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씨 일가의 가계도를 보면 마치 조선왕조의 가계도만큼이나 복잡합니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네 명의 부인 또는 동거녀와 여섯 명의 자녀들을 두고 있어 복잡하기가 그지없습니다.
그렇지만 북한에서 김 씨 일가의 가족관계나 사생활은 일급비밀로 분류되어 일반주민들은 그 내막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김 씨 일가의 실체' 오늘은 북한의 최고 영화배우로 활동하다 김정일과 동거에 들어가 결국 불우한 운명을 맞게된 성혜림에 대해 알아봅니다.
1937년 태어난 성혜림은 경상남도의 갑부였던 성유경과 김원주의 1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성혜림은 한국전이 발발하기 전 아버지와 함께 북한으로 건너가 평양에서 제3 여자중학교와 평양예술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김정일과 만나기전 성혜림은 북한에서 이름난 영화배우였습니다. 예술학교를 졸업한 성혜림은 1960년대 만들어진 북한영화 온정령과 백일홍 등에 출연하는 등 배우로서 인기를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이후 성혜림은 월북 작가 리기영의 장남 리평과 결혼을 했습니다. 훗날 남한으로 망명한 성혜림의 조카 리일남의 수기에 따르면 리평과 성혜림의 결혼은 반강제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혜림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만은 않았습니다. 리평과 성혜림 사이에는 리옥돌이라는 딸도 있었습니다. 60년대 북한의 영화계를 주름잡던 성혜림은 당시 노동당 간부였던 김정일의 눈에도 띄게 됩니다. 그때 김정일의 나이는 성혜림 보다 5살이나 적었습니다. 북한전문 뉴스 데일리 NK의 손광주 편집장의 말입니다.
손광주
: 1960년대 말 김정일이 당 사업을 하면서 선전분야 일을 주로 했다. 그 때 당시 북한 주민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것이 영화 사업이었다. 영화를 통해서 당과 수령을 선전하는 수단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영화배우들과의 접촉이 잦았고 성혜림과도 만나게 됐다. 김정일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이미 결혼을 했던 성혜림과 몰래 동거를 한다.
김정일은 자신이 성혜림과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버지 김일성에게 밝히지 않았습니다. 김정일과 만났을 때 성혜림은 이미 결혼을 해서 애까지 낳은 여자였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는 평범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971년 김정일과 성혜림은 장남 김정남을 낳게 됐지만 그 사실조차 철저한 비밀에 부쳐졌습니다. 김 씨 일가를 연구해온 세종연구소 정성장 박사의 말입니다.
정성장
: 그 같은 사실은 당시에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성혜림에게 김정남이라는 자식이 태어났다는 사실도 아주 오랫동안, 90년대 초까지 비밀로 부쳐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
김정일은 성혜림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감추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김정일은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성혜림과 자신의 측근들을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성혜림과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탈북자 김영순 씨는 김정일과 성혜림의 관계를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함경남도 요덕 수용소로 끌려가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김영순
: 함경남도 보위부 청사에서 89년도에 나를 불렀다. 그 때 평양에서 내려온 고위 간부가 하는 말이 “성혜림은 김정일의 처가 아니다. 아들도 낳지 않았다.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다시 한번 어디서 듣거나 유발할 시 용서하지 않겠다”라고 말하고 돌아갔다. 그때 비로소 내가 성혜림 때문에 요덕에 갔구나 하고 확인을 했다.
김영순 씨는 자신이 요덕수용소에서 풀려난 뒤에야 자신이 왜 붙잡혀 갔는지를 알게 됐다고 말합니다.
성혜림은 끝내 김일성으로 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김정일의 정식 아내가 되지 못했습니다. 정성장 박사의 말입니다.
정성장
: 김일성은 1974년에 김정일을 김영숙이란 여성과 결혼하게 한다. 사실상 김정일과 성혜림의 동거관계는 대략 4년 정도로 볼 수 있다.
아버지의 압력으로 김영숙과 결혼한 김정일은 김설송과 김춘송이란 두 딸을 낳게 됩니다. 자신의 곁에서 김정일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던 성혜림은 그 때부터 극도의 불안감과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남한으로 망명한 성혜림의 조카 리일남은 자신의 수기에서 말합니다.
특히 자신의 아들 김정남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우울증에 걸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성혜림은 김정일과 더 많은 자식을 낳아야만 자신의 위치가 확실해 진다는 생각에 두 차례나 임신을 시도 했지만 모두 유산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김정일로 부터 완전히 버림받은 성혜림은 아들 김정남이 유학하던 스위스와 러시아에서 요양을 하다가 지난 2002년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한편 성혜림을 버린 후에도 김정일은 다른 여성들과 살림을 차려 살고 있습니다. 정성장: 이후에 비서실에 있던 김영숙과 정식결혼하고 그 이후에는 무용수 출신인 고영희와 같이 살았다. 김일성 김정일의 경우는 자유민주주의에서 생각하는 결혼 제도와 일탈한 성격이 있다...
한때 북한의 최고 여배우로 떠오르던 성혜림은 결국 김정일과의 잘못된 만남으로 불행한 운명을 맞게 된 것입니다. 성혜림은 무덤은 얼마 전 남한 언론에 의해 공개 됐는데 러시아의 수도 모스코바 서쪽에 위치한 초라한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고 합니다.
잘만 풀렸으면 북한 지도자의 영부인이 될 수 있었던 성혜림은 김정일의 배신으로 누구도 돌봐주지 않는 타국 땅의 무덤 속에서 쓸쓸히 누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