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오골계탕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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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동포 여러분! 새해가 시작되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도 절반을 훌쩍 넘었습니다. 비가 내려 새싹이 돋는다는 우수도 어느새 지나가고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깬다는 경칩도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한국은 지금 '백세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가고 있습니다. 평균 수명 백세를 준비하는 한국인들은 계절에 따라 자신의 몸에 맞은 보양식을 즐겨 찾곤 합니다. 저도 지난 일요일 가족과 함께 경기도 과천의 유명한 해신탕 집에 갔습니다.

식당에 들어가니 '몸보신에 좋은 해신탕은 닭과 오리, 오골계에 10가지 한약재를 넣고 푹 고아 만든 육수와 살아있는 전복, 문어에 불로장생의 신비한 약이라고 불리는 동충하초가 들어간 최고의 보양음식'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이나 김정일만 먹을 수 있었던 오골계를 한국에서는 누구나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정말 여기가 '인민의 낙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이 방송을 들으시는 북한동포 여러분들도 오골계라는 이름이 생소할 것입니다.

김일성종합대학 생물학부를 졸업하고 만수무강연구소 산하 만청산연구원에서 제가 연구한 가축품종 중엔 오골계도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최고 지도부가 먹는 음식은 극비이기에 그곳의 인민들은 지금도 오골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도 만청산연구원에서 처음 오골계를 알았고 직접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김정일이 즐겨 먹던 오골계 탕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북한에서도 해방 전에 부유한 가정들에서 오골 닭을 키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해방 전까지 북한의 부유층이 기르던 오골닭이 바로 오늘 이야기하려는 오골계(烏骨鷄)입니다. 오골계는 한자로 까마귀 오(烏)자에 뼈 골(骨), 닭 계(鷄) 자를 써서 붙인 이름인데 말 그대로 피부와 속살, 심지어 뼈까지 검은 특유의 닭입니다.

오골계의 원산지는 동남아시아라고 하는데 역사 기록들을 살피면 오래전에 우리나라에 들어왔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천연기념물 제265호로 등록된 연산오골계는 리조시대 10대 왕이었던 연산군의 이름에서 비롯됐습니다.

오골계는 연산군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모든 임금들의 식탁에 오르곤 하던 왕궁의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긴 여러 기록들에 따르면 오골계는 고려시대부터 약용(藥用)이나 식용(食用)을 목적으로 많이 사육되었다고 합니다.

1610년에 허준이 집필한 '동의보감'의 탕액편에서 오골계는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고, 풍을 예방하고 산후조리에 좋으며 늑막염과 신경증에 효과가 있는데 특히 오골계 중에서 털과 뼈가 모두 검은 것이 제일 좋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오골계는 성질이 사나워 동남아시아 나라들에서 싸움닭으로 진화했지만 성장발육이 일반 닭보다 느리고 다 자란 어미의 무게가 1.5kg 정도여서 보양식과 건강식품을 위해 사육될 뿐 만경닭이나 장수닭처럼 알이나 고기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오골계는 연산오골계처럼 깃털까지 완전히 검은 것 외에도 갈색이나 흑갈색의 잡종도 있으며 흰색 깃털의 백봉오골계까지 10여 종이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오골계는 사료단가가 높아 알 낳이나 고기용으로는 사육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북한은 해방 후 오골계를 기르지 않았는데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김정일의 식탁에 올리기 위해 중국에서 종자닭을 들여왔습니다. 중국주재 북한대사관 과학교육담당 참사였던 김흥표 박사가 1980년대 중반에 들여왔습니다.

당시 김흥표 박사가 김일성 일가를 위해 중국에서 건강장수식품 재료들인 흑미와 희귀 야채, 꽃버섯 등과 함께 들여보낸 종자들 속에 오골계도 있었습니다. 오골계는 김일성 일가의 축산제품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운곡목장에서 키웠습니다.

만수무강연구소는 1990년부터 김일성 생일 80돌과 김정일의 생일 50돌에 선물로 올릴 건강기능성 식품과 장수약품 연구를 산하 각 연구소들에 지시했습니다. 만청산연구원 각 실들도 생일선물 마련을 위한 연구과제가 떨어졌습니다.

북한에서 기르는 오골계는 깃털이 흰 백봉오골계였는데 제가 근무하던 식품보약화실에서는 건강기능성을 개선한 오골계를 김일성의 80돌과 김정일의 50돌 선물로 지정하고 1990년 12월부터 전문적인 연구에 들어갔습니다.

김일성의 80돌 생일과 김정일의 50돌 생일이 되는 1992년 초까지 불과 1년 남짓한 시간밖에 없어 시간이 촉박했습니다. 연구 담당자로 선출된 저는 그 때부터 운곡목장에 나가서 한 달에 약 20일 이상 현장에서 연구를 진행해야 했습니다.

오골계는 운곡목장의 가금전문직장인 제6직장에서 꿩, 진주닭(호로새), 토종닭, 미국왕비둘기, 프랑스사향오리 등과 함께 사육되었습니다. 6직장에서 사육되는 오골계는 적게는 2천여 마리, 많을 때에는 4천여 마리까지 길렀습니다.

오골계를 더 효능이 높은 보양식으로 만들려면 무엇보다 오골계 탕에 들어가는 재료의 약효성분부터 개선해야 했습니다. 당시에 김일성과 김정일은 식사 조절을 제대로 못해 초도비만과 동맥경화증이 심했습니다.

저는 동맥경화증에 좋은 약초를 꿩과 토종닭, 오골계의 사료에 섞어 고기와 알에 약성분을 동화시키는 연구를 선행했습니다. 약초는 처음에 1%, 5%, 10% 등 각이한 비율로 사료에 첨가해 먹였는데 닭은 약초를 섞은 사료를 잘 먹지 않았습니다.

사료에 섞을 약초로 방풍, 겨우살이, 익모초, 도꼬마리 열매, 천마 등 중풍에 좋은 약초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기 위한 기초연구를 진행하면서 그 과정에 평안남도 온천군 광량만 염전저수지에 서식하는 해조류를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닭들처럼 초기에 약초가 섞인 사료를 잘 먹지 않던 오골계도 배가 고프게 되자 조금씩 먹이를 찾더니 점차 사료에 적응해 나갔습니다. 사료에 들어 있던 약초성분은 일주일 지나면서 닭의 체내에 쌓이고 알 속에서 동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키운 오골계는 1실인 검정분석실에서 정성정량분석을 통하여 예전보다 건강효능이 더 뛰어나다는 것이 증명됐습니다. 이런 쉽지 않은 과정들을 거쳐 오골계 고기와 오골 계란은 정상적으로 김일성 일가의 식탁에 공급되게 되었습니다.

오골계는 다른 닭보다 성장속도가 느려서 약 10개월이 지나야 김정일의 식탁에 오르게 되는데 주로 오골계 탕으로 제공되었습니다. 김일성 일가의 요리는 호위사령부 2국 담당 주방에서 하기 때문에 우리 연구원들은 그 과정까지는 잘 몰랐습니다.

다만 식재료로 완성하여 정상적으로 보장하는 단계까지 우리 연구원이 맡은 부분인데 저의 실장은 오골계가 삼계탕처럼 많이 사용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오골계의 요리방법은 옛 서적에서 밝혀진 궁중요리 방식으로 가공한다고 들었습니다.

우선 10개월이 된 오골계의 내장을 드러내고 황기와 엄나무, 밤 등을 넣어 고아서 만드는데 검은 뼛속에 들어 있는 골수액도 다 빠져나와 뽀얗게 우러나오게 되면 맛이 구수하고 담백하였습니다. 실장은 김일성은 개장국을 아주 좋아하는데 김정일은 오골계를 특별히 즐긴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긴 밤을 새워가며 연구된 오골계는 1992년 2월 16일 김정일의 50돌 생일, 4월 15일 김일성의 생일선물로 올렸습니다. 말로는 간단한 것 같지만 연구과정에 겪은 피로감과 검정분석실을 오가며 흘린 땀을 생각하면 지금도 억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제가 만청산연구원에서 이뤄낸 연구 성과가 북한의 인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단지 김일성과 김정일, 그리고 오늘날 김정은을 위한 연구였음을 떠올릴 때마다 북한의 인민들 앞에 느끼는 죄책감만 커갑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