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생일 선물 ‘백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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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에 계신 동포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해 12월 17일은 김정일의 사망일이었습니다. 벌써 김정일이 죽은 지 만 5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며칠 후면 북한이 '광명성절'이라고 정한 김정일의 생일 75돌이 돌아옵니다. 해마다 김정일의 생일이 있는 2월이 돌아오면 저는 참으로 잊을 수 없는 많은 추억들을 더듬게 됩니다. 그 중엔 1992년 2월 황해남도 해주에 살고 있다는 한 여성이 생일 50돌을 맞는 김정일에게 만년장수를 기원한다며 올린 백화주도 있습니다.

한국은 어디에 가든 우리민족의 전통주인 백화주를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백화주는 주로 조상들의 제사상에 올리는 술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정도 보통 14%로 낮은 술입니다. 그러나 북한의 백화주는 한국과 크게 다릅니다. 우선 백화주라는 말밖에 들어 본 적이 없는 북한의 시청자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백화주는 이름 그대로 백 가지 꽃을 넣어 빚은 술이라는 뜻인데 딱히 백 가지의 꽃이라기보다 온갖 꽃들이 들어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백화주는 '동의보감', '임원십육지', '규합총서' 등 수많은 옛 고서에 그 제조방법이 상세하게 기록될 만큼 우리 선조들이 오래전부터 소중히 전해 온 토종 술입니다. 우리 선조에겐 백화주를 중양절(重陽節)에만 담그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먼저 엄동설한에 반쯤 핀 설중매를 비롯해 1년 동안 동백, 개나리, 진달래, 살구, 복숭아, 자두, 배, 냉이, 산수유, 연꽃, 구기자, 민들레, 창포, 패랭이를 비롯해 자연에서 피는 많은 꽃들을 계절에 맞게 따서 깨끗이 씻은 다음 그늘에 말렸습니다.

말린 꽃잎은 종이봉투에 담아 보관해 두었다가 중양절에 술을 빚었는데 중양절은 음력으로 9월 9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중양절은 '가을의 마지막 꽃'이라고 불리는 국화가 만발하여 우리 조상들은 국화주와 국화전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국화주는 꽃을 따서 술 한 말에 꽃 두되 꼴로 베주머니에 넣어 술독에 담아 뚜껑을 덮어두어 빚거나 약주에 국화꽃을 띄워 국화주로 즐기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즐겨 마시던 이 국화주가 나중에 백화주로 발전하였다는 유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꽃들로 술을 만드는 방법이 쉽지 않아 서민들은 엄두를 낼 수 없어 큰 관료나 궁중에서만 빚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백화주는 궁중술로 불렸는데 한국은 해마다 궁중술 빚기 대회를 열어 전통주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김일성과 김정일의 건강장수를 연구한다고 하는 만수무강연구소 산하 만청산연구원이나 태평술공장, 용성특수식료공장에서도 일반 전통주는 물론 궁줄술로 불리는 백화주를 제대로 만들 수 없었습니다.

김일성이 일으킨 6.25 전쟁으로 옛 고서들 대부분이 불타버렸고 봉건유교사상을 뿌리 뽑는다는 구실로 그나마 남아있던 옛 도서관들도 비공개로 사장시켜버려 이 분야를 전공하던 역사학자나 전문가들조차 백화주에 대한 지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1991년 11월에 황해남도 해주시에 살고 있는 70대의 한 할머니가 큰항아리 5개에 든 백화주를 김정일의 생일 50돌을 맞으며 금수산의사당경리부에 선물로 보내왔습니다. 당시 저는 금수산의사당경리부 산하 만청산연구원에서 근무했습니다.

저는 식품보약화실 연구사였는데 김정일의 생일 50돌을 앞두고 호위과학제품이라 불리는 장수식품개발 연구가 한창이었습니다. 그러던 11월 어느 날 출근하니 실장인 조두형 박사가 금수산의사당경리부 신상균 부장이 부른다며 함께 가자했습니다. 신상균 부장의 사무실은 평양시 보통강구역 신원동에 있는 금수산의사당경리부 본 청사에 있었는데 제가 근무하던 만청산연구원과는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습니다. 신상균 부장의 방에 들어서니 20리터 들이 항아리가 놓여 있었습니다.

신상균 부장은 "이 항아리에 들어 있는 것이 백화주라는 것인데 황해남도 해주에 사는 한 할머니가 십여 년 동안 전국각지를 돌면서 딴 백 가지 꽃으로 빚은 술"이라며 우리 연구실에서 김정일에게 올릴 수 있는지 분석해보라고 하였습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향긋한 술 냄새가 확 넘쳐났습니다. 신상균 부장은 "이 할머니는 전쟁 때 이당비서였던 남편이 미군에 처형되어 지금껏 홀로 산다"며 "그의 충성심을 헤아려 잘 연구해 김정일 생일에 선물로 올릴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렇게 되어 만청산연구원 당위원회에서 백화주 연구에 관한 협의회가 열렸고 여기에서 식품보약화실의 조두형 실장을 책임자로 하고 저를 포함해 백두산불로초술 연구를 맡았던 리현숙, 리창희, 오현 연구사들이 백화주 연구조에 망라되었습니다. 협의회의 결론에 따라 저희들은 1차적으로 술의 미생물 평가를 하고 주정과 중금속 물질에 대한 적성정량 분석을 진행했습니다. 흰쥐를 이용해 후대독성 검토와 장기조직변화, 혈액성분의 변화를 검토하고 최종적으로 오감분석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모든 지표들에서 김정일에게 올릴 정도의 '9호 제품' 합격기준에 미달되었습니다. 결국 그 술은 생일 50돌 선물로 김정일에게 올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신상균 부장의 지시로 우리는 백화주에 대한 연구를 계속 어어 갔습니다. 문제는 김정일이 40도가 넘는 서양술에 길들여져 우리 선조들이 마시던 25도의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백화주의 주정을 김정일의 습관에 맞게 높이자고 하니 백여 종의 꽃에 들어 있는 중금속과 독성을 낮출 수가 없었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9호 작업반'들을 동원해 자연에서 피어 난 백여 종의 꽃을 모으고 그 꽃잎을 걸러 주정이 높은 백화주를 몇 백번 넘게 빚어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에 와서 보니 백화주의 주정이 14%인 원인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백여 종의 꽃들을 일일이 분석해 김정일의 입맛에 맞게 주정이 높은 백화주를 만들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자면 자연계에서 살아 있는 수천종의 꽃을 모두 검사해야 하고 토양에 따른 중금속의 량까지 전부 조사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한마디로 김정은의 입맛에 맞는 주정 높은 백화주는 만수무강연구소와 전국의 '9호 작업반'을 모두 동원한다고 해도 몇 십 년이 걸릴지, 몇 백 년이 걸릴지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조상 전통의 백화주는 우리 연구실에서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습니다.

다만 김정일이 즐겨 마실 수 있는 도수가 매우 높은 백화주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1년여의 연구 끝에 만청산연구원 당위원회에서 백화주 연구를 더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저희 연구조도 해산되고 말았습니다. 김정은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 한국에서 잘 팔리는 수준의 백화주는 얼마든지 조상들의 본을 따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김정일이 요구하는 주정을 맞출 수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숱한 노력이 든 백화주는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북한의 인민들은 부모 세대들로부터 백화주라는 우리 전통의 술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입니다. 오직 김일성 일가를 위하여 존재하는 만수무강연구소, 그 속에서 연구된 귀중한 자료들이 북한의 인민들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인민들의 건강에 아무리 도움이 된다 해도 김일성 일가의 체질이나 식습관에 맞지 않으면 무조건 폐기해 버리는 곳이 만수무강연구소입니다. 지금 그곳의 머리 흰 연구원들이 김정은을 위해 묵묵히 일생을 바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기가 막힙니다.

김정일을 위해 북한 전역을 누비며 갖가지 희귀한 꽃을 모아 백화주를 만들었던 황해남도의 그 할머니가 '고난의 행군'을 경험했다면 무엇이라 땅을 치며 통곡했을지 궁금합니다. 반인민적인 독재자를 가려보지 못했던 자신을 아마도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원망했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