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탈북자 김주원입니다. 인류는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자원 고갈과 노년인구증가,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파괴와 에이즈, 암 등의 난치병, 변형 박테리아와 같은 심각한 생존문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생명과학은 바로 이러한 보편적인 생존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생물학 분야입니다. 북한의 생물학은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하여도 식물이나 동물의 이름을 분류하고 지역마다 다른 식물분포 상태를 연구하는 자연조사에 그쳤습니다.
이러한 분류학과 생태학 연구와 함께 일부 연구사들에 의하여 미생물을 이용한 발효공업 연구가 소극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세계는 1970년대 후반부터 전자공학의 발전에 힘입어 생명공학의 대상과 영역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었습니다.
박테리아를 이용한 유전자재조합기술이 성공하면서 생명공학에 대한 관심도 전례 없이 높아졌습니다. 북한도 '21세기는 생물학의 시대'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생명공학의 발전을 위한 정책을 화려하게 제시했습니다.
1980년 10월에 진행된 노동당 제6차대회에서 김일성은 '사회주의 건설의 10대 전망목표'를 제시하고 그 성과적 수행을 위하여 전자공학(IT)과 생물공학(BT)을 비롯한 최첨단 과학기술을 발전시킬 데 대해 지적하였습니다.
사실상 노동당 제6차대회 이후부터 생물공학은 북한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아 온 분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일성 일가가 생물공학에 이렇듯 높은 관심을 보인 것은 무엇보다 자신들의 건강문제와 밀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생명공학은 유전자의 재조합, 세포 융합과 분열을 통해 생명체의 특성을 변형시키는 기술입니다. 생명공학을 통해 인간은 수명을 연장하고 불치병과 유전적인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유전적인 심혈관계 질환을 가지고 있던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있어서 생명공학은 건강장수라는 숙원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하고 가장 절실한 분야였습니다. 특히 생명공학은 생화학무기를 만드는데 악용할 수 있어 김씨 일가를 더욱 자극했습니다.
조국과 인민에 앞서 자신의 향락과 영생을 간절히 희망해 온 김정일은 이런 최첨단 생물학을 만수무강연구소에 먼저 도입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1980년대 신설된 만청산연구원에 생물공학연구실이 처음 꾸려졌습니다.
생물공학 연구실은 보통 생물공학 실이라고 불렀는데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3실이라는 별칭을 사용했습니다. 만청산연구원의 초대 생물공학연구실 실장은 김일성종합대학 생물학부 교수출신인 리경배 박사가 맡았습니다.
훗날 리경배 교수는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만청산연구원 초급당 부 비서 겸 응용 실 실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만청산연구원 생물공학실의 기본임무는 세포공학과 유전자공학, 조직배양기술을 응용한 특제품 개발이었습니다.
생물공학실이 만수무강연구소의 다른 연구실들과 차별화 된 점은 현대적 기술수단들을 최대한 활용해 김일성, 김정일의 체질에 꼭 맞는 건강장수 약품과 식품을 과학적 수치로 정확하게 만들어 낸다는데 있었습니다.
다시 설명을 하면 기존의 만수무강 연구는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의료기술을 더욱 발전시키는 방법 이었습니다. 그러나 생물공학은 전통적인 의료 기술보다 과학기술적 수치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건강장수 분야를 개척하는 연구 분야였습니다.
김정일의 지시를 받고 신설된 만청산연구원 생명공학 실에는 20여명 정도의 전문 연구사들이 일을 했습니다. 매 연구사들은 보통 1~2명의 실험조수들을 보조 인력으로 거느리고 있어 연구원의 총 인원은 1백 명이 넘는 규모였습니다.
초기 실험조수들은 김일성종합대학 생물학부 졸업생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그 중에는 3명의 외국유학생 출신들도 있었습니다. 연구사들은 중앙당 5과와 금수산의사당경리부 당위원회 간부과에서 특별히 선발했습니다.
연구조수로 선발되려면 가족 토대와 성분이 좋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학성적이 우수해야 했으며 고위층간부들과 친인척관계에 있으면 더 유리했습니다. 전문 연구사가 아닌 실험조수의 자리를 얻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힘들었습니다.
김씨 일가의 만수무강 연구를 과학적으로 담보한다는 취지에서 발족된 제3실의 연구사들은 최첨단 생물공학기술을 배우기 위해 이태리와 인도, 오지리, 독일과 같은 자본주의 나라들에 수개월씩 파견되어 기술을 전수받기도 했습니다.
세계적인 생물공학 발전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북한은 금수산의사당경리부 신상균 부장의 아들이며 만청산연구원의 당비서 겸 부원장인 신영민을 서방의 여러 나라들에 파견해 한다 하는 연구시설들을 모두 돌아보도록 조치했습니다.
이에 기초해 김일성종합대학 생물학부 실험생물학과 출신의 연구원들을 여러 선진국들에 보내 6개월부터 1년 동안 생물공학 기술을 전수받도록 했습니다. 그중 박영남 박사는 이딸리아에서 2년동안이나 체류하며 기술을 습득했습니다.
박영남 박사가 이딸리아의 유명한 연구기관들을 돌며 배운 것은 식물조직배양을 이용한 수경재배 기술이었습니다. 수경재배 기술을 배우기 위해 제3실의 리성학 박사를 비롯한 다른 연구사들도 이딸리아와 인도의 시험농장들에 파견됐습니다.
수경재배는 토양이 아닌 영양액 속에서 식물체를 재배하는 기술이었습니다. 방법에 따라 '물방울농사', '점적농사'와 같은 여러가지 이름으로 나뉘었는데 김씨 일가의 만수무강 연구에서 수경재배는 매우 중요시 됐습니다. 만수무강 연구소에서 수경재배가 중요하게 부상된 이유는 북한의 실정에서 도입이 쉽다는 점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김일성, 김정일의 체질에 특화된 건강식품을 만들 수 있는 응용가능성이 무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외국의 수경재배 시설들을 돌아보고 온 신영민 부원장은 "우리 호위과학 전사들이 본분을 다하자면 세계최첨단 기술을 응용해야 하는데 아직 거리가 멀었다"고 한탄하며 유럽의 선진농법, 수경재배 연구를 하루 빨리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수경재배에서도 '물방울농사'라고 하는 점적농사는 농작물 한 포기 한 포기에 따로 연결된 관을 통해 농작물에 영양 액을 공급하는 방식입니다. '물방울농사'는 식물재배에서 최적의 조건을 만족시키면서 수확량을 최대한 높일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더욱이 매 식물체마다 김일성, 김정일의 건강에 좋은 약 성분을 영양 액에 제각각 함유시켜 따로 공급하는 방법으로 남새를 재배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남새(채소)라 해도 건강기능성이 완전히 다른 종류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수경재배의 여러 가지 방법들은 금수산의사당 경리부 산하 '금수산연구소'의 유리 온실에서 확대재배실험을 거쳤습니다. 시험적으로 생산된 첫 남새 작물은 방울토마토와 부루(상추), 쑥갓, 청경채, 딸기였습니다.
수경재배에 드는 시설인 인공조명장치와 인공환경 식물재배 함(식물생장함) 그리고 여기에 드는 영양 액을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온갖 귀한 약재들을 우려 영양 액에 첨가하다 보니 그 원가는 천문학적 숫자에 달했습니다.
이 외에도 생물공학실에서는 클로렐라배양을 통한 건강식품개발도 진행했는데 클로렐라(chlorella)는 민물에서 자라는 녹조류(綠藻類)의 단세포 생물로 단백질과 엽록소, 비타민, 필수미량원소, 아미노산 등 영양소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습니다.
또 김후남 박사를 중심으로 김일성, 김정일이 먹는 음식의 색을 다양하게 내기 위한 천연색소연구도 진행했습니다. 처음으로 연구된 천연색소는 붉은 색을 띠는 꼭두서니 색소로 알리자린(alizarin) 성분이 함유돼 건강에 매우 좋았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연구에는 그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들었고 생산단가가 높아 북한에서는 최고위층에 있는 간부들에게도 공급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김일성, 김정일에게만 유일하게 공급할 수 있었는데 이젠 그 주인이 김정은 으로 바뀌었습니다.
만수무강연구소까지 만들어 놓고 자신들의 영생을 위해 애절한 노력을 기울여 왔건만 김일성과 김정일의 목숨은 자본주의 평균 주민들의 수명에도 못 미쳤습니다. 그래서 저는 김정은의 수명이 얼마나 될지 더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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