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호의 사위 윤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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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에 계신 동포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해 9월 9일 김정은 정권은 국제사회의 반발도 무시하고 제5차 핵실험을 강행했습니다. 이와 관련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2016년 11월 30일 대북제재 결의안 제2321호를 채택했습니다. 유엔안보리는 결의안을 통해 북한 정권이 핵개발 야망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견디기 어려운 결과에 직면할 것임을 강력히 경고하면서 핵과 미사일과 관련된 김정은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바꾸어 놓을 단호한 의지를 다시 확신했습니다.

유엔은 이번 안보리 결의안에서 북한의 석탄과 은, 동, 아연, 니켈 등 광물자원 수출을 금지한다는 조항을 못박아 김정은 정권이 해마다 나라의 지하자원을 팔아 8억 달러 이상의 외화를 끌어들이던 경로를 차단해 버렸습니다. 안보리의 결의안으로 인해 김정은 정권에서 핵과 미사일 개발에 관여해 온 북한 고위간부들과 무기 수출에 개입해 온 해외주재 북한 외교일꾼들 11명, 핵시설 관련 부품을 몰래 수입해 들인 무역기관과 단체 10곳을 제재대상에 추가하였습니다.

이미 제재 명단에 올라 있던 대상들까지 합치면 39명의 북한 고위간부들과 42곳의 무역기관 및 단체들이 다른 나라들과 거래를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와 동시에 영국정부는 독자적으로 북한의 제재대상을 공개했습니다. 영국정부가 공개한 대북 제재대상은 북한에서 지금껏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관여해 온 주요인물 12명인데 그속에는 북한 핵개발의 원로이고 노동당 군수담당비서였던 전병호의 사위 윤호진의 이름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전병호의 둘째 사위인 윤호진은 1980년대부터 1993년까지 국제원자력기구(IAEA) 주재 북한 대표를 지냈던 인물입니다. 윤호진은 국제원자력기구가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사찰을 강행할 때 북한정권을 대변하는 협상을 주도해 유명세를 떨쳤습니다. 윤호진은 북한 당국이 중동의 독재국가 수리아(시리아)에 핵시설을 지어주는 협상을 진행할 때에도 핵심적 역할을 맡아왔습니다. 북한이 건설해 주던 핵시설은 완공을 앞둔 2007년 9월 이스라엘의 기습폭격으로 완전히 파괴돼 버렸습니다. 훗날 미국 과학국제안보연구소 소장 데이비드 올브라이트는 '위험유포자(Peddling Peril)'라는 저서에서 북한의 핵개발과 확산의 중심에는 남천강회사 사장이고 1992년과 1993년에 국제원자력기구 주재 북한대표였던 윤호진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1993년에 국제원자력기구 이사회 사찰관들은 영변핵시설의 위성사진을 북한 핵개발의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했지만 당시 북한대표였던 윤호진은 이를 완강하게 부인했습니다. 그 뒤 윤호진은 국제원자력기구를 떠나 남천강무역회사를 관리했습니다. 노동당 군수담당 비서였던 전병호가 사위 윤호진에게 남천강무역회사를 물려주었습니다. 남천강무역회사는 노동당 군수동원부 산하에 있으면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물자들을 해외로부터 불법적으로 끌어들이는데 이용되어 왔습니다.

전병호가 없으면 북한의 핵개발을 이야기하기 어렵듯이 전병호의 사위 윤호진을 떠나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의 역사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남천강무역회사를 관리하면서 윤호진은 이란에 미사일과 잠수함, 반항공 무기들을 수출했습니다. 1996년 윤호진은 장인 전병호와 함께 북한이 소련제를 모방해 만든 '화성 6호(스커드)' 미사일의 설계도면을 주고 대신 파키스탄으로부터 고농축 우라늄 설계와 부품을 맞교환하는 거래도 성사시켜 김정일의 높은 신임을 얻었습니다.

북한의 핵개발 시작은 199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93년 6월 미국이 북한당국과 영변원자로에서 나오는 플루토늄 농축협상을 벌릴 때 김정일 정권은 막후에서 또 다른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농축이 어려운 플루토늄을 버리고 대신 농축이 쉬우면서도 비밀리에 핵무기 원료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우라늄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우라늄 농축시설만 갖추면 미국이 우려하는 영변의 원자로를 없애버려도 무방했습니다.

북한이 노리는 상대는 일찍이 우라늄을 농축하는 방법으로 핵무기를 만든 파키스탄이었습니다. 1993년 12월 당시 파키스탄 총리였던 베네지아 부토가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과 회담하면서 북한과 파키스탄 사이에 긴밀한 협력의 길이 열렸습니다. 두 나라는 공통의 이해관계로 더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북한은 자동보총(소총)이나 탱크와 같은 재래식 무기기술을 가졌지만 핵개발은 걸음마 수준이었고 반면 파키스탄은 핵무기를 만들었을 뿐 미사일과 재래식 무기를 생산하지 못했습니다.

거래는 간단했습니다. 북한이 '화성6호' 미사일 개발 기술과 장비를 제공하고 파키스탄은 우라늄 농축에 필요한 기술과 장비를 교환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거래가 비밀리에 성사되기까지 영어실력이 능통한 윤호진의 역할이 컸습니다. 북한이 파키스탄으로부터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는 초고속 원심분리기 설계와 핵심적인 부품을 얻어냈지만 원심분리기 한 대로는 백년이 걸려도 핵무기에 들어가는 고농축 우라늄을 추출해 낼 수 없었습니다. 초고속 원심분리기를 많이 제작하려면 북한에서 생산하지 못하는 고강도 특수 알루미늄 소재가 필요했습니다. 윤호진은 남천강무역회사 간판을 들고 독일과 동유럽 국가들을 돌면서 고강도 특수 알루미늄 관과 다른 부품들을 공작기계로 이름을 바꾸어 비밀리에 북한에 끌어들였습니다. 윤호진의 활약으로 북한은 P2형 원심분리기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2004년 한스 베르너 트루펠이라는 독일인이 자국내 우라늄 농축시설업체인 '우렌코'에서 핵폭탄제조를 위한 원심분리기 제작용 특수 알루미늄관 224개, 22톤을 남천강회사에 넘기려다가 발각되어 4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사건들이 동유럽을 중심으로 연이어 발생하면서 국제사회는 북한의 움직임을 예리하게 주시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러시아를 통해 2700대의 원심분리기를 제작할 수 있는 알루미늄관 150톤을 남강무역회사가 이미 사들인 뒤였습니다.

2013년 2월 12일 북한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제3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우리식의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된 실험이었다"고 선전했습니다. 이는 한마디로 기존처럼 풀루토늄이 아닌 우라늄 핵폭탄을 터뜨렸다는 의미였습니다. 북한은 2016년 1월 6일에 강행한 4차 핵실험을 '수소탄'시험이라고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폭발규모로 볼 때 수소탄이 아니라는 결론을 전문가들은 내놓았습니다. 어찌 보면 북한이 다종화라는 우라늄 핵폭탄도 지어 낸 자작극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 북한은 미국의 고위인사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영변에 설치된 우라늄 농축시설을 직접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초고속 원심분리기 시설을 완공한 이란은 순도 99%에 달하는 농축우라늄을 생산하지 못해 핵보유를 포기했습니다.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은은 "대륙간탄도 로케트 시험발사가 마지막단계에 이르렀다"고 장담했습니다. 북한이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 부을 때 윤호진은 김정은의 신임을 사기 위해 미사일 개발에 밤을 새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김정은의 하수인으로 목숨을 부지해 보려는 어리석은 시도는 지옥을 향해가는 지름길일 따름입니다. 최근 영국주재 북한 대사관 태영호 공사를 비롯해 수많은 간부들이 줄지어 한국으로 망명하고 있습니다. 때늦긴 했지만 윤호진도 운명의 바른 길을 선택하길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