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탈북자 장진성 씨가 전하는 김 씨 일가의 실체, 노동당 통일 전선부 대남 정책과 연락소 부원이었고 김정일을 두 차례나 접견한 일급작가 이었던 장진성 씨가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60년 독재 체제와 현대판 봉건 세습에 대한 진실과 배경을 밝힙니다.
오늘은 평양 옥류관의 냉면 이야기를 통해 김정일의 유일지도체제가 얼마나 비합리적이며 잘못됐는가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북한에선 김일성의 고향인 평양을 혁명의 수도라고 강조하지만 외국인들은 평양이라면 평양 냉면, 그래서 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을 먼저 떠올립니다.
저도 북한에 있을 때 하루 두 끼를 옥류관 냉면으로 배를 채웠던 날이 많습니다. 평양 시 중구역 경성 동에 위치한 옥류관은 본관과 별관 2개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원래는 본관만 있었는데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2001년 경 확장공사를 시작하여 본관을 중심으로 양옆에 별관이 두개 더 생기게 되었습니다. 정문을 마주하고 서있는 오른쪽 별관은 1980년대 말에 신설됐던 1호 별관을 확장한 것입니다. 1호별관은 김일성이 냉면은 냉면집에 가야 제 맛이라고 말한 이후 건설되어 김일성 전용 특실로 사용돼 왔습니다. 그 1호 별관에선 김일성, 김정일과 그 가족들 외에도 외국 국빈연회, 혹은 중앙당 연회가 열리는 장소로 이용돼 왔습니다. 평일에는 문이 굳게 잠겨있고 일반인들 출입을 완전히 통제해 왔던 1호 시설이었던 셈이지요.
그래서 그 1호 별관은 내각 봉사 국 산하 옥류 관에서 관리한 것이 아니라 만수대의사당관리국에서 별도로 재료와 요리를 주도했습니다. 김일성 사후 1호 별관으로서의 의미가 실종되면서 외국인들 전용 별관으로 사용되다가 옥류관 확장공사와 함께 본관의 의미를 부각시키면서 지금은 오히려 양 옆의 별관이 일반인용으로 개방됐습니다. 평양 옥류관이 유명한데는 쫄깃한 메밀 면과 고기 내장으로 만든 특이한 육수 맛입니다. 냉면을 좋아했던 김일성이 생전에 자주 갔던 곳이고, 북한 요리의 상징이기 때문에 북한 정권은 옥류관 정상화에 특별한 관심과 돈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옥류관이 두 번이나 장기간 문을 닫았던 적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김일성 사후 100일 추모기간 때였습니다. 그때는 일반인들은 물론, 특히 간부들이 술을 먹거나 한증을 해도 해임되고 추방될 때였습니다. 그런 공포의 100일 기간에 옥류관에 사람들이 북적인다는 사실을 안 김정일은 대노하여 즉석에서 영업중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수령님께서 돌아가셨는데 냉면이나 찾는 것들이 제 정신이냐며 말입니다. 중앙당 조직부는 그동안 옥류관 출입이 잦았던 간부들을 색출하여 엄벌했고, 옥류관도 그렇게 아예 자물쇠가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 후 옥류관 정상영업을 할 데 대한 김정일의 지시가 전국 당 강연에서 배포됩니다. 평양시찰 도중에 텅 빈 옥류관을 본 김정일이 대노하여 정상 운영을 지시했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평양시민들이 옥류관 냉면을 못 먹게 되자 "김일성이 죽으니 옥류관도 죽었다"고 한탄했다는 주민여론이 제기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구나 김정일의 지시로 옥류관 영업이 정지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냉면민심이 공공연하게 반발해서였습니다. 김정일의 "인민에 대한 위대한 어버이 사랑"선전과 함께 옥류관은 문을 열었지만 1년도 채 안 돼 다시 문을 닫게 됩니다. 대량아사를 발생시킨 배급질서의 붕괴가 국가계획경제 질서 붕괴로 이어진 결과였던 것입니다. 물론 그 전까지도 국가가격과 실물가격과의 차이로 옥류관은 냉면을 자유판매가 아닌 예비 표 판매로 하고 있었습니다.
예비 표란 중앙당 경제정책지도부 에서 특별히 발급하는 일종의 냉면 배급표입니다. 그 배급표들은 중앙당에서 발급하기 때문에 주로 간부들과 공로자들, 행사참가자들을 비롯한 제한된 인원에 한해 공급 되었습니다, 결국 일반 주민들은 돈이 있어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는 옥류 관이었던 셈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으로 모든 물가가 시장가격으로 변화되자 인플레 증가의 타격을 가장 먼저 받은 곳이 옥류관 같은 국영기업이었습니다. 김정일은 북한 음식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옥류관 불빛이 꺼지자 그것이 주민들에게 더욱 체제불안 정서를 가증시킬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때부터 냉면정치를 시작하게 됩니다. 우선 자신의 명의로 옥류관에 수십 톤의 고기와 메밀을 선물로 보냈다는 선전과 함께 옥류관 정상영업 전투를 직접 지휘하게 됩니다.
김정일은 옛날부터 옥류관 냉면이 유명했던 것은 밀가루 면이 아니라 메밀 면이었기 때문이라며 지금보다 메밀 양을 더 추가하라고 지시합니다. 그렇게 김정일의 지시로 다시 태어난 옥류관 냉면이라며 북한의 모든 언론이 선전했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정 반대였습니다. 우선 당장 먹을 풀죽도 없는 형편인데 무슨 냉면이냐는 반발이 가장 거셌습니다.
한편 냉면을 먹어 본 사람들도 불만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김정일 지시로 메밀을 더 추가했더니 쫄깃한 맛이 없어지고 면이 부석부석 끊겨 옥류관 고유의 냉면 맛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손님들이 옥류관 냉면이 왜 이 모양이 됐냐고 항의할 때마다 옥류관 직원들은 기겁하며 장군님 지시로 메밀을 더 넣어서 건강에는 더 좋은 냉면이라고 변명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옥류관은 자기들의 냉면이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대로 영업을 계속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정일이 자기 지시대로 메밀을 더 넣었더니 인민들 반응이 어떠냐고 물어볼 때마다 그 진실을 설명할 간부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재까지도 평양의 옥류관에는 두 개의 냉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김정일의 지시로 만들어지는 맛없는 김정일 냉면이고, 다른 것은 옥류관의 전통을 유지하는 최고의 맛 옥류관 냉면입니다. 김정일을 신격화 하는 나라에서 김정일의 실수란 있을 수가 없다는 체제원칙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웃음거리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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