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인은 네 명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영화배우 출신 동거녀 성혜림과 김일성이 짝지어준 타자수 출신 김영숙. 그리고 만수대 예술단 출신 고영희와 김정일의 비서 김옥 네 사람입니다. 이 네 사람 중 세 번째 여자인 고영희에 대한 김정일의 관심과 신뢰는 다른 여성들보다 더 깊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김 씨 일가의 실체 오늘은 김정일의 셋째 부인 고영희에 대해 알아봅니다.

고영희는 1953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재일 교포입니다. 고영희는 1960년대 가족을 따라 북한으로 건너가 1971년에는 만수대예술단에 들어가 무용수로 활동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첫 번째 동거녀였던 성혜림은 김정일보다 다섯 살이나 연상 이였지만 고영희는 그보다 열두 살이나 연하였습니다. 고영희는 만수대 예술단원으로 활동을 하다가 김정일의 눈에 띄게 됐고 김정일이 간부들과 즐기던 비밀연회에서 항상 김정일의 옆자리에 앉다가 1976년부터 김정일의 동거녀로 눌러앉게 된 것입니다.
당시 김정일은 영화배우 출신 성혜림과 동거를 하면서 장남인 김정남을 낳았고 또 김일성의 정식 허락을 받아 결혼한 함경북도 인민보안국 타자수 출신 김영숙 이란 여성과도 결혼을 한 상황이었습니다. 북한 전문 뉴스 데일리 NK의 손광주 편집장의 말입니다.
손광주
: 김영숙이란 여성과 정식으로 결혼을 했고 그다음에는 무용수 출신 고영회와 같이 살았다. 김일성 김정일의 경우 정식결혼과 같은 자유민주주의에서의 결혼제도에서 일탈한 측면이 있다. 봉건 왕조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김정일의 경우 성혜림과 김영숙 그리고 고영희 이외에도 ‘몇호 댁’이라고 불리는 혼외의 여성들이 많이 있다.
일각에서는 고영희가 김정일의 기쁨조 출신으로 애첩에 불과 했다는 의견도 있지만 사실상 고영희는 김정일의 마음을 가장 오랫동안 사로잡은 정부인이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세종연구소 정성장 박사의 말입니다.
정성장
: 고영희가 결국은 성혜림의 빈자리를 채웠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일이 아버지의 권유로 김영숙이란 여성과 결혼은 하지만 본인이 원하던 결혼이 아니었기 때문에 김영숙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김영숙과의 사이에서 아들은 태어나지 않고 딸만 태어나면서 결국은 김영숙과의 관계는 형식적이었고 김정일의 빈자리를 채워준 여성은 고영희 였다.
김정일에게는 여러 명의 동거녀와 부인들이 있었지만 그에게 아들을 낳아준 여성은 성혜림과 고영희뿐이었습니다. 김정일의 첫 동거녀 성혜림은 김정일에게 장남 김정남을 낳았지만, 성혜림으로부터 마음이 떠난 김정일은 장남 김정남도 버리고 말았습니다. 고영희가 김정일의 두 째와 세 째 아들을 낳자 김정일의 마음은 그 자식들에게 돌아섰습니다.
정성장
: 81년에 김정철 그리고 83년에 김정은이 태어나면서 고영희가 그 때부터 정식 부인이 됐다고 볼 수 있다. 고영희는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 김정일의 현지지도에 동행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영부인으로 행세했다.
김정일의 첫 동거녀 성혜림이 사망하면서 고영희의 입지는 더 굳어졌다고 정성장 박사는 말합니다.
정성장
: 성혜림이 사망하자 김정일이 성혜림에 대한 마음의 빚을 털어버리게 됐고...
경쟁자가 없어진 고영희는 주어진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자식들을 김정일의 후계자로 키우기 위해 공작을 펼칩니다. 정성장 박사의 말입니다.
정성장
: 고영희가 했던 역할 중 가장 중요하게 고려돼야 할 부분 중에 하나는 김정은을 김일성 군사종합대학에 들어가게 해서 김정일의 선군정치를 이을 수 있는 자질을 갖추게 한 것이다. 오늘날 김정은이 후계자로 낙점된 데에는 고영희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김정일이 자신의 이복동생 김평일과 삼촌 김영주와 권력투장을 하는 과정에서 어머니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지만 김정은이 권력을 차지하는 과정에서는 어머니 고영희의 역할을 컸습니다.
정성장
: 2003년 당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비서가 남한국회에서 김정일이 사망하면 그 뒤를 장성택이 이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후 고영희는 장성택에 대한 조사를 시작해 장성택을 직무정지 시킨다.
그러나 고영희는 자신의 차남 김정은이 김정일의 공식후계자로 지목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2004년 병으로 세상을 뜨게 됩니다. 비록 기쁨조 출신으로 김정일을 만나 권력을 쥐게 됐지만 고영희는 자신이 낳은 자식을 김정일의 후계자로 만들고 자신 위상을 국모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합니다. 김 씨 일가의 실체 이번 주 순서를 마칩니다. 진행에 이규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