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실체] 북한에서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

0:00 / 0:00

독재의 반대말은 폭동입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독재국가들은 대중 폭동에 의해 처참한 운명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독재는 긴 것 같지만 무너질 때에는 순간이었습니다. 사회주의 동구권에 이어 20세기에 들어와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독재 국가들도 하나 둘 씩 붕괴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얼마 전에도 리비아의 가다피 정권이 시민들에 의해 비극적 종말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김일성에 이어 김정은까지 3대 째 세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던집니다. 왜 북한에선 폭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300만이 대량 아사하고 숙청이 끊이지 않는 세계최악의 인권 불모지인데도 왜 북한 주민들은 분노할 줄 모를까? 저 뿐만 아니라 남한에 온 탈북자들도 어디 가나 그 질문부터 받는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가장 일반적인 대답은 3대 멸족 연좌제나 공포 정치, 또는 국가 보위부의 주민 감시제도를 꼽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대답들을 곰곰이 추론해 보면 하나의 결론으로 모아집니다. 국가 보위부의 감시 제도에 의해 '내 입'을 갖고도 '내 말'을 할 수 없고, 북한 정권의 공포 정치에 의해 '나'만의 이상을 가질 수 없고, 심지어는 3대 멸족연좌제에 의해 '내 목숨'도 '내 목숨'이 아니라는 것, 즉 북한에는 바로 "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폭동이 일어 나려면 지키고 싶은 것이 있어야 하는데, 이미 수령의 사유화가 된 북한에는 개인의 자부심으로 지키고 싶은 게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나의 것'이란 '내 나라', '내 조국' 이런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개인적인 구체성 이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나의 재산', '나의 꿈', '나의 직업' 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국가라는 개념 속에서만 살도록 강요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자유'를 생각하면 결론은 "언제 이 나라를 벗어날 수 있을까?"하는 막연한 탈출의 꿈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나라여서 자기 것을 위해 목숨 바쳐 찾으려는 희생 의식은 없지만 대신 북한에서는 버리는 것이 참으로 쉽습니다. '내 희망'을 버려야 하고, '나의 인권'을 버려야 하고, '나의 자존심'은 물론, 심지어 '나라는 존재'의식까지 완전히 버려야 편하게 살 수 있는 운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만약 모든 사고와 행동 앞에 "나" 를 세우면 역적으로 몰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숙명으로 명성을 얻는 사람들이 바로 북한 정권이 시대의 영웅으로 미화하는 자폭 용사들입니다. 집에 화재 사고가 나면 자기 물건부터 꺼내오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데 그것을 말살한 북한 정권의 세뇌로 그 주인공들은 김부자 초상화부터 꺼내옵니다. 이것은 '나' 개인의 인권이 실종된 광기 집단주의 에서만 볼 수 있는 기이한 현상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북한에서 '나의 자유', '나의 인권', '나의 취향'을 공공연히 추구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수령뿐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들은 마음대로 외국 영화를 볼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외국 여행을 언제든 갈 수 있습니까? 아니 최소한 거주이전의 자유로 평양에서 살 수 있는 권리라도 있습니까? 수령은 말 한 마디가 곧 법이지만 인민은 일상의 자유도 불법이 됩니다. 수령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지배할 수 있다는 수령 주의에 의해 개인의 창의성, 자주성, 의식성은 충성심으로 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김 씨 일가는 3대째 수령이고 주민들은 3대째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권층은 대를 이어 특권층이고 일반 서민들은 대대로 서민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불합리한 구조를 느끼지 못하도록 북한 정권은 행복, 소원, 사랑, 미래와 같은 듣기 좋은 낱말들로 개인의 사고와 의식에 혼동을 줍니다. 그 다음엔 민족, 혁명, 사회주의와 같은 전체주의 개념으로 "나"가 아닌 "우리"라는 집단 공동체 의식에 사로 잡히도록 교육하고 교양하는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정신적 세뇌와 함께 물질적 집체주의도 강요합니다. '나의 것'을 가지지 못하도록 소유제를 법으로 금하고, 개인연대가 아닌 조직연대가 되도록 제도적으로 인맥까지 감시 관리합니다.

심지어 주민들이 시장에서 장사를 통해 가지는 것들은 '나의 것'이 아니라 고작 생존의 노력일 뿐인데도 그마저도 막으려고 화폐 교환이란 권력 수단을 강행하는 북한 정권인 것입니다. 그러나 주민들의 동요는 이미 시작됐고 폭동 또한 이미 진행 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 정권에 대놓고 반항하는 세력은 벌써 2만5천명이나 됩니다. 그들은 바로 여기 남한에 온 2만 5천명의 탈북자들입니다. 북한 권력층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무모한 도전보다 오히려 자신들이 인민들에게 버려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탈북자들은 탈 북으로 북한 정권에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는 권력가들입니다. 그들이야말로 자기 고향과 일가친척을 버린 것이 아니라 북한 정권과 그 심복들을 누구보다 먼저 버릴 줄 알았던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북한 내부의 주민들에게 독재정권을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행동으로 가르쳐 준 솔선 수범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그것이 두려워 얼마 전 북한 정권은 탈북자 재 입북 기자회견이란 것을 공개하기도 하였습니다. 통제와 물리적 수단 만으로는 한계를 인정한 북한 정권이 체제 자존심 따위를 버리고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창피한 심리전을 연출할 만큼 궁지에 몰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쇼를 지켜보는 2만5천명의 탈북자들은 담담하기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북한에서 박탈당했던 '나의 꿈', '나의 생각', '나의 행동'을 자유의 세계에서 가졌기 때문입니다. 독재 국가에선 '나의 것'을 지키기 위해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지만 인권이 보장된 자유 세계에선 '나의 것'이 부흥하도록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최선입니다. 이것이 바로 독재와 자유, 순간과 영원과의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한에 와서 비로소 개인의 주체가 무엇인지 알게 된 탈북자들처럼 북한 주민 여러분도 조금씩 '나의 것'을 가져보십시오, 그러면 정서가 생기고 감정이 북받치게 되고, 나아가서 새 나라를 갈망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