 모든 결정을 독점할 수 있는 제도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당조직부 인사권을 초월하는 국방위원회 87부가 군사 검열 위원회 기능으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87부는 장령 출신들로 구성돼 있으며 평양시 23개 지역과 전국 각 도, 시, 심지어는 제2경제 지도위원회에도 "전력군사대표"를 두었다고 합니다. 이 "전력군사대표"들은 선군정치의 감시자, 조언자 역할을 위해 파견된 핵심 인물들로서 현지에서 당의 정책을 군인정신으로 실천 하는가를 직접 감시 및 관리하고 또 주도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또한 원칙에 위배되는 상황이나 인물에 한에서는 현장에서 군법으로 다스릴 수 있는 권한도 갖고 있어 사실상 지방 말단 조직까지 책임지던 당적 지도 권한을 압도 한다고 합니다. 국방위원회 87부의 전신은 2002년 경 발족된 국방위원회 검열 위원회입니다. 김일성 사후 선군 정치라는 계엄통치를 선언한 김정일은 국방위원회 안에 인민군 원수 리을설을 검열 위원장으로 하는 장령 출신의 검열 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그 위원회는 초기 퇴임한 군 단장급 이상과 총 정치국 총참모부 부국장 이상 장령들로만 구성돼 있었습니다. 명칭은 국방위원회 검열 위원회였지만 구성원들이 대부분 고령의 장령 출신들인데다 실무 기능의 하부기관은 없이 그냥 국방위원회 검열 위원회라는 상위 조직만 있는 비상설적 형태였습니다. 전국 선군화 차원에서 군 수뇌 세대 교체를 하고, 퇴임시킨 최고위급 장성들에게 또 다른 명예 직을 만들어 줄 목적으로 시작된 기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국방위원회 검열위원회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김정일은 '비 사회주의 깜빠니아 운동'에 가끔 이 조직을 활용하였습니다. 그 전까지 북한에서 일어났던 '비사회주의 깜빠니아 운동'들에는 조직 이기주의나 부분적 권력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상호 감시 차원에서 중앙당, 국가보위부, 무력부보위사령부, 인민보안부, 검찰소, 이렇게 5개부서가 연합하는 형태로 진행됐습니다. 김정일의 지시가 있을 경우에만 이루어지는 연합 검열이어서 그 상징성과 절대성을 부각 시키기 위해 비준 날짜를 조직 명칭으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예컨대 김정일이 9월 24일 "자본주의 황색 바람 차단"을 지시하면 "922상무조"가 편성되어 전국, 또는 특종 대상에 대한 검열을 단행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무자비한 숙청이나 엄한 처벌에 목적을 두었기 때문에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차원에서는 득이 있지만 한편 김정일 신격화에도 적지 않은 손실을 주었습니다. 하여 김정일은 자기 이름을 대체할 수 있는 또 다른 힘의 권력을 만들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국방 위원회 검열 위원회를 내세워 "군법으로 즉결 처단"이라는 무기를 사용하게 한 것입니다. 그렇듯 종종 국방위원회 검열위원회 활동 횟 수가 늘어나면서 제도상의 보완 필요성도 함께 제기되곤 했다고 합니다. 국방위원회 검열 위원회가 명칭만 요란한 비 상설 조직에서 하부 실무 조직을 거느린 '87부'라는 실체 조직으로 드러난 시점은 김정일이 김정은 3대 세습을 결심한 2009년경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3대 세습 후계자에게 부여한 첫 공식 지위를 국방위원회 부 위원장으로 한 것도 이 '87부'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추측해 보건대 김정일은 자신이 생존해 있을 때까지는 전통적 방식의 당 조직부를 통한 일인 지배를 유지 하면서 한편 국방위원회 최고 조직인 '87부'를 김정은 세습 안정의 전위조직으로 준비한 듯싶습니다. 그 이유는 김일성 유일지도체제를 무력화시키고 온갖 숙청과 날조의 방법으로 당 조직부를 통한 자기의 일인지배 체제를 획득한 김정일이기 때문이입니다.

즉 자신만큼이나 영악했던 수명이 긴 충신들에게 권력 경험이 전혀 없는 20대 김정은을 그냥 떠맡기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면 김정은에겐 새로운 측근들과 권력 집단이 준비되어야 하는바, 그 중심 세력으로 김정일은 현재형 실권자들보다 김일성 때부터 삶을 영위해 온 명예직 측근들에게 안정된 세습 환경과 정권 안정을 보장 받도록 하는 것이 더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김정은과 함께 김경희에게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직함을 동시에 주어 후계 체제 시 실권의 공백을 국방위원회 강제성으로 메우려 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