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수무강 연구소 원천 외화벌이 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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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에 계신 동포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3월 2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회원국 만장일치로 대북제재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번 대북제재 결의안은 유엔의 역사상 가장 강도 높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든든한 이웃이라던 중국과 러시아도 김정은 정권의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도발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는데 뜻을 모았습니다. 그동안 제대로 맷집을 키운 김정은 정권도 이번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만큼은 견디기가 어려울 것으로 여겨집니다.

다가오는 5월 7차 당 대회를 치러야 할 김정은 정권은 '70일 전투'로 유엔의 대북제재를 돌파해 보려고 어리석은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70일 전투'는 북한 인민들의 고통만 가증시켜 결국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앞당기게 될 것입니다.

이번 유엔의 대북제재는 무엇보다도 김정은 정권의 외화벌이 구멍들을 모조리 틀어막았습니다. 당장 시급한 외화난을 김정은이 어떻게 넘길지 저도 참 궁금합니다. 인민에 대한 수탈이 모두 외화가 되는 것은 아니기에 하는 말입니다.

제가 근무하던 '만청산연구원'도 단순히 김일성, 김정일의 건강장수만 연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청산연구원'도 북한에서 꽤나 외화를 버는 기관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만청산연구원'의 외화벌이 사업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은 해마다 군중외화벌이 과제를 수행해야 하고 수출원천 사업에도 동원 되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중앙당 39호실, 대성무역회사, 락원무역과 같은 외화벌이 기관들에 대해서도 자주 들어 왔을 것입니다.

북한에서 처음으로 외화벌이 사업에 인민들을 동원한 계기는 김일성의 환갑인 1972년 4월 15일을 맞으면서였습니다. 당시 김정일의 지시로 '충성의 외화벌이 운동'이 벌어지면서 '군중외화벌이'라는 대중운동이 등장했습니다.

당시에 강연제강과 해설담화 제강, 3방송에서 주민들의 외화벌이 의욕을 높이기 위해 대대적인 선전을 벌렸는데 '선조들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가보인 금품을 서슴없이 내놓았다'는 사연들을 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초기 '전군중적 외화벌이'는 북한 주민들을 상대로 금붙이만 거두어 들였는데 '중앙당 재정경리부'가 주관하였습니다. 인민들로부터 더 많은 외화를 긁어내기 위해 중앙당 재정경리부는 각 시, 군에 '외화벌이사업소'까지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외화자금이 '주석폰드(예비물자)'라는 명목으로 김일성의 주머니에 고스란히 흘러 들어가는 것을 못 마땅히 여기던 김정일은 자기의 비밀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외화벌이 사업을 군부까지 확대했습니다.

인민군 총정치국에는 정찰총국과 8총국에서 마약을 비롯해 온갖 불법적인 방법으로 끌어들인 외화를 관리하는 '39호실'을 따로 마련했습니다. 김정일은 '39호실이 벌어들인 자금을 대성총국 산하 '조선대성무역은행'을 통해 해외로 빼돌렸습니다.

'중앙당 39호실'로 알려진 김정일의 비밀자금 기관은 사실상 군부가 관리해왔습니다. 김정일 사망 후 권력을 잡은 김정은은 군부의 막강한 힘을 빼기 위해 2012년 8월 2일 '39호실'을 해체하고 그 권한을 노동당 조직지도부에 넘겼습니다.

김일성의 비밀자금 기관으로 각 시, 군들에 '외화벌이사업소'가 있었다면 김정일은 더 많은 비밀자금을 긁어모으기 위해 전국에 외화벌이 전문기관인 '5호 관리부'를 만들어 놓고 거기서 나오는 외화원천을 '39호실'로 끌어들였습니다.

'5호 관리부'에서 일하는 종업원들도 자신들이 '39호실'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모를 만큼 김정일의 비밀자금은 은밀히 조성됐습니다. 외화벌이에 혈안이 된 김정일은 1980년대 초부터 중앙당 '5과'에도 '충성의 자금' 과제를 내주었습니다.

조직지도부 특수기관인 '중앙당 5과'는 김정일의 호위사업과 만수무강 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부서 였습니다. '만수무강연구소'도 '중앙당 5과'에서 인원을 선발했던 관계로 '5과'에 소속돼 김정일의 외화벌이에 한 몫 했습니다.

'만수무강연구소'는 지방의 8호, 9호 사업소들에서 거두어들인 특산물과 산하에 있는 전문목장, 농장, 양어장들에서 외화원천을 마련했습니다. 송이버섯, 고사리, 구기자, 잣, 소나무 꽃가루를 비롯해 그 수는 수백 가지가 넘었습니다.

외화벌이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게 사금채취였는데 '운곡지구'나 '삼수 고비농장', 풍서군 '꽃사슴 목장'을 비롯해 '만수무강연구소' 산하의 목장과 농장들엔 일반주민들이 접근할 수조차 없어 사금이 많았습니다. '만청산연구원'만 해도 산하 '운곡지구'에서 휴식일이나 여가시간을 이용해 종업원들에게 사금채취를 강요했습니다.

김일성 일가와 노동당 '정치국위원'들에게 공급되고 남은 해조계란과 메추리알은 동유럽 사회주의 나라들에 수출됐습니다.

아편 역시 '만청산연구원'의 중요한 외화벌이 원천이었습니다. '만수무강연구소'가 제일 많은 외화를 획득한 품목이 아편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제가 '만수무강연구소' 산하 '만청산연구원'에서 감옥행을 하게 된 원인도 아편농장에서 시작됐습니다.

양강도 백암군에 가면 면적만 1만정보(1만헥터정도)를 차지하는 '10월 18일 종합농장'이 있는데 원래 이름은 '원봉농장'이었습니다. 주변에 '원봉저수지'가 있어 그렇게 불렀는데 '원봉농장' 1만 정보의 밭에 1989년부터 아편을 심었습니다.

지금은 북한에서 소문난 감자농장이라고 하지만 초기 '원봉농장'은 아편 재배를 시작하면서 '만수무강연구소'에 편입됐습니다. 당시 북한은 정보당 아편 5kg 정도밖에 생산을 못했습니다. 그렇다 쳐도 '원봉농장' 1만 정보에서 생산된 아편은 50톤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만수무강연구소'가 관리하는 '원봉농장' 외에도 양강도 전체가 1980년대 후반기부터 아편농장으로 전환됐다는 사실로 비추어보면 북한이 얼마나 많은 마약을 생산해 국제범죄조직들에 넘겼는지를 짐작 하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아편재배로 국제사회의 규탄이 이어지자 김정일 정권은 1995년부터 농업적인 방법에서 화학적인 방법으로 마약생산을 전환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북한에서 '얼음'으로 불리는 '필로폰'입니다.

필로폰은 '봉화진료소'와 '남산진료소'를 비롯한 김일성 일가와 북한의 고위층들의 긴급 치료를 위해 진정제와 마취제에 조금씩 들어가던 비상약품이었습니다. 해외 범죄조직을 통해 정찰총국이 입수한 필로폰 생산방법은 1980년대 초 '만수무강연구소'에 의해 완성됐습니다.

'룡성특수식료공장'과 '강계과일주공장'을 비롯해 '만수무강연구소'에서 생산된 특제품들까지 외화벌이 목적으로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나라들에 팔아먹었습니다. 국제범죄에 해당되는 금괴 밀수나 마약 생산은 이젠 김정은이 어어 받아 실행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를 우롱하는 김정은 정권의 범죄적인 외화벌이 사업, '충성의 외화벌이'가 끝나는 날이 억울 하게 혹사당하는 북한 인민들에게 자유와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날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탈북자 김주원이었습니다.